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48·사시 32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제2부 부장검사. 한국 검찰을 대표하는 권오성 부장검사는 한명숙 전 총리 수사를 지휘하고, 직접 수사에 나선 인물이다.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민주당은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 판결이다”라며 공세에 나섰다. 당보다 친정을 배려하는 경향이 있는 검사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도 검찰 수사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BBK·삼성 비자금·〈PD수첩〉 수사 때도 없던 일이다.

하지만 검찰이 그렇듯 권 부장의 위치도 확고하다. 권 부장은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 무죄판결 이후, 김준규 검찰총장은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거짓과 가식으로 진실을 흔들 수는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권 부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검사다. 검사로서 수사를 잘하고, 열정이 있고, 기개가 있다. 검사가 가져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추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유죄를 받으면 법원이 정치적이라고 하고, 무죄를 받으면 검찰이 정치적이라고 한다. 한 전 총리가 무죄를 받았지만 권 부장은 한 전 총리 수사에서 놀라운 집념과 검사다움을 보여주었다. 포용력도 넓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권오성 부장검사를 통해 한 전 총리 수사와 검찰의 현주소를 들여다보았다.

ⓒ연합뉴스지난 3월 권오성 특수2부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5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수사를 잘한다 : 권 부장을 데리고 있었던 한 전직 검사장은 “권 부장은 수사를 잘하는 대단히 뛰어난 검사다. 검사 두세 사람 몫은 했다”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권 부장은 수사를 잘했다. 뇌물 수사가 굉장히 어려워서 피의자가 계속 말을 바꾸는 부분을 법원과 국민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뇌물 수사가 당사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도, 공소 유지도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달 재판에서 한 전 총리 쪽 백승헌 변호사는 “공소 사실과는 다른 법정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라며 검찰에 공소장을 변경할 뜻이 있는지를 물었다. 권오성 부장은 “공소장 변경을 검토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재판부가 “오찬장 테이블 위에 놓고 나왔을 수도, 비서 등을 통해 건네줄 수도 있는데 이걸 모두 ‘건네줬다’고 해버리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는다”라며 공소장 변경을 권유했다. 마지못해 검찰은 기존 공소사실을 ‘의자에 놓아 건네주었다’로 바꾸었다.

권오성 부장은 재판 최후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접 건네준 것 같다’라고 조서에 기재되었지만, 법정에 와서 ‘의자에 두고 왔다’라고 말한 것은 새롭게 생각해낸 추가 사실이다. 이는 진술 번복이 아니라 진술 구체화다.”
만약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공소 기각’당했을 가능성이 컸다고 한다. 한 경기 지역 판사는 “검사가 기본적인 수사에 충실하지 못했고 미숙하고 무리하게 기소했다. 뇌물을 준 동기와 당시 상황, 그 돈의 쓰임새가 어느 것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 한 부장검사는 사석에서 “상당히 아쉬운 수사였다. 검찰이 어영부영했다고 하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하다”라고 말했다. 한 서울 지역 검사는 “돈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손에 건네주었다, 의자에 두었다, 서랍에 넣어두었다는 둥 계속 바뀌었다. 검사가 상상력을 수사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열정이 있다 : 권 부장은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서른 살 경북대 대학원생 시절 사시에 합격했다. 권 부장은 1993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 검사로 임관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95년. 여느 검사와 다른 출발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목받는 검사는 아니었다. 잘나가는 검사의 기준인 법무부나 대검찰청 근무 경력도 없었다. 변방을 돌던 권 검사는 2009년 8월 검찰 핵심 중의 핵심인 특수부장 자리에 오른다. 당시 놀란 검사가 많았다. 같은 경북 출신인 김경한 전 법무장관이 힘을 썼다는 말이 검찰 내 정설로 통했다. 서울의 한 중견 검사는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에 가면 오버하는 검사들이 있다. 자존심은 간데없고 합리적인 판단이 마비되어 국민이 욕하는 것도 의식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람이 권 부장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뉴시스지난 1월 김준규 검찰총장이 주재한 전국검사 화상회의 모습.

권 부장은 한 전 총리 수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는 열정이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사님이 막 죄를 만들잖아요” “검사님이 무서워서 그랬어요” “검사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어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법정에서 “검사가 무서워 살기 위해서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진술의 임의성’이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자백의 임의성’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고문·협박·공포 상황 등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진실이 왜곡된 자백은 증거 능력을 배제한다는 의미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곽씨가 궁박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검찰에 협조적인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의 조사 시간이 진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도 검사가 요구하는 대로 진술한 점 등을 볼 때, 곽씨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본인의 기억과 다른 진술을 쉽게 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보인다.”

한 서울지검 특수부 관계자는 “권 부장의 의욕이 너무 커서 직접 수사를 했다. 특수부에 검사가 없고 주사만 있다는 소리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한 전직 지청장은 권 부장의 수사 방식을 옹호했다. “당연히 검사는 무서워야 하다. 안 무서우면 말을 안 한다. 코너에 몰리고 무서워야 자백하는 법이다. 검사를 보면 가끔 나도 무섭다. 그게 당연하다.” 열정이 지나쳐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시사IN〉 기자의 말에 권오성 부장검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아량이 있다 : 권오성 부장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도 담당한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2007년 초 부부 동반 식사자리에서 당시 차장이던 한상률 전 청장이 국세청장이던 남편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학동마을’ 그림을 선물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특수2부는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말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 ‘승진 대가 3억원 요구설’ ‘세무조사 무마설’ 등 한 전 청장의 다른 의혹이 구체화됐다. 한 전 청장의 비서를 지낸 국세청 직원은 “한 전 청장의 심부름으로 ‘학동마을’을 구입했고, 비용도 한 전 청장이 냈다”라는 진술을 했다.

하지만 특수2부는 도무지 의지가 없다.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난도 있다. “자신은 그림에 대해 모르는 일이며 인사 로비는 더더욱 모르는 일이다”라고 한상률 전 청장의 입장을 검찰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월 특수2부는 대기업 사기 대출사건을 조사하고도 처벌하지 않아 ‘대기업 봐주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신동아건설 경영진은 회사직원 330여 명의 이름으로 아파트 분양이 원활한 것처럼 속여 은행에서 911억원을 대출받았다. 특수2부는 공사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고육지책이었다며 입건하지 않았다. 권 부장은 원칙과 형평성을 무시한 대단한 관용을 보인 셈이다. 한 전 총리와 최문순 의원을 타깃으로 한 MBC 외주제작사 수사 때 보이던 열정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개가 있다 : 권오성 부장의 이력서에 가장 굵은 글씨로 남아 있는 부분이 1999년 당시 임창열 경기도지사를 구속한 사건이다. 그런데 고등법원에서 임 지사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러자 서울지검 강력부 권오성 검사는 서울지검 기자실을 찾았다. A4용지 5장짜리 성명서를 낭독하며 판결에 대해 검사가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권 검사는 “법원이 기자들과 만나 ‘검사의 정열이 지나쳤다. 정열이 지나치면 못생긴 여자도 예쁘게 보이기 마련이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있는지, 과연 법관의 양식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장인 서울고법 손용근 부장판사는 “자백이 금과옥조가 아닌 것은 기본이다. 젊은 검사의 열정은 이해하지만 이 정도의 공소사실로는 유죄를 입증할 수 없다. 불만이 있으면 대법원에 상고하면 될 일이지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뉴시스지난 2월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운데)·정운찬 국무총리(오른쪽 세 번째)가 장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검찰은 한 전 총리 무죄판결 이틀 후인 4월11일 ‘한명숙 전 총리 사건 판결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A4용지 14쪽짜리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했다. “(재판부가) 핵심 쟁점들에 대한 판단을 모두 누락하고, 한 전 총리의 거짓으로 일관된 주장에는 눈감은 반쪽 판결이다.” “일정한 결론을 내려놓고 이에 필요한 부분만 끼워 맞춤으로써 진실을 찾아가려는 노력은 아예 보이지 않은 판결이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법정에서 뇌물공여 사실을 자백했음에도 임의성이 없다는 판단은 독단적이고 모순되며, 법리에 어긋난다.”

검찰은 ‘반쪽 판결’ ‘보고 싶은 나무 몇 그루만 보고 숲 전체를 그린 부당한 판단’ ‘진실을 외면한 독단’ ‘근거 없는 예단과 추측에 근거한 재판’ 따위 표현을 동원해 재판부를 비난했다. 검사들의 발언인지 의심할 정도의 독설이다. 검찰이 판결에 불만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지만, 이토록 법원의 존재를 부정하고 법치(法治)의 틀을 무시한 경우는 없었다.

검사 출신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검찰의 판결 반박 자료를 보면 모두 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인데 검찰이 그렇게 완벽하게 수사하고 공소를 유지했다면 왜 무죄가 나나”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도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듯이, 검사는 ‘항소심에서 최선을 다해 다퉈보겠다’고 하면 되지 미주알고주알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어떡하느냐”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기동)는 선고 하루 전날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나섰다. 검사들조차 ‘동생이 맞고 오니 형이 나서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김기동 부장은 특수부에 5년 동안 몸을 담은 베테랑. 특수1부 부부장 시절에는 BBK 수사를 맡아 김경준씨를 직접 수사했다. 이후 특수3부장을 거쳐 현재 특수1부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형’ 특수1부도 수사 성과가 미진하기는 마찬가지다. BBK사건, 이명박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수사, 최열 환경재단 대표 사건 등 어느 하나 깔끔하게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4월1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한 전 총리 판결 하루 전인 4월8일 검찰이 ㅎ건설사를 압수수색했는데, 부도가 나 회사 실체가 없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귀남 장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근 특수1부는 한 전 총리의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검찰은 내용을 보강해 다시 영장을 청구했으나 또 기각됐다.

검사 출신 홍준표 의원은 “전직 총리를 수사하는데 그렇게 안이하고 엉성하게 하는지 참으로 부끄럽고 검사로서 치욕이다. 1심에서 무죄가 날 것 같으니까 또 하나 (별건 수사를) 찾겠다는 것은 검사로서 당당한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 나선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별건 수사에 대해 “정치적 이유 때문에 뒤로 미루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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