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의 절묘한 득표율을 기록한 이회창 후보의 새로운 별명은 ‘본전남’이다. 15% 이상 득표율을 올려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선 완승을 바랐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이겠지만 ‘창’은 쉽게 부러지지 않았다. 비록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이회창 신당’의 출현은 4월 총선과 관련해 정치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회창 신당이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 당의 탄생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완벽히 구분되는 ‘4당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역에 기반을 둔 기형의 이념정당이기는 하지만 이념적으로 명확히 구분이 가는 정당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4당 구도를 조선시대 ‘사색당파’ 대립과 빗대어보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구분법은 이렇다. 충청을 기반으로 한 순수 보수 세력인 이회창 신당은 노론 벽파에, 영남과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실용 보수 세력인 한나라당은 노론 시파(소론, 남인 포함)에 비유할 수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실용 진보 세력인 대통합민주신당은 북인(대북)으로, 지역 기반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수도권에서 선전하는 원조 진보 세력인 민주노동당은 북인(소북)에 빗댈 수 있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빗대어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노론이 벽파와 시파로 나뉘는 것은 사도세자의 처형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다. 사도세자를 처형해야 한다는 쪽이 노론 강경파인 벽파였고 사도세자를 살려줘야 한다는 쪽은 노론 온건파인 시파였다. 사도세자 처형을 대북정책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대북 강경 노선을 주장하는 이회창 신당과 대북 실용 노선을 채택한 한나라당이 대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진보 개혁 세력의 구분법이다. 조선시대 북인이 득세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집권한 북인은 민주화운동 뒤 집권한 범여권과 민주노동당에 빗댈 수 있다. 북인은 원칙을 중시한 소북과 현실을 중시하는 대북으로 분리되는데 소북을 민주노동당에, 대북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대북과 소북이 분리된 후, 광해군 집권 이후에는 대북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북인이 몰락하는 인조반정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대북이 망하고 이어 소북도 따라서 몰락한다.

‘4당 구도’에서 치러지는 2008년 4월 총선의 승자는 누구일까? 보수 세력은 앞으로 10년간 ‘되찾은 10년’을 만끽할 수 있을까? 역사에서는 정조의 죽음 이후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잡고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도 과연 보수의 세도정치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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