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국에서는 베트남 신부와의 결혼을 주선하는 업체가 성황을 이룬다.
“이건 선풍기가 아닙니다. 여기에 머리를 말리면 다 타버리고 말아요. 조심하세요.”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와 동시에 탄성이 터져나온다. 평생 단 한 번도 ‘온열기’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 없었을 열대의 여성에게 ‘선풍기 모양의 온열기’는 낯설고도 신기한 물건일 수밖에 없다. 눈이며, 영하의 온도며, 겨울 코트 같은 낱말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월14일, 공교롭게도 한국에 올겨울 들어 최고의 한파가 몰아친 날. 베트남 호찌민 시 중심가의 한 건물에 모인 40여명 여성들에겐 ‘겨울’이 최고의 화젯거리다. 벌써 서너 달 전에 한국으로 시집가기로 결심한 그들이지만, 한국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있는지 이날 처음 안 이들도 상당수다. 자기가 시집가게 될 한국의 농촌 풍경을 보곤 ‘한국 드라마와 너무 다르다’며 충격에 빠지거나, 김치의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선 당황하기도 한다. 이 신부들, 한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런 무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베트남 신부’들 대다수가 한국과 베트남의 결혼중매업자에 의해 짝지워져 ‘속성’으로 결혼 절차를 밟게 되는 건 여러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 이들은 서울이 어디인지, 부산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자신이 앞으로 평생을 살아갈 나라의 계절조차 모른 채 국제결혼 대열에 나서는 여성들이 오늘 베트남 ‘황금신부’들의 현주소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베트남 신부들을 위해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와 국제이주기구(IOM),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이 힘을 모아 호찌민에 작은 교육장을 열었다. ‘새로운 도전, 한국 알기’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신부가 출국하기 전에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문화와 음식에 대한 소개는 물론 결혼 후 곤란한 일을 겪게 됐을 때의 대처법 등 다양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시사IN 이오성베트남 호찌민 시에서 열린 ‘새로운 도전, 한국 알기’ 프로그램의 진행 모습.
지난 10월8일부터 문을 연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하루 8시간씩 월, 수, 금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결혼 비자를 신청하지 않은 여성까지 프로그램을 수강하려는 바람에 이들을 걸러내느라 실무자들이 진땀을 뺄 정도다. 그동안 베트남 여성들이 얼마나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보에 목말랐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베트남 신부들

이틀 후, 기자는 이곳 교육장에서 두 베트남 신부와 마주앉았다. 두 신부 모두 베트남 최대의 농촌 지역인 메콩델타 출신이다. 올해 18세인 능 씨(가명)는 한국에 가면 부산에서 살 예정이다. 운송업을 하는 38세 한국인 남편에 대해 능 씨는 “잘생기고, 키도 커서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남편과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호찌민에서 맞선을 본 후, 남편과 함께 한국 음식을 몇 번 먹으러 간 게 그녀가 아는 남편과 한국의 전부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하는 게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걱정되지 않는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빙긋 웃음을 지을 뿐이다.

두 번째 만난 여성은 올해 19세로 은행에서 근무하는 39세 남편과 결혼할 예정이다. 그녀에겐 좀더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베트남 현지 언론에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들의 실패 사례가 많이 보도됐다. 알고 있나.
“알고 있다. 나를 한국인과 결혼하게끔 소개해준 숙모도 실제 한국 생활은 드라마와 좀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려 하나.
“우리 마을에 한국인과 결혼한 친구가 있는데, 굉장히 잘산다고 들었다. 나도 그 친구처럼 잘살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당신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본 적 있나.
“나는 실패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살 것이다. 남편을 사랑한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베트남 신부’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결혼과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현지 관계자들은 “대다수의 베트남 여성이 자기만은 한국에서 잘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것이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생겨난 ‘근거 없는 낙관’이라는 데 있다. 주최 측이 이번 프로그램 대상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는 이런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그래프 참조) 우선 이들의 80% 정도가 결혼 전 신랑 될 사람과 만난 횟수가 1~2회라고 답변했다. 결혼 전에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는 응답도 20%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편에 대한 정보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설문 결과엔 남편의 직업에 대해 농축산업이 20%, 기술직 18%, 생산직 19% 등으로 응답했지만, 이들을 직접 상담한 실무자는 “상당수 베트남 여성은 남편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남편이 사는 곳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고작 10%라는 결과도 크게 놀랍지 않다.

이들의 무지는 환경적 요인 탓이 크다. 대다수가 빈농 지역인 메콩델타 출신이어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이들이 드물다. 당연히 남의 나라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어 결혼 중매업자의 말만 믿고 남편에 대해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호찌민 주재 한국 영사관 관계자는 “신랑 이름을 물으면 ‘경상남도’라거나, 신랑이 다니는 직장은 무조건 ‘삼성’이라고 대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베트남 여성 78%, "결혼 비용 몰라"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남편이 결혼 중매업체에 ‘결혼 비용’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베트남 신부 78%가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을 돈으로 사려 한다’라는 신부 측의 반발을 우려해 중매업체가 이런 사실을 숨기기 때문이다. 이는 나중에 한국에서 큰 ‘가정 불화’ 요인이 된다. 베트남 신부가 결혼생활에 불만을 토로할 경우 남편은 ‘내가 널 돈 주고 데려왔는데 왜 이러느냐’며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들이 한국에 입국했을 때 겪게 되는 현실은 암담하다.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07년 7월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19세의 베트남 여성 후인마이 씨의 사연이 대표 사례다. 그녀를 살해한 한국인 남편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결혼 부적격자’였지만 국제결혼 업체를 통해 27세 연하인 후인 씨와 결혼했다.
생계 유지에 급급한 남편은 ‘한국어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물론, 외출도 허용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정보가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된 후인 씨가 한 달 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남편은 그녀를 살해한 후 여권까지 찢어버리고 도주했다. 뒤늦게 경찰에 붙잡힌 남편은 “돈을 들여 데려온 아내가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 홧김에 때렸다”라고 진술했다.

2005년 보건복지부의 국제결혼 이주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 이주여성 중 남편으로부터 언어·신체 폭력을 당했다는 여성이 45%,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다는 여성이 14%나 됐다. 문제는 결혼 이주여성의 증가와 함께 이런 일들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호찌민 주재 한국 영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모두 8500명(하노이 1600명)에 이른다. 2002년에 비해 무려 20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베트남 이주 결혼여성의 수에 비례해 결혼에 실패한 뒤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다.

ⓒ시사IN 이오성2007년 12월17일, 호찌민 주재 한국영사관 앞에서 결혼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베트남 여성들.

고국으로 돌아온 여성은 다시 2차 폭력에 시달린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베트남 농촌 사회에서 ‘네가 잘못했으니까 쫓겨난 것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호찌민에서 만난 유엔인권정책센터 김민정 컨설턴트는 기자에게 베트남 현지에서 불리고 있는 노래 한 자락을 들려줬다. 제목은 ‘후인마이의 노래’이다. “낮에는 밭에서 고생하고, 밤에는 성의 노리개로 시달리고. 엄마, 내 인생 어떡해요. 돈에 눈이 멀어 내 인생이 이렇게 됐어요.” 이 노래는 베트남 사회가 결혼 이주여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후인마이 씨 사건과 〈조선일보〉의 베트남 여성 비하 기사 등이 현지에서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베트남 내부에서는 국제결혼에 대한 시각도 변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동맹 홍보담당 리띠리엔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외국인들과의 자유결혼을 보장하며, 결혼에 실패한 여성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대해주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을 통역해준 베트남 여성의 말은 사뭇 달랐다. 그녀는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인텔리다. 

“나처럼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은 국제결혼에 대해 비판적이다. 돈을 좇아 자존심을 버린 여성들이라고 생각한다. 농촌 지역은 몰라도, 적어도 호찌민에서 한국 남자와 무작정 결혼하겠다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김민정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고국으로 쫓겨온 베트남 여성에 대해 ‘비참한 피해자’라는 시각과 ‘돈을 좇아 몸을 판 여성’이라는 시각이 맞서 있다는 것이다. 국제결혼 피해 여성은 타국에서 학대받고, 조국에서 냉대받는 서러운 신세가 되고 마는 셈이다. 

ⓒ시사IN 이오성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 유학생들이 여성을 상품화하는 결혼 중개업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의 문제점이 두드러지자 지난달 ‘결혼중개업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한국 국회에서 통과됐다. 법률안은 그동안 아무런 제약없이 이뤄졌던 국제결혼 중개업을 등록제로 전환하고, 과대·허위 광고 등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여성 단체들은 이 법안의 처벌 조항이 미약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호찌민에서 만난 결혼 중개업자 최 아무개씨도 “소규모 결혼 중개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새로운 법률안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상자 기사 참조). 

국제결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에서도 사회적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베트남 신부가 주인공인 드라마 〈황금신부〉, 결혼 이주여성의 처갓집을 찾아가는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와 같은 국내방송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편의 신분도 크게 달라졌다. 우선  연령대가 낮아졌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비교적 젊은 30대가 베트남 신부를 맞는 남성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 일색이었던 직업도 자영업, 사무직 등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베트남 여성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지금도 돈으로 환심을 사려는 한국 남성들이 결혼 중개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고,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도 순식간에 치러지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도전, 한국 알기’ 프로그램이 타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 새색시들에겐 작은 등대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쉬움도 적지 않다. 주최 측이 스스로 밝히듯 단기적인 ‘정보 제공’ 프로그램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획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좋은 신부 만들기 사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민간단체가 베트남 여성들 속에서 ‘지속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이다. 특히 베트남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 결과는 결혼이주 문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이오성호찌민 시 여성 박물관에 전시된 석고상.
호찌민에서의 마지막 날, 기자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여성박물관을 찾았다. 호찌민에서 만난 베트남 전문가 구수정씨는 “베트남 여성을 이해하려면 여성박물관을 한번 가보라”고 권유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론 소총을 움켜쥐고 있는 베트남 여성 석고상이었다. 일부 관광객은 이 석고상을 보고 ‘아동 학대’라며 경악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 모습은 결혼 중개업자들이 ‘순종적이며, 헌신적’이라고 선전해대는 베트남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베트남에 대해 무지한 한국인 남성이 이 석고상을 본다면 과연 어떤 느낌을 받을까. 어쩌면 정말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한국의 겨울을 모르는 열대의 여성들이 아니라, 아는 거라곤 돈밖에 없는 한국의 남성들일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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