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5일 저녁 〈시사IN〉과 인터뷰에 응한 봉은사 명진 주지스님은 “불교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라며 한숨을 내쉬면서 말문을 열었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자승 총무원장의 만남이 왜 부적절했다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불교 관련 문화재가 60%나 됩니다. 사찰마다 문화재를 보호, 수리하는 데 정부 예산을 얻어 써야 해요. 예산은 사실상 권력자 손에 달려 있어서 종단이 어느 정도 정부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어요. 그래서 그날(지난해 11월13일) 안상수 원내대표와 자승 총무원장이 만나 식사하면서 템플스테이예산 같은 것을 지원 요청했다는데, 관행적인 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걸 야합이라 보지는 않아요. 문제는 그 자리에서 집권당 원내대표가 주지 인사 문제를 언급했다는 게 불교계를 깔보는 것이고 굉장히 불쾌해할 일이지요. 더욱이 안 원내대표가 ‘좌파 주지’를 내보내라고 했다는데 그는 병역기피자로서 좌파 우파 따지고 공격할 기본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그런 말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내가 베트남전에 참전할 당시 안상수 대표는 속칭 ‘군 도바리’(병역을 피해 다니던 일) 치던 사람입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탈세와 병역기피를 한 사람은 국가 지도자 되면 안 돼요. 옛날 한국전쟁 때도 전선의 병사들이 오죽했으면 ‘빽! 빽!’하고 죽어갔다(빽 없는 사람만 총알받이로 나간다는 뜻)는 웃지 못할 말이 나돌았겠어요. 그만큼 우익을 자처하는 지도층 가운데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많은 현실을 개탄해서 나온 말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들어앉아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식으로 말하면 ‘국격’의 문제예요.
현 정부 지도층 전반에 그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나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래요. 경제만 잘되면 국격이 높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지구상에는 가난해도 도덕적·정신적 가치를 높이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그런 국민과 국가도 있는 법이고, 대부분 일정 정도 부가 축적되면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국가로 나아가면서 지구촌에 서로 공존하는 것 아닙니까.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 수행자의 활동을 ‘좌파’라고 몰아붙이면 그것은 부처님 전에 벌 받을 말이지요. 이 정부 들어 물질 가치만을 최고로 치니까 도덕적 가치는 없어지고 있어요. 대통령부터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러면서 어떻게 국격을 높이자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요. 약속 같은 건 언제든지 뒤집어버려도 종국에 배만 부르면 된다는 건 돼지나 하는 짓이지 철학적 성찰을 하는 인간이 할 짓은 아니잖아요.
안상수 대표는 끝내 명진 스님을 모른다고 주장하는데요.
안상수씨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차라리 처음부터 ‘봉은사 주지가 대통령을 자꾸 비판해서 듣기 거북하니 원장스님이 좀 말려주십시오’라고 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했을 겁니다.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안상수 대표의 거짓말로 비롯되어서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고 볼 수 있어요. 연주암에서 내가 11년 간 선원장 하면서 10여 차례나 만난 사람이 안상수씨예요. 그런 나를 한 번도 못 본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계속 시치미를 뗀다? 그런 사람이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것은 나라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자기 입장 곤란하다고 아는 사람도 모른다고 거짓말해버리는 이런 정치인은 기본적 도의도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라를 운영하는 지도층이 별거 아닌 것부터 거짓말하는 것에 익숙하니 거짓말이 상습이 된 거예요.
총무원과 안상수 대표 모두 외압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원장스님이 불교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좌파 주지 내보내라고 한 것이 압력이 아니고 뭔가요. ‘봉은사 주지는 반드시 짤라라’ 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만 압력인가요. 안상수씨가 이제 와서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라고 발을 뺀다는 소리도 들리던데 그럴수록 우리 종단 체면을 우습게 만드는 짓입니다. (나를 열 번이나 만나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머리도 나쁜 사람이 계속 거짓말을 하려다보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꼴이지요. 천년 고찰 봉은사에서 천일기도한 사람을 두고 안상수가 좌파 주지 운운하며 나가라는데 부처님 전에 벌 받은 거라 생각하고 직을 내놓아야 합니다. 직을 놓고 쉬는 것도 그가 지은 업을 닦는 길이지요.
안상수 대표의 외압 발언을 확인한 김영국 거사의 기자회견은 사전에 조율한 것인가요.
봉은사 직영사찰 결정 직후 내가 외압을 공개 거론하니까 주변에서 법률자문을 하는 사람들이 ‘현장 목격자인 김영국 거사를 불러 다시 녹취라도 뜹시다’라고 권했어요. 나는 “그것은 수행자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수행자는 불자를 믿어야 한다. 만일 김영국 거사가 곤란해서 아니라고 발을 빼더라도 그것은 다 내 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라고 했어요. 김영국 거사가 고마운 것은 한나라당 당원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나에게 귀띔해준 사안이었는데도 진실을 밝혀야 할 때가 오자 용기를 내줬기 때문입니다. 안상수 대표가 자승 원장스님 앞에서 ‘좌파 주지 교체’ 운운하며 압력을 넣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 거사는 불자로서 충격을 받았지만 한나라당 당원이기에 고민하다가 ‘자승 원장스님이 곤란한 내용이니까 그냥 알고만 계십시오’ 하고 내게 말해준 내용이거든요.
어제 수경 스님과 도법 스님이 봉은사를 찾았는데 무슨 말이 오갔나요.
두 분 스님은 봉은사 사안이 커지다보니 수습 좀 해보자는 차원으로, 봉은사와 총무원 양측 의견을 좁혀보자고 온 겁니다. 나는 그분들께 ‘이 상황에서 무조건 좁힌다고 될 일이 아니니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밝힌 뒤 정도로 원위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랑 자승 원장스님이랑 봉은사 법당 부처님 전에 함께 가서 참회하면 다 해결된다’고 말씀드렸어요. 총무원장 스님이 앞으로 봉은사 사부대중과 협의·화합하면서 일을 처리해나가겠다고 하면 되는 일입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단이 봉은사 직영 지정에 외압은 없었다며 명진 스님을 종법 위반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안상수 대표가 자승 원장 앞에서 불교를 능욕한 말을 한 데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종회 표결 과정에 외압이 없었다는 주장만 하는 것을 보고 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내부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비칠까봐 여기서 더는 말하지 않겠지만 종회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불교 단체들이 연합해 봉은사 직영 지정 파문을 공론의 장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수용하십니까.
내 생각도 그래요. 총무원, 중앙종회, 중앙신도회, 재가불자연대, 봉은사 신도회 등이 한자리에 모여서 직영을 왜 해야 하고, 무슨 이점이 있는지, 직영화하지 않고 이대로 놔두면 뭐가 잘못되는 것인지에 대해 공론화해보자는 겁니다. 총무원 기획실장 원담 스님이 ‘봉은사가 모범 사찰이기 때문에 직영화했다’고 말했다는데 그렇다면 다른 절은 불량 사찰인지, 또 도선사와 봉은사를 같이 직영사찰로 하려고 했다가 도선사를 뺀 것도 거기는 불량 사찰이어서 그런 것인지 등 모든 궁금증을 납득할 수 있게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40여 분의 인터뷰가 끝나고 저녁 노을 진 봉은사 앞마당으로 나선 취재진을 배웅하던 명진 스님이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강조해달라고 했다. “병역은 기피할 수 있으나 부처님 법에 의지한 진실은 기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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