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지난 11월23일 열린 ‘대선 후보 초청 중소기업 희망 선포식’에서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중소기업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공약만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은 ‘중소기업 천국’이 될 것 같다. 대선 후보 모두 한목소리로 ‘내가 바로 중소기업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며 종합선물세트를 내놓기 바쁘다.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약속하지 않은 후보가 거의 없을 정도다(오른쪽 표 참조). 후보들에게 중소기업은 ‘황금어장’이다. 기업 수로 보면 국내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99.9%에 달하고, 국내 고용의 88.1%를 맡고 있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야말로 표밭을 일구는 지름길이다 보니, 후보들은 앞을 다퉈 ‘소원 수리형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며 ‘중소기업에 입사해 대기업으로 키운 경험을 가진 자신만이 중소기업을 살릴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중소기업인이 소원하는 많은 선물을 준비했다. 국영은행을 민영화해서 지원 자금을 늘리고,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 규모를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법인세를 낮추고, 대기업의 횡포에 당하는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불공정 하도급도 근절하고 하도급 거래 시 원자재 연동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대기업 위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중소기업 강국을 만들 수 없다’며 ‘중소기업을 위한 중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한다. 그는 강한 중소기업 5만 개와 디지털 가족 기업 30만 개를 육성해서 일자리 25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소기업 육성에 힘을 싣기 위해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고 수도권에 공장을 증설할 수 있는 업종을 늘리겠다고도 한다. 50년, 80년 대물림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우수 중소기업에는 가업 상속세를 전면 탕감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 근무로 병역을 대체하도록 하고, 연구개발 예산도 늘리겠다고 한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여느 후보 못지않게 푸짐한 공약을 내놓았다. ‘중소기업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1조원 규모 연구개발 펀드를 조성하고, 국가 연구개발 투자 중 10% 이상을 의무적으로 중소기업에 우선 할당해 10만 핵심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중소기업 지역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대기업 납품단가 압력이나 횡포를 막기 위해 하도급 관련 법령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정하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다. 세금 인하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에 대한 병역 혜택을 확대하고, 수도권 규제 완화를 비롯해 모든 기업 규제를 1년 안에 철폐하겠다고 한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중소기업 육성 공약에 의욕을 보였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 육성으로 500만 개 평생 일터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산자부 기능 중 일부를 통합해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후보와 달리 문 후보의 공약에는 직접 지원이나 세제 혜택 공약이 많지 않다. 중소기업 법인세를 최대 70%까지 인하하겠다는 약속 외에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역점을 두고 있다. 프리보드(일종의 장외시장) 같은 신주식시장 활성화, 중소기업은행 민영화 보류,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전담은행 설립, 해외 공동물류센터 확대 등을 통한 ‘중소기업 수출 고속도로 건설’ 등 직접 지원보다는 중소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노무현 후보도 중소기업 대통령 약속했으나

민주당 이인제 후보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중소기업 정책을 따로 마련했다. 이인제 후보는 ‘혁신형 중기지원센터’를 거점별로 설립해 중소기업형 혁신기술 개발 과제를 발굴하겠다고 약속했다. 권영길 후보도 중소기업부 신설을 기치로 내걸며 중소기업에 힘을 몰아줄 수 있는 공약에 역점을 두었다. 
5년 전 노무현 대통령도 지금의 후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혁신형 중소기업 발굴과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중소기업 처지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중소기업은 여전히 대기업과 관료들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중소기업에게 대기업은 ‘상전’이고 관료는 ‘하늘’이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불공정 백서’에 따르면 ‘제조업 하도급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된 분쟁조정은 2004년 38건, 2005년 50건, 2006년 73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거래 관계가 끊길까 봐 고소조차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멀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하는 것과 같다. 이미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력난과 자금난 역시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다. 1990년까지만 해도 대기업 생산성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소기업 생산성은 2000년대 들어 30%대로 떨어져 참여 정부에서도 정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대기업의 70.7%였던 중소기업 영업이익률도 2005년 61.1%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뽑아 중소기업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고, 개별 후보의 공약을 비교 분석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후보들의 공약이 엇비슷하다 보니 중소기업인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대선 후보의 공약보다는 의지와 철학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윤현덕 교수(숭실대·벤처중소기업학부)는 “중소기업이 ‘표밭’이므로 후보마다 화려한 공약을 내세우지만, 무엇보다 정책을 힘 있게 집행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중소기업부의 설치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논쟁은 제쳐두더라도, 중소기업부를 설치하겠다고 내세운 후보라면 중소기업 정책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는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만큼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다양한 나라에서 중소기업이 허덕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책이나 지원이 필요한 기업에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데 있다. 중소기업도 중견 기업, 벤처 기업, 소기업 등 종류가 많은데 대기업·중소기업으로만 구분하면서 각각의 기업 특성에 맞는 정책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공약에 중견 기업이라는 단어조차 올리지 않은 후보가 대다수다. 중견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선 이는 정동영 후보 정도다. 중소기업연구원 김광희 팀장(경제분석팀)은 “중소기업 지원 체계와 정책은 너무 많고 복잡해서 중소기업이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정책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가장 절실하다는 말이다.
 

ⓒKOTRA중소기업이 성장하려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이 관건인데, 이를 돕겠다는 공약은 거의 없다.

지원책은 많아도 중소기업이 계속 허덕대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발전 전략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하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추구했다. 이번 대선 후보 가운데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 시스템을 언급하지 않은 후보가 없다. 그러나 참여 정부 내내 아무리 ‘상생협력’을 외치며 동반성장을 지향했지만 하도급 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골이 더 깊어졌다.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박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양손에 든다면 아무래도 정책의 무게중심은 대기업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송 박사는 공약보다는 그 속에 담긴 철학을 읽으라고 제안했다. 예컨대 말로는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대기업의 금융 소유를 인정하고, 중소기업이 기댈 수 있는 금융기관이라고는 국영은행밖에 없는 현실에서 국영은행을 민영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를 ‘중소기업 대통령’ 후보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만 ‘해외시장 공략’ 지원 약속

중소기업에 대한 의지와 철학을 가늠하는 또 다른 방법은 ‘소원 수리형’ 또는 ‘선심성 공약’을 제거해보는 것이다. 자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 같은 선심성 공약은 시장을 왜곡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예컨대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금만 해도 한국은 남부럽지 않다. 한국의 중소기업 연구개발 투자 지원은 일본의 중소기업 지원보다 두 배나 많다. 그러나 이 돈이 대부분 핵심 원천 기술 개발보다는 단순 기술 개발 지원에 집중되고 여러 기업에 나눠주는 형태로 운영되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는 많은데,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창업 초기 기업 또는 신기술 기업을 지원하는 공약을 내건 후보는 정동영 후보나 문국현 후보 정도다. 고영선 KDI 재정사회개발연구부장 말대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창업 초기 기업이나 신기술 기업을 지원해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 나은데도, 여전히 대다수 후보는 직접 지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인도·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관건인데, 해외시장 공략을 돕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도 문국현 후보뿐이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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