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월터 크롱카이트’인가 아니면 ‘제2의 대니얼 엘스버그’인가. 3년 전 출범한 세계적인 폭로 전문 비영리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의 창간인 줄리언 어샌지(39)를 두고 하는 말이다. 크롱카이트와 엘스버그 모두 베트남 전쟁에 관한 진실을 폭로해 유명해진 인사다.

어샌지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군사기밀이 담긴 9만여 쪽의 문건을 폭로하자 미국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기밀 유출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에 나섰다. 최악의 경우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어샌지와 위키리크스는 법적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은 이번 문건 유출을 연방법 위반으로 보기 때문이다.

ⓒReuter=Newsis7월26일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샌지가 위키리크스가 제공한 정보로 기사를 작성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어샌지가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 세 나라의 대표적인 권위지를 통해 7월25일 동시에 폭로한 이번 문건에는 지금까지 일반인에게 감춰져온 미군의 아프간 전황에 관한 충격적 내용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는 파키스탄의 정보기관이 적대 세력인 탈레반과 물밑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탈레반이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을 확보했고, 미군과 연합군이 아프간 민간인 수백 명을 살해하고도 공식 보고하지 않은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어샌지는 문건을 폭로한 7월26일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문건을 통해 아프간 전쟁을 새롭게 이해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미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아프간 전쟁에 관한 ‘숨겨진 진실’을 알리고자 비밀 문건을 폭로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어샌지를 두고 ‘21세기의 월터 크롱카이트’라는 말이 나도는 데는 이유가 있다. 크롱카이트는 CBS 방송 앵커이던 1968년 2월 베트남 현지 취재를 토대로 미군이 베트남에서 고전하고 있고, 베트남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해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미국인에게 각인돼 있다. 또 랜드연구소 연구원이던 대니얼 엘스버그 박사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 국방부의 비밀 문건인 7000쪽짜리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1971년 뉴욕타임스에 유출해 베트남 전쟁에 관한 당시 존슨 행정부의 조직적인 거짓과 위선을 폭로한 주인공이다. 올해 79세인 엘스버그 박사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건은 펜타곤 페이퍼 유출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허가받지 않은 폭로이지만 실제 규모는 훨씬 더 크고,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라고 말했다. 

어샌지의 폭로로 가장 곤경에 처한 곳은 미국 정부다. 미국 정부는 이번 문건 내용이 “시기적으로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벌어진 것이다”라며 태연한 척하지만 실은 정반대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문건으로 아프간 주둔 미군이 위험에 빠질 수 있고, 군의 기밀 유지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성명을 통해 이번 문건 폭로를 ‘무책임한 짓’이라며 어샌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정부, 위키리크스 폐쇄 검토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폐쇄하기 위한 법적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비밀에 관한 미국과학자연맹 프로젝트’의 스티븐 애프터굿 국장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민은 아프간 전쟁에 관해 행정부에 더 많은 투명성과 솔직함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위키리크스는 국방부가 남긴 공백을 메운 셈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국방부는 미군 정보분석가인 브래들리 매닝 일병을 이번 문건 유출의 용의자로 추정하지만 다른 용의자에 대한 수사도 확대하고 있다. 매닝은 2007년 7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벌어진 미군 헬기의 민간인 오폭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위키리크스에 유출한 혐의로 지난 5월 체포됐다. 문제의 동영상은 지난 4월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는데, 이 동영상 덕분에 위키리크스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어샌지는 이번 문건 폭로로 미군의 아프간 작전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별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다”라고 일축했다. 이번 문건을 공개하기 앞서 ‘피해 최소화’ 절차를 거쳤고, 그 결과 1만5000건에 달하는 기밀 문건은 공개를 보류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건도 실명을 삭제한 뒤 적절한 시점에 공개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CNN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 〈래리킹 쇼〉에 출연해 “이번 문건은 미군 자체의 자료를 통해 지난 6년간 아프간 전쟁의 사상자와 위협 현황을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게 한다”라고 강조했다.

ⓒReuter=Newsis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린 엘스버그 박사.
어샌지에 따르면 세계 각국 정부의 부정과 비밀주의를 폭로해 시정하도록 하자는 게 위키리크스의 목표다. 이처럼 목표는 거창하지만, 정작 위크리크스의 상근 요원은 겨우 5명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를 전해주는 자원봉사자가 세계적으로 800여 명이나 된다. 그 덕에 현재 인구 100만 이상의 전 세계 모든 나라에 관한 비밀 파일 700만 건을 확보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본부도 없는 무국적 기관으로, 서버 운영비로 매년 기부금 약 20만 유로를 사용한다. 또 자체 인터넷 사이트가 사이버 공격에 노출돼 무력화될 가능성에 대비해서 스웨덴·아이슬란드·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운영진의 신원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다. 어샌지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걱정은 지금 하는 일이 너무나 빨리, 너무 엄청나게 성공해 자칫 자료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샌지의 이런 걱정이 기우는 아닐 듯싶다. 실제로 위키리크스는 3년 전 출범 직후부터 세계 주요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되더니 이제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정부의 ‘요주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중앙정보국과 국방부는 이미 내부 문서에 위키리크스를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적시한 상태다. 또 여러 정부와 관련 기관이 법원을 통해 위키리크스를 폐쇄하려고 했고, 사이버 공격을 통해 무력화를 기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정부에게 위키리크스는 무서운 존재인 셈이다.

어샌지는 문건 폭로 이후 위키리크스로 흘러드는 정보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 ‘폭로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아마도 ‘펜타곤 페이퍼’를 누출한 대니얼 엘스버그가 되기로 내심 작정한 것 같다. 흥미롭게도 위키리크스 웹사이트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조직적 기만을 폭로한 엘스버그의 구실을 길게 거론하며 “원칙있는 폭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좋은 쪽으로 바꿨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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