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1일 한국토지공사(토공)와 대한주택공사(주공)를 통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출범했다. 자산(105조원)만 따지면 삼성그룹(175조원)과 한국전력(117조원)에 이어 3위. 임직원 7300명이 넘는 공룡 기업의 출현이었다.

1993년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 무려 16년 만의 결실이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뚝심의 산물이었다. LH 통합 법안은 2009년 2월 말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안 심의를 생략한 채 직권상정됐다. 당시 국회의장은 법제사법심사위원회 심의 없이 이를 직권상정해서 통과시켰다. 통합으로 인한 1조원의 세금도 처리해줬다. 한나라당 서병수·배영식 의원은 LH 세금을 소급해 깎아주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청와대 제공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경기도 성남 LH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는 LH가 토공과 주공의 업무 중복을 없애고 경영 효율을 꾀했다고 평했다. LH를 공기업 선진화의 첫 사례로 지목하고 공기업 개혁의 모델로 삼겠다고 했다. LH 출범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출범은 공공기관 선진화의 시금석이다.” “토공과 주공의 통합은 우리나라의 미래 선진 일류국가 창조를 위한 초석이다.” 청와대는 ‘우수한 공기업과 업무능력이 탁월한 CEO에게는 자율권(재량권)을 부여하겠다’고 덧붙였다.

‘공룡’ LH 수장으로 정부는 30년 넘게 ‘현대건설맨’으로 활동했던 이지송 사장을 택했다. 이 사장은 대통령과 함께 현대건설에서 근무했고, 청계천 복원 공사에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다. 취임 직후 기자들을 만난 이지송 사장은 “보금자리주택 건설, 4대강 살리기 사업, 국가산업단지 조성, 녹색뉴딜 사업 따위 국가 경제와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해외 신도시 개발 등의 계획도 세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돈벌이 위해 서민 외면한 LH

CEO 리더십은 공공성보다는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췄다. LH는 수익성을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중·대형 주택 공급을 중단하겠다던 당초의 약속을 뒤집고, 중·대형 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급 주택의 상징인 타운하우스까지 공급했다. LH는 서울 마포에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펜트라우스’를 지었다. 3.3㎡당 분양가가 2360만원에 이르는 고가 주택이다. 공급 물량의 3분의 2가 중·대형이었다. 하지만 미분양 사태로 막대한 손실을 보고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판교 신도시에는 최고급 타운하우스 ‘월든힐스’를 공급하기도 했다.

LH는 저탄소 녹색성장에 부응하는 21세기형 주거문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설명은 거창했지만 업계에서는 수익성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난 5월 국토해양부와 LH는 보금자리주택을 ‘명품 아파트’로 짓는 내용의 ‘보금자리주택 품격 향상방안’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국내외 저명 건축가를 상대로 디자인을 공모해 보금자리주택 1차분인 서울 강남 세곡지구에 시범 적용키로 했다.

집 없는 서민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마저 수익성 때문에 뒤로 밀리는 형편이었다. LH는 국민임대주택 단지를 보금자리주택 지구로 전환했다. 경기도 고양 지축지구(8361가구), 의정부 민락2지구(1만536가구), 의정부 고산지구(8680가구)와 고양 향동지구(7930가구)가 각각 보금자리주택으로 전환됐다.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집중하면서 과거 정부가 추진한 국민임대주택 사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국민임대주택은 목표치 5만여 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사IN 백승기LH의 재개발 포기 소식에 주민들이 항의하는 플래카드를 내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모습.

하지만 LH가 벌인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LH의 한 관계자는 “서민을 위해 보금자리주택을 대거 짓고, 공공사업을 하기 위해 땅을 매입하다보니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보금자리 주택이 수익성 악화에 큰 몫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을 보는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집값 안정의 1등 공신인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수익성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주택 사업에서는 땅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중요한데 보금자리주택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헐값에 사들여 시간과 자금 면에서 타 사업에 비해 용이하다는 설명이다.

수익성 중시하는 보금자리주택

경기도 도시주택실 한 관계자는 “임대주택보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조성원가를 낮출 수 있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쉽고 수익도 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종합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회장은 “보금자리주택을 서민용이라고 선전하는데 도시의 허파인 그린벨트를 헐어서 주택을 짓는 것은 돈벌이로밖에 보기 어렵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서민에게 얼마든지 싸고 좋은 집을 지어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건설업체 사장은 “보금자리주택이 집값 안정에 공이 크지만 건설 경기마저 함께 떨어뜨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어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업에 비해 입지와 비용 면에서 상대적으로 사업하기도 낫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금자리주택 사업 추진도 난관이 많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고등동 보금자리주택 사업 계획을 철회해줄 것을 국토해양부에 요청했다. 양기대 광명시장도 7월27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경기도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을 건설할 경우 행정협조 거부 등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밝혔다. 올해 3월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는 전체 면적이 1736만7000여m²(520여 만 평)로 분당 신도시와 비슷하고, 보금자리주택지구 중 가장 크다. 9만5000여 가구에 총 27만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랑하던 공기업 선진화의 시금석은 부실했다. 합병 직전 주공과 토공이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사업이 방만해졌다. 경기도 파주·양주·김포, 인천 청라지구 등지에서 토공과 주공이 얼굴을 맞대고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미분양 사태가 속출했다. 7월 말 현재 LH가 매각하지 못한 토지·아파트 부동산 규모는 총 23조6800억원에 이른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부채가 발목을 잡았다. LH의 부채는 현재 118조원. 합병 전보다 32조원 증가한 수치다. 2007년 주택공사 357%, 토지공사 165%였던 부채비율은 현재 500%를 넘어섰다. 매달 빚이 1조원씩 늘고 있고, 매일 내야 할 이자가 100억원이 넘는다. 2014년에는 부채 총액이 250조원에 육박하리라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자력으로 부채 상승 곡선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이다.

LH 하루 이자 실제로 200억원?

당장의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애를 먹고 있다. LH는 올해 2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LH는 1000억원 규모의 첫 채권 발행도 실패했다. 매년 10조~20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은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 LH의 한 관계자는 “빚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되는 사업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정부의 도움, 그것도 특단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도 어렵다. 하지만 내부 위기감은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LH 자회사 한 관계자는 “외부에 발표하는 빚이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 부채는 200조원이 넘고 하루 이자가 200억원이 넘는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LH 본사에는 주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LH 정문에는 항의를 막기 위해 직원들이 늘 대기하고 있다(위).

LH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 빠져 가라앉는 부동산 시장을 읽지 못했다. 재개발 사업 포기라는 해법도 서민들과 거리가 있는 정책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 일대는 25∼30년 된 주택 2300여 채가 난립되어 있어 정비가 필요한 지역이었다. LH가 이곳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 것이다. 성남 지역의 부동산 폭락과 서민들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발표 하루 만에 이 지역 땅값은 3.3㎡당 500만~600만원이 떨어졌다. 신흥2구역 재개발주민대표회의 신종선 위원장은 “재개발 때문에 대출해 집이나 땅을 산 사람은 모두 쪽박을 차게 생겼다. 특히 돈 없는 서민의 피해가 더 크다”라고 말했다. 신흥2동 세입자협의회 양시종 상임대표는 “재개발한다고 해서 10년 가까이 보일러가 터져도, 집이 무너져도 버텼는데 신흥2동 주민들은 임대아파트 입주의 꿈이 깨졌다”라고 말했다.

LH는 414곳 사업장 중 사업 포기 지역을 곧 결정하겠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 남양주 진접, 파주 선유, 양주 고읍, 고양 지축, 의정부 고산, 구리 갈매…. LH 사업 지구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떨고 있다. LH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집장사’ ‘땅장사’한다고 비난받았다. 통합 후에는 ‘땅장사’ ‘집장사’를 하다 망한 기업이라는 소리를 듣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LH는 2009년 정부 경영평가에서 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S등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A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환경부·한국그린빌딩협의회·한국건축친환경설비학회·한국태양에너지학회가 공동 후원한 제1회 ‘2009 녹색건설 대상’에서 LH는 공공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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