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몰매’를 맞고 있다. 6·2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주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한국 시민사회가 정치적·역사적으로 구성해온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5·16 쿠데타 이후 형성되어 거대한 사회변혁을 성취한 바 있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전통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민주 세력’은 ‘반민주 세력’(현재는 ‘이명박 정부’를 가리킨다)에 대항해 뭉쳐야 한다. 노 대표의 죄목은 이 ‘규범’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Reuter=Newsis1996년 이탈리아 중도좌파 연합조직인 올리브연합의 두 지도자 로마노 프로디(오른쪽)와 발터 벨트로니(왼쪽)가 유세 여행을 떠나기 전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스웨덴:좌파 정치권 내부의 암묵적 협력

한국에 민주화운동의 전통이 있다면, 유럽에는 좌파운동의 정치적 전통이 있다. 19세기 말 이후, 유럽 각국에서 좌파 정치의 주도권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거대 정당에 있었다. 이런 사민당 주변에 1980년대 출범한 녹색당, 1990년대 중반에 세를 크게 불린 ‘좌파당’ 등이 있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전 각국 공산당을 전신(前身)으로 하는 좌파당들은 기존 ‘자본주의 전복’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노선으로 ‘전향’하면서 유럽 정치무대의 시민권을 획득했다.

유럽 각국에서 대체로 사민당은 35%대 전후, ‘녹색당+좌파당’은 15% 앞뒤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 합치면 50% 정도로 우파연합과 균형을 이룬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겠지만, 이들의 경쟁·협력 관계 역시 한국만큼이나 복잡하다. 역사적 전통과 이념에 따라 연대가 잘 이뤄지는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

스웨덴 좌파 정당들은 장기집권 경험을 가진 사회민주당의 헤게모니 아래서 대체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다지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 사이, 스웨덴 사민당의 지지율은 40% 정도였다. 녹색당과 좌파당의 지지율은 합쳐서 10%를 약간 웃돌았다. 그러나 사민당은 홀로 단독정부를 구성해왔다. 이는 전적으로 녹색당과 좌파당의 ‘암묵적 협력’ 덕분이다. 이 두 당은 의회에서 사민당을 지지하지만 연정을 함께 구성하거나 내각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각자 실리를 취하고 있다고 미국 조지아 대학의 크리스토퍼 앨런 교수는 지적한다. “사민당은 홀로 정부를 지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녹색당과 좌파당은 사민당 정부를 ‘건설적으로 비판’하면서 정책 실패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자율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스웨덴 녹색당은 1998년 처음 의회에 진출한 이후 5% 정도로 안정적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좌파당(스웨덴 공산당의 후신)은 90여 년 역사를 가진 정당으로 줄곧 6% 이상의 지지율을 누려왔다.

 

 

 

ⓒXinhua독일 사민당 슈뢰더 전 총리(위)의 ‘신중도’ 노선은 일종의 ‘좌파 신자유주의’였다.

 

이런 좌파당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사민당 소수 정부는 유지될 수 없다. 1990년대 중반, 불황과 신자유주의 바람 때문에 스웨덴 사민당은 복지제도를 다수 포기하려 한 바 있다. 이를 저지한 것이 좌파당이다. 당시 총선에서 좌파당은 12%를 획득해, 70여 년 만에 최악의 지지율(36%)을 기록한 사민당을 강력히 견제했던 것이다. 덕분에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월등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독일의 좌파 정치 풍경은 스웨덴과 많이 다르다. 스웨덴 사민당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중도좌파 정당인 독일 사민당은 좌파당을 연정 대상에서 미리 배제할 정도로 앙숙 관계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존재한다. 독일 좌파당의 전신인 동독 공산당은 한때 독일 사민당을 ‘사회주의 파시스트’로 적대시했던 국제공산당연합(코민테른)의 정치적 전통 위에 있다. 분단 기간에 사민당과 동독 공산당 간의 알력으로 쌓인 불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1990년대 말, 사민당의 ‘신중도’ 정책(클린턴·블레어의 ‘좌파 신자유주의’)에 반발하고 탈당한 당내 좌파 오스카 라퐁텐이 좌파당으로 들어가 당수를 맡기도 했다.

1998년 사민당이 ‘보수당의 15년 지배’를 끝장내기 위해 사용한 전술은 ‘녹색당과의 연정’이었다. 녹색당은 1983년 의회에 첫 진출한 이후 7% 정도 지지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당시 사민당은 예전의 독일 사민당이 아니었다. 오히려 복지 혜택을 축소하고 실업급여 기준을 강화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했다. 이른바 ‘하르츠 개혁’이다. 실업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지 않으면 만족스럽지 않은 일자리라 할지라도 취업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교리가 밑에 깔려 있다. 오히려 ‘사민-녹색 연정’의 역사적 의의는 이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쉽게 추진할 수 있도록 노·사·정 논의의 틀을 갖추게 했던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독일 사민당 “좌파보다 보수당이 좋아”

이에 따라 사민당 지지율이 매우 하락하면서 어부지리를 취한 것이 좌파당이다. 2005년 총선에서 좌파당의 지지율은 8.7%로 치솟았다. 그러나 사민당은 좌파당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는다. 좌파당이 ‘하르츠 개혁 철회’ ‘연금·실업급여 등 복지 혜택 개선’ ‘부자 증세’ 등 사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좌파 거대 정당인 사민당은 보수 거대 정당인 기민·기사련과 연정 구성에 합의한다. 각각 35% 내외의 지지율을 점유한 양대 거대 정당의 연정이므로 ‘대(大)연정’이라고 불린다. 선거결과로는 70%의 국민이 지지하는 연정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연정은 하르츠 개혁을 강화하고 기업의 실업보험 분담금을 내리는 우파적 조처와 함께 출산·육아 지원 등 좌파적 개혁을 병행했다. 구춘권 영남대 교수는 2007년에 쓴 논문에서 “(출산·양육 정책에서) 대연정은 사민당이 줄곧 요구해오던 스칸디나비아(스웨덴·덴마크·핀란드) 모델을 채택했다. 연금제도와 의료제도의 개혁 역시 시급한 문제였고, 대연정은 여기서 전형적인 정치 타협을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한다.

이탈리아:중도좌파 연합으로 집권

스웨덴 및 독일에 비해 이탈리아의 좌파 정치는 매우 역동적이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 공산당은 기존 혁명노선을 수정하고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좌파민주당으로 환골탈태한다. 이에 반발한 정치인들은 탈당해서 공산주의재건당(재건당)을 건설한다. 공산당이 중도좌파 정당과 혁신 정당으로 분할된 것이다.

1996년 좌파민주당은 중도좌파 정당들의 연대 조직인 올리브연합을 주도적으로 구성한다.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도좌파 정당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협약’ 등 중도우파까지 올리브연합에 참여시켰다. 올리브연합의 최고 지도자도 우파에서 끌어왔다. 그가 바로 이탈리아 기독민주당 내의 좌파였던 로마노 프로디다. 그러나 재건당은 제외했다.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데 장애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6년 이탈리아 총선 과정에서 올리브연합과 재건당은 긴밀히 연대했고 이에 따라 승리를 거둔다. 고원 상지대 교수는 “올리브연합은 공산주의재건당의 당선이 유력한 곳에서는 출마를 포기했고, 공산주의재건당은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올리브연합을 지원했다”라고 말한다.

 

 

 

 

ⓒReuter=Newsis스웨덴 사민당은 좌파당과 협력 체계를 유지해왔다. 위는 2006년 사민당 당수였던 페르손 총리.

 


1996년 총선에서 재건당 역시 8.6% 지지율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리지만 올리브연합 정부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재건당은 의회에서 올리브연합 지지를 약속하고 임금·복지 등 다양한 사회개혁 정책을 관철시키는 일종의 정책연합에 성공한다. 그러나 영국 웨일스 대학의 마크 도노번 교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올리브연합 역시 ‘좌파 신자유주의’의 자장 안에 있었다. 도노번 교수는 “올리브연합 지도자인 로마노 프로디는 총리가 된 이후 재건당의 민영화 반대 등을 뿌리치고 오히려 우파 정당인 북부동맹 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사회보장 축소 등 우파적 개혁이 이루어지자 재건당은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프로디 내각은 붕괴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좌파들은 1996년에 학습한 내용을 2005년 총선에서 더욱 철저하게 실행했다. ‘유니온’(UNION)이라는 연대조직 아래, 이전의 올리브연합은 물론 재건당·녹색연합까지 모두 포괄해 다시 집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합 공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번에는 재건당도 연립정부에 참여해서 사회연대부 장관을 맡았다.

그러나 이후의 이탈리아 좌파연합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연정에서 탈퇴한 재건당은 좌익 정당들과 함께 ‘좌익무지개연합’을 구성해 2008년 총선에 나갔으나 지지율 3.1%로 참패한다. 참패는 분당으로 이어지고,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3%대 지지율에 그친다. 한편 좌파민주당은 다시 중도 좌우파를 결집하는데 이번에는 ‘좌파’(left)를 당명에서 아예 떼내버린다. 이탈리아 민주당이 탄생한 것이다.

유럽 좌파 정치를 살펴보면, 어떤 형태든 ‘정치연합’은 대단히 유효한 집권 수단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그러나 독자적 진보 정당이 아직까지는 독립변수가 아니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유럽의 독자적 진보 정당은 거대 중도좌파 정당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견인’(스웨덴) 혹은 대립(독일)의 구실을 했을 뿐이다. 재건당은 두 역할을 반복했다.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네거티브 전략’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독자적 진보 정당이 거대 개혁 정당을 상대로 자당을 차별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독자 진보 정당들 역시 ‘신자유주의 지구화’나 EU와 유로존이라는 제약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포지티브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원 상지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반대 담론이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 내에서) 균열만 만들어온 경향이 있다. 포지티브한 측면에서 총체적 성찰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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