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뢰·폭뢰·격실·감압 체임버·피로파괴·반잠수정·해난구조대(SSU)·열상감지장비(TOD)·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 지난 2주 사이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해양·군사 전문가가 되었다. 1등 ‘지도교사’는 군 당국과 정부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바꾸면서 진실을 감추려는 인상을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 학습의욕은 날이 갈수록 고취됐다. 

해군은 애초 TOD 기록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가 1분20초 분량만 보여줬다. 이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나머지 40여 분 기록을 공개했다. 그러다 4월7일 민·군 합동조사단 중간결과 발표 자리에서는 없다던 침몰 순간 동영상을 추가로 공개했다. 백령도 초소에서 ‘자동촬영’된 이 동영상의 등장으로 사고 순간도 촬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사고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인 천안함 절단면도 군 당국은 애초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여론의 포화가 쏟아지자 이튿날 국방부가 나서 아직 공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더니, 4월7일에는 다시 공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공개 형식은 여전히 선체를 멀리서 노출시키는 방식을 취할 계획이어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언비어가 탄생하는 조건

사고 초기부터 수시로 바뀐 사고 발생 시각은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국방부와 군 당국은 “정확성보다 신속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사고 초기에 혼선을 빚었다”라더니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나중에는 “상황병이 일지를 잘못 적었다”라고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군함이 물새떼를 향해 76mm 함포를 ‘종종’ 발포한다는 것도 국민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너무 과도한 조처 아니었나”라고 말했다니, 환경단체가 펄쩍 뛰지 않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실종자 수색작업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사망 장소가 함수가 아닌 ‘제3의 장소’라는 보도도 나왔다. 사건 당일 천안함의 위치 발신 신호가 KNTDS 화면에서 사라진 9시22분 이후 생존자가 휴대전화로 상황을 알린 9시28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새로운 쟁점이다. 날이 갈수록 의혹은 쌓여만 간다.

오락가락·지리멸렬·의혹 투성이인 국가기관의 대응을 목격한 ‘학습된’ 시민들은 각종 설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린 병사가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다”라는 ‘해군판 김일병설’부터, “한·미 합동군사훈련 도중 미군함이 천안함을 오인 사격했다”라는 ‘미군 개입설’까지 각종 루머가 난무했다. 대왕오징어의 습격 아니냐는 ‘해저 2만리’판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했다. 군인 100여 명이 탄 배가 침몰한, 이 엄중한 현실이 SF로 유통되는 세상, 2010년 한국의 자화상이다. 

이것은 데자뷔다. 뚜렷하게는 2005년 겨울 황우석 교수 사태가, 희미하게는 지난해 용산 참사가 떠오른다. 정부기구의 보고체계 혼선·정보의 불투명한 공개·음모론의 횡행 등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 미네르바 사태도 이 연속선에 있었다. 각 사건은 개별적이고 돌발적이었지만, 그 전개 과정은 비슷하다.

모든 현상을 수렴하는 키워드는 ‘불신’이다.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절대 권위자나 정부를 믿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물론 이런 불신은 사태의 결과일 뿐 원인은 아니다. 원인은 국가 혹은 정부의 ‘무능’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협상문 영문 번역조차 제대로 못하거나, 일개 인터넷 논객의 경제 예측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정부의 ‘실력’이었다. 일련의 사건이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국가와 정부를 불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이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했다.  

ⓒ사진공동취재단
4월7일 천안함 생존자들의 기자회견(위)이 열렸다. 일부에서는 환자복을 입은 승조원을 내세운 게 ‘쇼’ 아니 냐며 비판하기도 했다.

좌우를 막록하고 퍼지는 불신 증후군

가령 한 블로거가 천안함 사태에 대해 올린 다음과 같은 글은 상당수 누리꾼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정부 예찬론자들은 해군을 믿자고 한다. 까라. 난 못 믿는다. 당장 해군을 안 믿으면 뭘 어쩔 거냐고? 뭘 어쩌긴 어째. 까고, 공부하고, 싸워가면서 바꾸는 거지. 국가를 믿고 청춘을 바치는 애들마저 못 지켜주는 국가가 무슨 국민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너희들은 몰라도 돼’ 따위 헛소리를 지껄이나.”     

실제로 4월8일 여론조사 기관 ‘GH코리아’에 따르면 ‘해군과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보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는 응답이 59.0%로 나타났다. ‘신뢰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23.1%에 그쳤고, ‘잘 모르겠다’가 18.0%였다. 전 연령층에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60세 이상 연령층에서만 ‘신뢰한다’는 응답이 약간 많았다. 군사 평론가인 김종대 D&D 포커스 편집장은 “생존자 구조는 해경이, 함미 발견은 어선이, 천안함 인양은 민간이 하는 형편에서 군이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군에 대한 불신은 군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이런 세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4월6일 “천안함 ‘불신비용’ 너무 크다”라는 기사를 통해 “유언비어와 음모론이 난무하고 정치권은 갈라져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라며 불신의 증폭을 염려했다. 이 신문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입을 빌려 “9·11 때 미국은 알 카에다의 소행이란 걸 초기에 알았다. 그런데도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는 데 3년여가 걸렸고 국가적으로 이를 기다려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누리꾼의 시선은 차갑다. 한 누리꾼은 중앙일보 기사에 “9·11 때 미국 국민 사이에서 온갖 루머가 다 쏟아져 나왔다. 기다린 것은 미국 국민이 아니라 미국 언론이다. 미국 언론 스스로 추측 보도를 자제하며 기다린 것이다. 이런 글 쓰려면 너희들 신문에 무슨 기사가 올라왔는지부터 읽어보라”고 댓글을 달았다.

실제로 일부 보수 언론도 이런 혼란과 불신의 확산에 한몫했다. 사고 직후 북한 잠수정이 움직였다거나, 자체 모터를 장착한 어뢰를 사람이 직접 몰고 가 자폭하는 가미카제식 ‘인간 어뢰’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추측 보도를 내보냈다. 인간 어뢰설은 사고 초기만 해도 일부 보수 언론조차 ‘유언비어’의 사례로 적시한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1990년대 말 북한의 유고급(85t) 잠수함이 동해안을 들락거린 사실까지 뒤늦게 ‘발굴 특종’해가며 북측 공격 가능성을 부채질했다. 

개 가족만 믿거나, 공동체 떠나거나

언론까지 추측 보도를 일삼다보니 일부에서는 ‘관련된 모든 사실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군의 ‘마지노선’인 군 기밀까지 위협하고 있다. 군의 기밀 공개 기준이 들쭉날쭉해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와 군 당국은 함포의 유효 사거리 등 민감한 부분은 공개하면서도 함정 간 교신기록은 공개를 거부해 의구심을 사고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군사기밀보호법에서는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때’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군사 기밀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도 “지금 인터넷에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건  국가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아서이다. 기밀 공개로 인해 군 운용에 문제가 생긴다면 비용을 지출해서라도 새로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라고 말했다.

눈여겨볼 것은 이런 불신 현상이 좌우를 막론하고 일어난다는 점이다. 가령 우파 언론인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4월8일 자기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천안함 사고 직후 청와대 대변인이 북한의 움직임과 관련해 ‘특이사항이 없다’고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 북한 개입 가능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인명구조의 중요성만 강조함으로써 군함 침몰이라는 거대한 안보사건을 해난사고 정도로 격하시킨 셈이다. 여기서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기 시작했다.”

조 대표는 같은 날 열린 ‘천안함 사태 관련 긴급 강연회’에서도 연사로 나와 “안보에서도 중도 노선을 택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를 대변하는 정당·정권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도 강연자로 나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가 모호하다.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송관재 교수(연세대 심리학)는 이런 광범위한 사회적 불신이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사회 지도층이 없다는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라면서도 “이런 불신으로 인해 조급하게 사태 해결을 촉구하거나, 한쪽으로만 이슈를 몰아가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가 천암함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사회적 신뢰’의 위기를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개인 간 협력을 촉진하는 일체의 무형자산을 ‘사회적 자본’이라 부르는데, 우리 사회는 이런 사회적 자본이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경제학회가 펴낸 〈한국경제포럼〉논문에 따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자기 가족에 대한 신뢰도를 100점 만점으로 매겼을 때 대통령·정부·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51점, 46점, 39점을 줬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신뢰도(46점)와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해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OECD 29개 국가 중 한국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겨우 22위였다. 특히 정부에 대한 공적 신뢰가 부족해 시민이 정책 결정에 반대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공적 신뢰의 추락은 결국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온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영화 〈괴물〉의 메시지처럼 직계가족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되거나, 공동체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우려할 만하다. 〈88만원 세대〉 공저자 박권일씨는 “국가의 무능이 반복적으로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부 바깥의 능력 있는 집단(민간 기업)에 기대는 민영화 만능 논리가 더 강화될 수 있다. 결국 약육강식의 사회를 개선하기보다 적응하려는 태도가 일반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중앙일보가 동아시아연구원과 공동으로 ‘한국의 파워조직 25곳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현대차·SK·삼성 등 민간 기업이 1·2·3위를 싹쓸이한 반면, 청와대(17위)·민주당(24위)·한나라당(25) 등 공적 기관은 모두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공직 기관에 대한 불신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정부와 보수 언론은 오늘도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불신 세력을 질타하기 바쁘다. 그러나 이들을 ‘불신의 바다’로 침몰시킨 건 좁게 보면 군 당국과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고, 넓게 보면 우리 사회 전체다. 불신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을 ‘신뢰의 대지’로 끌어올리는 일이 전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군 정보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 -김은지 기자

“요구하신 자료는 군사비밀에 해당하는 자료이므로 공개할 수 없음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당 천안함 침몰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3월30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국방부는 민주당이 요청한 자료 50건 가운데 35건을 제출하지 않았다. ‘군사비밀이라 공개가 불가능하다’가 14건, ‘대면보고만 가능하다’는 답이 14건, ‘내용 없음’이 6건, ‘첨부문건 누락’이 1건이었다.

4월8일 천안함 침몰 관련 해경의 보고 자리에서도 승강이가 있었다. 자료를 달라는 국회 보좌진들과 줄 수 없다는 해경 사이에 공방이 오고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하도 안 준다기에, 그럼 그냥 가져갈 테니깐 ‘절도죄’로 잡아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해경 수뇌부에서 자료 단속을 철저하게 시킨다고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료를 이렇게 안 주면 뭘 가지고 조사하느냐”라고 말했다. 민주당 국방위원회 소속 한 보좌관은 “국방부 특성상 다른 부서에 비해 공개 못할 자료가 많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래도 사실관계는 맞는 걸 줘야 하는데 자꾸 틀린 자료를 주니 (그쪽을) 못 믿겠다 싶어 전체 자료를 요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를 맡는 의원들과 보좌진에게는  ‘2급 비밀 인가증’이 발급된다. 이들에게는 2급 이하 기밀문서 열람이 허용되지만 국방부 등은 사안별로 열람을 제한하기 일쑤이다. 이번 천안함 사안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나라당 국방위 한 보좌관은 “국방부가 늘 자료에 대해서 디펜스(방어)한다. 안보를 내세우며 ‘못 준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천안함 정국에서는 특히 심했다. 그러다보니 각종 설이 난무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나라당 관계자도 “사실 외국인과 민간인이 이번 천안함 사태에 조사단으로 참여한다는 게 군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군 스스로 좌초한 신뢰의 문제가 있다보니 (군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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