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는 어림잡아 4억5000만 년 이전부터 존재했다. 드문드문 발견되는 ‘투구게 화석’이 그 증거다. 한반도 사람들이 언제부터 대게를 굽고 쪄먹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 진상품으로 한양 창덕궁이나 경복궁에까지 올라왔다고 하니, 세종과 연산군 혹은 영조와 명성왕후도 그 맛에 입맛을 다셨으리라 추정된다.

이 귀한 대게가 일반 가정의 밥상에 오른 것은 1960년대였다. 수많은 게잡이 어선이 닥치는 대로 그물을 늘어뜨려 대량 포획한 결과였다. 이후 장삼이사까지 그 고소한 맛에 반하면서 대게 수요는 급격히 늘어난다. 통통한 게살 앞에서 침이 괴는 사람이 늘면 늘수록 해저의 대게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결과 대게는 다시 해산물의 ‘귀족’ 지위에 올랐고, 요즘도 배 두드리며 먹으려면 1인당 5만원 이상은 있어야 가능하다.

ⓒ시사IN 오윤현몸집이 가로·세로 9cm 이하인 영덕대게는 아예 잡지도 않는다. 요즘은 생산자 표시(녹색 띠)를 해놓아 ‘가짜 대게’에 속을 염려가 별로 없다.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을 찾은 날은 3월 중순. ‘영덕대게 축제’에 35만명이 다녀갔다는 뉴스를 본 다음이었다. 문득 대게의 무엇이 그 많은 사람을 강구항으로 끌어들였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백컨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미지의 영덕대게 맛’을 음미해보고 싶었다. 단맛이 도는 꽃게 맛이랑, 쫀득쫀득한 털게의 식감이랑 많이 다를까. 게다가 요즘은 대게 철이지 않던가. 무작정 원주-제천-안동-청송을 찍고 강구로 내달렸다.

축제가 끝난 평일의 강구항은 한산했다. 길가로 비죽배죽 나온 ‘대게’ 간판과 어항이 눈을 어지럽혔지만, 입에는 벌써부터 도리깨침이 괴었다. 10여 분 게걸음을 걸으며 가장 맛있어 보이는 수족관을 고른 뒤 가격 흥정을 벌였다. 대게 중에서 살이 가장 꽉 차 있다는 박달게는 한 마리에 5만~12만원선. 그중 가장 작은 놈을 고르자 주인이 “두 사람이 먹기에 부족하다”라며 머뭇거린다.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흥정. 새로 고른 놈은 8만원짜리 박달게였다. 홍게와 갓바리(어린 대게)를 덤으로 얹어주겠다는 주인의 말에 홀려 “콜!” 하고 외쳐버린 것이다.

입맛을 돋으라며 내준 땅콩과 새끼 소라를 까먹으면서 지켜보니 어라, 대게를 찜통에 넣기 전에 미지근한 물로 죽이는 게 아닌가. 싱싱한 놈을 삶아야 살이 더 싱싱하고 맛있지 않을까 싶어 이유를 물어보니, 정반대란다. “산 놈을 그대로 찌면 몸을 비틀어 다리가 떨어지고, 심하면 게딱지 안의 내장까지 쏟아진다”라고 강구 주민 강계옥씨가 일러준다. 20여 분을 기다리자 ‘칙칙’ 김빠지는 소리가 났고, 마침내 먹음직스럽게 주황빛을 띤 게 세 마리가 등장했다.

텅텅거리는 뱃소리를 들으며 대게의 집게발에서 빼낸 살부터 살그머니 깨물어보았다. 첫맛은 달았다. 곧이어 오동통 쫄깃한 느낌. 몇 번 더 저작(咀嚼)거리자 고소한 국물이 입속 가득 차오른다. 누구는 이 맛을 바다의 한 부분을 떠먹는 기분이라 했지만, 글쎄 내게는 ‘조화로운 맛’ 자체였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단지 뜨거운 김에 쪘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듯 뛰어난 풍미·향미·식감을 골고루 갖출 수 있을까. 몸통 살은 더 부드럽고 육즙도 풍부했다(코코넛 즙과 호두·치즈 등을 버무리면 이처럼 고소한 맛이 날까).

홍게 맛도 비슷했다. 단맛과 고소한 맛이 잘 어울렸다. 살이 약간 무른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갓바리 맛은 대게와 잘 구분이 안 갔는데, 그 바람에 다음에 오면 (비교적 값싼) 갓바리만으로 배를 채워보리라 마음먹게 만들었다.

게 세 마리가 부족하다 싶었는데, 웬걸 홍게와 갓바리 다리 예닐곱 개가 고스란히 남았다. 그 다리들을 보니 문득 ‘이 숯도 한때는/흰 눈 얹힌/나뭇가지였겠지’라는 일본의 하이쿠(짧은 시)가 떠올랐다. 그랬을 것이다. 이 게들도 며칠 전까지는 저 대나무처럼 생긴 긴 다리로 바다를 휘젓고 다녔을 것이다. 대게와 갓바리는 해저 100~ 400m에서, 홍게는 400~1000m에서….(이 밖에도 영덕에서는 박달게보다 조금 작은 너도대게와 산호대게를 맛볼 수 있다).

ⓒ시사IN 오윤현찐 상태에서는 게를 종류별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위 맨 앞에서부터 갓바리·박달게·홍게이다.
공연히 애달픈 마음이 들어 서둘러 선창으로 나왔다. 꽃샘바람이 배의 깃발을 찢을 듯이 뒤흔들었다. 낡은 수협 건물에 들어서니 경매사와 어부 몇몇이 난로 주위에 앉아 곁불을 쬐고 있다. 1년 365일 중 363일 경매를 진행한다는 경매사 이창운씨에게 영덕대게와 관련한 ‘수수께끼’를 물었다.

“영덕대게는 1년 열두 달 잡는가?” “아니다. 산란·탈피하는 6~11월에는 조업을 못한다(홍게는 다르다. 혹서기인 7, 8월을 빼고는 언제든지 잡을 수 있다).” “대게의 제철은 언제인가?” “1~3월, 이맘때다.”

대답이 시원시원하다. “동해에서 잡는 게를 모두 영덕대게라 하나?” “지역마다 다르다. 자기 동네 이름을 붙여 울진대게·죽변대게·정자대게라 부른다.” “북한산도 판다고 들었다.” “맞다. 북한에서 직접 차로 속초까지 내려온다.” “그 양은?” “모른다. 우리는 영덕에서 잡은 것만 위탁 판매한다.” “북한산 대게 맛은 어떤가?” “수역이 위로 갈수록 껍데기가 두껍고 맛도 덜 고소하다고 들었다. 값도 비교적 싸다.”

내친김에 어획량까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영덕에서 연간 얼마나 잡히나?” “지난해에 25t 이상 선박 8척과 70t 이상 선박 5척이 자망(걸그물;대게 잡이용)과 통발(홍게 잡이용)로 대게 171t과 홍게 147t을 잡았다.” “올해는 어황이 어떤가?” “3월16일 현재 대게 29t, 홍게 11t을 포획했다."

울진-영덕 연근해에 게가 많이 서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해저에 게들이 좋아하는 암초와 모래가 펼쳐져 있는 덕이다(암초에 사는 게일수록 속살이 더 단단하다). 배들은 멀리 독도 근해까지 나아가 게를 잡아온다. 만만치 않은 공력이 들어가는 셈이다. “배가 멀리 나가면 힘들 것 같다”라는 말에 옆에 있던 한 선원이 나선다. “배 한 척이 나가면 보통 사나흘을 바다에 떠 있다. 그 탓에 유류비·인건비가 1500만원 정도 들어간다.” “한 번에 얼마나 잡나?” “배마다 다르다.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정도….”

경매하는 진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이틀 동안 배가 나가지 않아 ‘장’이 서지 않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영덕대게의 원산지로 불리는 축산항으로 올라가보았다. 강구항보다 훨씬 한산했다. 죽도 정상에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바람이 여간 드센 게 아니다. 할 수 없이 더 위쪽에 있는 창포리 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그곳 언덕에서 보는 바다는 바닷가에서 보는 바다와 달랐다. 졸린 듯 몽롱했고, 마치 젤리처럼 끈적끈적해 보였다. 왼편 언덕에 올라서자 집채만 한 풍력기가 비행기처럼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부드러운 바람, 안온한 바다, 따스한 봄 햇살, 상상력을 자극하는 낯선 풍경이 있는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일까, 영덕에서의 1박2일은 너무 짧았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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