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법원은 10월29일 효성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창구로 지목돼온 방위사업체 로우테크놀러지(로우테크) 이 아무개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오랜 세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에 군장비를 납품하면서 원가를 부풀려 220여 억원의 국민세금(국방예산)을 편취한 혐의다. 로우테크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동서인 주관엽씨가 최근까지 실질적 소유주 노릇을 한 회사다. 여기에 주씨의 부인이자 조 회장의 처제인 송진주씨, 조 회장의 장남이자 (주)효성 사장인 조현준씨 등 조 회장의 가족 및 친인척과 효성그룹 임직원 출신이 복잡하게 얽혀 이상한 방위사업을 벌여왔다. 따라서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부당하게 가져간 220억원이 효성 오너 일가의 미국 내 불법 비자금 의혹을 받는 것이다. 주범 주씨는 현재 미국에 도피 중인데 최근 국감장에서 봐주기 수사에 대한 여야 의원의 질타를 받은 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돈 사이인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왼쪽).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이들의 원가 부풀리기 수법은 크게 두 단계였다. 로우테크의 군납품 사업은 주로 육군의 소대급 및 대대급 교전용 훈련장비(마일즈 장비)와 개량형 야간표적지시기였다. 이들 제품은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했지만 로우테크는 이를 국산 제품인 것처럼 군에 납품했다. 수입 루트는 효성그룹 미국 현지법인인 효성아메리카였다. 조현준 효성 사장이 책임을 맡은 효성아메리카 로스앤젤레스지사가 자리한 컬럼비아 거리 910번지에는 로우테크 실 소유주이던 주관엽씨의 개인회사 ‘세로닉스 마이크로웨이브’와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 처제 송진주씨 명의의 개인 회사 ‘ZN테크놀러지’가 한 건물에 있다. 이렇게 효성 오너 일가인 조현준·주관엽·송진주씨가 미국에서 간여해 방산 물자를 수입함으로써 취하게 된 폭리는 무려 원가의 3배였다.

1차 원가가 부풀려진 채 국내에 들어온 부품은 다시 3배가 추가로 부풀려졌다. 이 과정에서 로우테크는 장비를 국내에서 직접 개발한 것으로 위장함과 동시에 원가를 부풀릴 목적으로 유령업체 3개를 만들어 재하청을 준 것처럼 편법을 썼다. 이들 유령회사는 가격을 부풀려 조석래 회장의 막내 처제 송진주씨가 100% 실명 투자한 제이송연구소라는 회사에 다시 발주했다. 제이송연구소는 다시 주관엽씨의 친구 신 아무개씨 부부가 만든 무역회사 영진전자로부터 수입하는 것으로 꾸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평균 70달러(당시 환율 약 6만3000원)대에 불과한 야간표적지시기 광원 부품이 무려 85만원까지 부풀려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국방예산에서 부당하게 가져간 액수만도 220억원으로, 국민 세금이 고스란히 효성 오너 일가의 비자금 창고 노릇을 한 셈이다.

범행 핵심 인물이 수사에서 빠진 까닭은?

하지만 검찰총장이 철저히 수사해 파헤쳤다고 자랑한 이 사건도 여전히 효성그룹 오너 일가는 봐주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검찰 조사 결과 로우테크가 국방부에 수백억원대 수입 군장비를 납품하면서 원가 부풀리기를 통해 220억원대 사기범죄를 집중적으로 저지른 시기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였다. 이 시기 로우테크의 대표이사는 동양나이론(현 효성)출신으로 주관엽씨의 오른팔로 평가받는 김 아무개씨가 맡았다. 효성 오너 일가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핵심 인물인 김씨는 이 기간에 주관엽씨를 대신해 로우테크를 운영하면서 저지른 각종 범죄를 알 만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 수사에서 그는 빠졌다. 대신 2005년말부터 로우테크의 후임 대표를 맡았던 이 아무개씨가 이 사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속됐다. 검찰이 범죄 행위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당시 로우테크 책임자를 처벌 대상에서 뺀 것은 아직도 주관엽씨와 조현준 사장의 비자금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즉 효성 오너 일가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효성 오너 일가의 비자금 창고로 지목되는 육군 마일즈 장비 창고.
따라서 검찰이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그동안 불법으로 조성한 로우테크의 비자금 흐름을 끝까지 추적해 효성 오너 일가의 해외 불법 비자금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시사IN〉이 미국 현지에서 수소문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로우테크가 국방부 상대 납품사업으로 220억원대 불법 폭리를 취하던 시점인 2004년경 주관엽씨는 미국 LA 인근 산타클라라에 있는 한 발광다이오드(LED)전구 생산 회사를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철저한 자금 추적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또 최근 효성 오너 일가의 미국 내 호화 부동산을 잇달아 폭로한 재미 탐사보도 전문기자 안치용씨는 미국으로 흘러온 로우테크의 불법 자금에 주목해 부동산 목록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안씨는 자신이 미국에 있는 효성 오너 일가의 비자금 및 은닉 부동산을 추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지난해부터 〈시사IN〉에서 5차례에 걸쳐 로우테크 방위사업 비리 기사를 내보낸 것을 보고 그 돈이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높은 미국 내 부동산에 주목해 추적하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인터뷰 참조). 결국 이 과정에서 〈시사IN〉과 공조한 안치용씨는 미국 내에 있는 주관엽씨와 송진주씨의 거주지 주소를 파악해 국내로 보내옴으로써 ‘주범의 소재지를 몰라서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을 무색케 했다. 이 주소지를 박영선 의원이 법사위 국감장에서 흔들면서 난감해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미국 정부에 주씨를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겠다고 답했다.

수배 중에도 국방부에 납품하는 주관엽의 힘

한편 서울중앙지검의 면죄부로 힘을 받은 로우테크는 최근까지도 새로운 수법을 사용해 계속 특혜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로우테크는 겉으로는 주관엽씨와 관계를 끊은 것처럼 행세해왔다. 하지만 주씨는 지금까지 효성아메리카를 끼고 직접 군장비를 수입 납품하던 미국 내 개인회사 세로닉스 마이크로웨이브 대신 뉴욕에 사는 자기 고교 동창을 대리로 내세워 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는 〈시사IN〉 보도와 검찰 수사로 이름이 공개된 위장회사들을 폐쇄하고 대신 새로운 위장 가공회사를 만들어 효성 오너 일가 및 주관엽씨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국방부에 납품하고 있다. 조석래 회장 처제인 송진주씨가 국내에서 원가 부풀리기 창구로 쓰던 제이송연구소는 금오광학으로 명칭만 바뀌었다. 때문에 국방부가 이들과의 계약을 중지하지 않는 한 검찰이 적발한 주관엽씨 주도의 로우테크 범죄는 이름만 달리한 채 계속 반복될 것이다.

220억원대 국민 세금을 부당하게 편취해간 허위 세금계산서.
더욱 큰 문제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태도다. 방위사업청은 220억원대 국가 상대 사기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 형사 처벌된 이 회사와 올해도 약 38억원의 신규 납품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40억원대 납품을 받았다. 해마다 40억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불법이 판치는 효성 오너 일가 회사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퍼부어준 꼴이다.

따라서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검찰 수사로 로우테크의 사기범죄 혐의가 드러난 이상 하루속히 이들을 상대로 부당하게 집행된 220억원대 국방비를 회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또 이런 해괴한 방위사업이 이뤄지기까지 계약과 원가를 담당한 관련 부서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내지는 공모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벌여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 상대 사기 범죄를 계속해온 이 업체에 대해 방산업체 지정을 취소하고, 국민 세금을 부당하게 가져가는 신규 계약들을 즉시 해지해야 할 것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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