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현지에서 결혼중개업을 하는 최 아무개씨. 경상도에 본사를 둔 결혼중개업체의 베트남 담당자인 그의 명함에는 낯선 시민운동 단체 지부장 직함만 적혀 있다. 그가 결혼중개업자임을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명함에 베트남 현지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다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곧 없애버릴 작정이다. 그는 “아내 외에는 가족 누구도 내가 결혼중개업을 하는 걸 모른다”라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가 국제결혼중개업 자체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매사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최씨는 ‘탓티황옥 씨 사망 사건 이후 아직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전했다. 7월8일 정신질환을 앓아온 한국인 남편에 의해 살해된 베트남 이주여성 탓티황옥 씨 사건으로 베트남 현지 언론이 들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터였다. 그는 “아직 베트남 정부가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조처를 취한 게 없어 혐한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오성베트남 호찌민 주재 한국영사관 앞에서 결혼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베트남 여성들.

최씨는 “시내에서 단체 맞선 등 눈에 띄는 일만 하지 않으면 베트남 정부 공무원들도 대충 눈감아준다. 여전히 뇌물이 통하기 때문에 정부 단속이 별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 사망 사건 이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려는 한국인 남성의 문의가 뚝 끊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을 최고의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한국인 남성은 여전히 많고,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을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생각하는 베트남 여성도 많다. 수요가 있는 한, 국제결혼 사업은 별 문제 없이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혼중개 업무에 별다른 차질이 없다는 이야기다.

뜻밖이었다. 탓티황옥 씨 사망 사건 후 결혼중개업체가 한국인 남편의 정신병력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음이 드러나면서 대통령까지 나서 결혼중개업체에 대한 관리·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했음에도 이들 업체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들은 이번 기회에 ‘미등록’ 결혼정보업체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값’으로 결혼 희망자 꾀는 미등록 중개업체

실제로 탓티황옥 씨를 살해한 한국인 남편 장 아무개씨에게 결혼을 알선한 부산 결혼중개업체는 미등록 업체였다. 2008년 6월15일 시행된 ‘결혼중개업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제결혼중개업을 하려는 자는 관련 교육을 받고 중개사무소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갖추어 해당 시·도에 등록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제결혼중개업자는 5000만원 이상의 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연간 35만원 정도를 내고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국제결혼정보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는 이를 통해 손해배상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미등록 업체’란 이런 최소한의 행정절차도 받지 않고 음성적으로 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을 말한다. 대부분 1인 사업체로, 사무실 없이 인터넷 홈페이지만 운영하거나, 알음알음으로 결혼을 주선한다. 당연히 관련 교육을 받지 않고, 보증보험에 가입하지도 않는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재 등록된 결혼중개업체가 결혼 희망자에게 중개 비용으로 요구하는 돈은 상대가 베트남 여성일 경우 1200만원, 캄보디아 1000만원, 우즈베키스탄 1600만원, 중국 700~800만원 선이다. 미등록 업체는 이 절반 비용을 제시하며 결혼 희망자를 꾄다. 등록 업체가 보기에는 이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뉴시스7월20일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가운데)이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 및 관련 단체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덤핑’으로 결혼을 중개하는 미등록 업체는 더 많은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다. 빠른 시일 내에 결혼 희망자가 결혼 결정을 내리도록 양측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허다하다. 탓티황옥 씨 남편의 사례처럼 건강진단서를 엉터리로 제출하거나, 가짜 재직증명서를 내보이는 식이다. 출국 전에 한국에서 사진을 통해 맞선이 약속됐다가 막상 현지에 가보면 ‘그 여성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다’며 발뺌하는 경우도 많다.

‘사후관리’도 문제다. 한국 입국 후 먹을거리·임신·병원 등 사소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국제결혼 부부는 당장 결혼중개업체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등록 업체는 대부분 결혼만 성사시키고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아 부부 갈등의 씨앗이 된다. 경기도 수원 ㄷ결혼정보업체 대표는 “예컨대 목욕탕 문화가 없는 동남아 사람들은 목욕탕을 안 가려 하고, 시어머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생기는 등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부딪치는 일이 잦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예 단기적으로 한탕 해먹고 휴·폐업 해버리는 악질 업체도 많아 이들 업체에 당한 이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들 미등록 업체에 대해서는 관련 부처조차 아직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이주여성 피살 사건 이후에야 정부 당국이 미등록 업체 현황을 조사하는 등 뒤늦게 실태 파악에 나섰다. 여성가족부가 허가한 국제결혼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결혼중개업협회에 따르면 협회로 신고가 들어온 (미등록 업체의 중개행위를 적발한) 건수만 최근 3~4년 사이에 1000곳이 넘는단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는 좋은 결혼중개업체를 고르는 요령을 알리는 글까지 떠돈다. ‘현지 언어를 적확하게 구사하는 매니저가 있을 것’ ‘현지에 직영지사를 운영하는 곳일 것’ ‘동일 지역 여성 결혼 희망자를 많이 보유한 곳일 것(동일 지역 여성이 많다는 건 그 지역에서 괜찮은 업체로 입소문이 났다는 뜻)’ 등이다. 이런 정보는 규모가 큰 중개업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지적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과 직원 겨우 8명

물론 등록 업체의 ‘구멍’도 심각하다. 2010년 6월 현재 여성가족부에 등록한 국제결혼중개업체는 모두 1253곳이다. 2008년 900여 곳에 비해 적잖이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2010년 7월22일 현재 한국결혼중개업협회에 따르면 그 수는 1237곳으로 줄었다. 겨우 한 달여 만에 스무 곳 가까이 문을 닫을 만큼 부침이 심한 게 결혼중개업계의 현실이다.

송성강 한국결혼중개업협회장은 “결혼중개업체 상당수는 영세하다. 큰 업체에 사람을 소개해주고 수수료만 떼가는 곳도 많다. 결국 이런 업체가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다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사후관리가 안 되거나 문제를 일으킨 업체는 나중에라도 등록을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 조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도 “등록 업체 역시 소정의 교육을 받고 보증보험금만 납부하면 어려움없이 허가가 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국제결혼 업무에 대한 전문적 소양 없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이가 많아서 관련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조직팀장도 “무조건 미등록 업체 탓으로 문제를 돌리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록 업체도 너무 많다. 등록·미등록 할 것 없이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높은 ‘마진’도 문제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결혼 한 건당 중개업체가 챙기는 이익이 적어도 40%는 될 거라 짐작한다. 항공료·숙식비·신부 측 사례비용·현지 중개인 비용·업체 인건비 등을 제하고도 그렇다. 1000만원짜리 결혼을 한 건 성사시키면 400만원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이야기다. 결혼중개업체의 ‘폭리’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우리 정부도 결혼중개업 문제와 관련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과의 직원은 현재 총 8명. 이 중에 결혼중개업을 담당하는 직원은 겨우 2명이다. 그마저도 1명은 베트남 새댁 사망 사건이 터진 후 새로 왔다. 다문화가정·결혼중개업 문제가 날이 갈수록 중대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턱없이 적은 인원이다. 관련 부처 직원이 직접 “다문화가족 분야에 직원이 너무 부족하다”라며 언론에 호소할 정도다.

베트남 새댁 피살 사건 후 법무부는 국제결혼 배우자를 찾기 위해 출국하기 전 한국인 남성이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소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게끔 강제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교육 미필자와 가정폭력 전과자, 파산자, 과도한 연령차 등 문제 소지가 있는 경우를 가려내 배우자 초청을 제한한다. 여성가족부 역시 올 하반기 개정되는 ‘결혼중개업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결혼정보업체의 신상 정보 제공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아직 검토 중이지만, 결혼중개업체가 크게 반발할 정도로 까다롭게 신상 정보 제공을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