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카쓰’가 드디어 대량 살인 사건으로 발전했다. ‘곤카쓰(婚活)’란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결혼 활동’을 줄인 말로 2년 전 한 잡지의 대담에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지난해에 간행된 ‘곤카쓰 시대’라는 책은 1400만명에 이르는 30, 40대 독신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곤카쓰’는 매년 연말에 발표하는 유행어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봄에는 ‘곤카쓰’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NHK와 후지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다.

이 ‘곤카쓰’를 무대로 한 대량 살인 사건이 일본에서 화제이다. 사이타마 현 경찰은 지난 8월6일 승용차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40대 남성을 발견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남성이 자살한 것으로 단정했다. 하지만 자살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아 경찰이 수사를 계속했다. 이때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이 도쿄 도시마 구에 사는 기지마 요시나에(34)라는 여성이다. 경찰 수사에서 기지마는 죽은 40대 남성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었으며, 남성이 소지했던 450만 엔이 사라진 사실이 드러났다. 사이타마 현 경찰은 지난 9월25일 기지마를 결혼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닷새 뒤 다른 몇 건의 결혼 사기와 관련한 혐의를 추가로 발견하기도 했다.

일본의 30~34세 남성 미혼율은 47.1%나 된다. 위는 도쿄 긴자 모습.
지금까지 밝혀진 기지마의 결혼 사기 행각은 모두 6건이다. 공통분모는 한결같이 상대가 모두 의문사했다는 점이다. 기지마는 2년 전 지바 현에 사는 70대 남성으로부터 거금 7400만 엔을 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이 남성은 송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2층에서 돌연 사망했다. 2년 전에도 기지마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50대 남성으로부터 결혼을 빙자해 1700만 엔을 갈취했다. 또 자택에서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된 80대 남성의 은행 계좌에서 180만 엔을 인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녀를 만난 남자는 모두 ‘의문사’

어느 세계나 ‘뛰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돗토리 현 경찰은 11월2일 돗토리 시에 사는 35세 여성을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 수사에서 이 여성의 주변 남성 6명이 모두 의문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몇 년 전 그녀와 교제했던 40대 신문 기자는 기차에 치여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리고 다음 해 남성 경비원은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이 여성에게 500만 엔을 빌려준 현직 경찰관은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또 그녀와 교제했던 40대 트럭 운전사도 익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이 시체를 검시한 결과 체내에서 수면제가 검출됐다. 지난해 10월에 변사한 50대 남성과 또 다른 교제 상대였던 50대 남성의 체내에서도 수면제가 검출됐다.

이 여성은 혼자 아이 다섯을 키우는 호스티스였다. 그래서 술집과 자기 집이 그녀가 벌인 결혼 사기극의 주요 무대이다. 반면 홋카이도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기지마의 주요 활동 무대는 인터넷 ‘곤카쓰 사이트’였다.

지금 일본에서 중매산업이 활황을 맞고 있다. 25~44세 독신 남녀가 1400만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히 30세에서 34세 사이 남성 미혼율이 47.1%, 여성 미혼율이 32.0%에 달한다. 그중 약 9할은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면 꼭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결혼중개업 시장 규모도 약 600억 엔으로 늘어났다. 결혼중개 회사도 4000개에 달한다. 그중 가장 많은 업소는 옛날 방식의 중매, 카운슬러형 결혼 상담소이다. 반면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회원이 자유롭게 상대를 검색하거나 교제를 신청하는 ‘곤카쓰 사이트’, 즉 결혼 상대를 소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급격히 늘었다. 가장 큰 회사는 ‘매치닷컴(match.com)’이란 포털 사이트로 회원이 거의 100만명에 이른다.

매치닷컴(위 왼쪽)은 일본 최대 중매 사이트이다. 위는 관리가 엄격한 ‘야후! 결연’ 사이트. 왼쪽은 살인녀 기지마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자기 사진.
이런 ‘곤카쓰 사이트’는 가입자의 신분을 엄격히 확인한다는 점에서 ‘데아이(手會·만남)계 사이트’와는 좀 다르다. 예컨대 ‘야후! 결연’ 사이트는 회원 등록 때 보험증이나 운전면허증 사본을 제출하도록 했다. 또 회원 등록비로 남성의 경우 월 4800엔, 여성의 경우 3500엔을 받는다. 회원은 사이트에서 조건에 맞는 상대를 찾으면 인터넷상에서 상대에게 교제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동의해야만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 또 위법 행위가 발견되면 즉각 회원의 프로필을 삭제해 결혼 사기와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장치를 갖추었다.

기지마는 이런 엄격한 ‘곤카쓰 사이트’를 무대로 어떻게 결혼 사기극을 펼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일본 공안위원회는 ‘데아이계 사이트’가 원조교제나 매춘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자 지난해 12월 관계 법령을 개정했다. 즉 사이트 운영자가 공안위원회에 등록하고 이용자의 연령을 철저히 확인하도록 의무화시켰다. 이에 따라 ‘데아이계 사이트’의 상당수가 ‘곤카쓰 사이트’로 간판을 고쳐 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이트 대부분은 아직 신원 확인이나 회비를 징수하지 않고 있다. 기지마도 심사가 엉성한 ‘곤카쓰 사이트’를 이용해 직업과 연령, 주소 등을 수시로 바꾸며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기지마는 “국립 음악대학 졸업자로 야마하(악기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하고 싶은데 자금원조를 해줄 수 있는 독지가를 찾는다”라는 메일을 ‘곤카쓰 사이트’에 올렸다. 이 메일을 보고 연락한 사람이 바로 기지마에게 거금 7400만 엔을 사취당한 70대 남성이다.

기지마 “우리 엄마는 왕족” 허풍

기지마는 또 아버지가 도쿄 대학 교수, 자가용 비행기를 조종하다 사망했다는 식으로 메일에 적었다. 어머니도 왕족 출신으로 가정부를 두 명이나 두었으며, 마사코 왕세자비가 몸소 문병을 다녀갔다는 식으로 허풍을 떨었다.

‘곤카쓰’란 말의 창시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주오 대학 교수는 우선 “눈높이를 낮춰야 결혼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라고 충고한다. 거품경제 시대인 1990년대 일본에서 ‘3고’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고학력·고수입·고신장’을 두루 갖춘 사람을 결혼 상대로 선호한다는 말이다. 지금도 도쿄의 미혼 여성 4할이 연 수입 600만 엔 이상 남성을 결혼 상대로 꼽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야마다 교수는 “25세에서 34세까지의 미혼 남성 중에서 연수입 600만 엔을 넘는 사람은 3.5%뿐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눈높이’를 낮췄다고 해서 결혼 상대를 금방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 미혼자의 9할은 결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금 결혼 상대를 물색 중이다. 그러나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초조감이 결혼 사기극에 말려드는 큰 이유라고 야마다 교수는 말한다.

기지마의 결혼 사기극에 말려든 피해자는 3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춘 남성들이다. 그럼에도 ‘결혼’이라는 두 글자에 눈이 멀어 기지마에게 큰돈을 갖다 바치고 목숨까지 잃었다.

노무라 신페이 전 참의원 의원(78)은 주간지 〈슈칸 분순〉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 세상에 상냥한 여자는 없다. 늙은 사람에게 다가오는 여자도 없다. 언변이 좋은 여자는 무조건 조심하라.” 그래야만 결혼 사기에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자명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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