8월16일, 미군 전투 병력이 이라크를 떠나면서 이라크 전쟁이 공식 종료되었다. 그러나 정정·치안 불안과 저항군의 공격으로 전쟁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이라크의 내일을 들여다본다.

8월16일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쿠웨이트와 맞닿은 이라크 국경 마을 샤프완에 대규모 미군 행렬이 나타났다. 스트라이크 전차와 지뢰 방어트럭(MRAP) 등 각종 전투 차량이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쿠웨이트로 향하고 있다. 미군 행렬의 부대원들은 미군 제2 보병사단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었다. 이 부대는 7년 5개월 이라크 전쟁의 마침표를 의미하는 마지막 전투부대였다.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된 뒤 줄곧 전쟁의 선봉에 섰던 이 부대는, 바그다드에서 마지막으로 이라크 군에게 기지와 권한을 이양했다. 

엔진 소리와 함께 숨을 죽이며 국경을 넘는 순간,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 소속 스트라이커 운전병 존 프레이저 일병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라크전이 끝나는 역사적인 순간이고,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리처드 콜빈 상병은 “우리 부대원 모두가 안전하게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서 기쁘다. 이제 이라크로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차분하게 말했다.

ⓒAP Photo미군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 소속의 한 군인이 8월25일 환영회에서 어린 자녀들과 포옹하고 있다.
 이날 미군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 이라크 남부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에 들어서면서 미군의 이라크 철군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은 5만명으로, 이들은 이라크 군인·경찰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자문 등의 임무를 수행한 뒤 내년 말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다. 2007년 ‘이라크 안정화 작전(Surge작전)’ 당시 최대 17만1000명까지 증가했던 미군이 이제 최소 병력만 남기고 철수한 것이다. 전비로 7500억 달러를 쏟아부은 이 전쟁은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대테러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됐다. 

8월25일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미군 루이스-매코드 합동본부 체육관에 미국 전역에서 몰려온 기자들과 카메라맨 그리고 성조기를 들고 나온 가족들이 붐볐다. 마지막 전투여단이었던 제2 보병사단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었다. 아들을 기다린다는 사라 브라이트 씨(48)는 “그저 살아 돌아온다는 사실이 기쁘다. 아들을 이라크로 보낸 후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들은 모른다. 더구나 나의 아들은 세 번이나 이라크에 파병됐다. 이제는 그곳으로 우리 아들을 더 이상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라고 말했다.

총리, 치안 완벽히 책임진다지만…

이윽고 체육관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쿠웨이트에서부터 날아와 오랜 비행에 지친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 군인들이 들어섰다. 여기저기에서 군인과 가족들이 끌어안자 체육관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내와 재회한 숀 로페스 하사는 “아내를 만나 꿈만 같다. 이라크로 파병될 때만 해도 아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이제 이라크로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바그다드를 떠날 때 뒤를 돌아보며 ‘나 이제 떠난다’고 소리쳤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전사자도 있었다. 이라크 침공 이후 사망한 전사자 4418명이었다.

8월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오벌오피스 연설에서  미군의 이라크 전 전투 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이날 저녁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18분간의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이라크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를 지나 우리는 책임을 다했으며, 오늘 미군의 전투 임무는 끝났다고 선언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은 종료됐으며, 이제 이라크 국민이 자기 나라 안보에 대한 책임을 주도해야 한다”라며, 미군 임무를 이라크 국민에게 이양한다고 밝혔다.

ⓒAP Photo8월26일 저항군의 공습으로 부서진 바그다드의 한 건물 앞에서 여성들이 낙담해하고 있다.
같은 날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도 미군 전투 임무 종료일을 맞아 이라크 국영방송을 통해  “이라크는 오늘 주권국가이자 독립국가로 거듭났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이라크 치안 당국은 치안 유지에 완벽하게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도 “폭력 사태가 초기 이라크 전쟁 때보다 훨씬 낮고, 65만명의 이라크 정규군이 방어와 치안 유지에 주도적인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라며 이라크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그러나 이라크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제4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 바그다드를 떠난 지 일주일 뒤인 8월25일, 이라크의 대다수 지역에서 정부군 기지를 겨냥한 동시다발 공격이 있었다. 이 공격으로 최소 64명이 숨지고 190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절반은 이라크 경찰과 군인이었다. 갑자기 동시다발로 공격한 점과 피해 규모를 보면, 저항 세력이 미군 전투병력 철수 이후를 노리고 조직적으로 벌인 ‘기획 공격’으로 분석된다. 이 상황에 이라크 군과 경찰은 거의 무방비로 당했다.

9월5일 중무장한 저항군 6명이 바그다드 중심부 이라크 육군 11사단 루사파 사령부를 공격해 이라크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종전을 선언한 지 고작 닷새 만에 이라크 주둔 미군이 다시 전투에 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오전 갑자기 군사기지로 쳐들어온 저항군 6명을 이라크 군 단독으로 처리하지 못하자, 교전 3시간 만에 결국 미군에게 지원 요청을 해서 겨우 진압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이라크 군이 겨우 6명의 소규모 침투조차 방어하지 못하는 현실이 드러났다. 미군의 화력을 등에 업고 있을 때와 달리, 이라크 군 스스로 이 같은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아무리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이 종료되고 전투병력이 모두 철군했다고 선언해도, 이라크에서 아직 미군의 전투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이라크 국민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군이 떠난 뒤에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일들이 너무 빨리, 직접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직 이라크 관리이며 현재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아하마드 알주부리 씨(43)는 “루사파 기지에 있던 이라크 군인만 해도 1000명이 넘을 텐데, 겨우 6명을 못 막아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는 이라크 군의 치안 능력이 어떤지 극명히 보여준다. 미군이 떠난 다음의 이라크 군은 있으나 마나다. 이라크 국민들 사이에서 반미감정이 심하지만, 미군이 이렇게 어질러만 놓고 이라크를 떠났다고 불안해한다”라고 말했다.

미군, 다시는 이라크 돌아가지 않을 듯

전후 복구가 전혀 되지 않고, 생활고와 높은 실업률로 국민 생활이 피폐해지고, 치안 상황까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바그다드 알사다르 시장에서 생필품을 파는 알리 둘라미 씨(32)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나가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사담 후세인 시절보다 낫게 만들고 나갔어야 한다. 그 시절 우리는 식량과 전기를 무료로 공급받았다. 지금은 그 누구도 공짜로 주지 않는다. 그것들을 공짜로 주던 사담 후세인이 공포스럽기는 했어도 미군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후세인 정권 시절 공화국 수비대 사령관이었던 라드 알함다니는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는 이라크에 대한 도덕적·법적·역사적 의무를 미국이 외면한 것이다”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현재 이라크 정부는 미군 전투병력 철수에 따른 치안 공백을 메우려 전국에 대테러 경계 태세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그러나 이라크 군사령관마저 독자적 치안 유지 능력에 ‘자신이 없다’며 미군 주둔 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이라크 정부는 6월30일 미군이 도시에서 지방으로 철군 작업을 완료한 날을 승리의 날이라며 국경일로 지정했다. 그만큼 이라크 정부는 군인·경찰의 치안 유지 능력을 신뢰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는 미군과 함께였고, 지금은 이라크 군 혼자이다. 이제 이라크는 과거와 달리 미군의 치안 공백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억지로라도 이라크에서 벗어난 미군은 다시 이라크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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