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를 둘러싼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국가 백년대계’를 앞세워 원안 수정론을 퍼뜨리는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조중동과 ‘여야 합의’ ‘충청도민과 약속’ ‘국토 균형발전’을 근거로 원안 찬성론을 주장하는 보수․개혁․진보 연합군이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수정론 대 찬성론, 서로의 약점은

수정론 측으로서는 역시 그간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원안 이행’을 공언해온 점이 가장 큰 부담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중도에 계획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2007년 8월) “행정부처 이전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2008년 5월) “정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2009년 6월)라며 최근까지도 9부2처2청를 포함한 36개 기관의 이전을 약속했다. 찬성론 측은 이에 “국정 신뢰성에 크나큰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10월19일 열린 한국행정학회 주최 세종시 관련 토론회. 찬반 양론이 뜨겁게 맞붙었다.
그러나 찬성론 측도 약점이 없지 않다. 핵심 쟁점인 자족 기능 문제, 이른바 ‘유령 도시화’ 우려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필요하면 더 지원하면 된다”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고 얼마를 쏟아부어야 가능한지 계산도 분명치 않다. 정부대전청사에 가족 모두 이주한 공무원이 65.8%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인용되지만, 세종시 이전 대상 부처 공무원 가운데 40%만이 가족 동반 이주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난 ‘다른 조사’(2006년)도 있다.

수정론자인 전영평 대구대 교수(도시행정학과)는 “‘관공서 이전 효과’는 더 이상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행정부서와 계층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관공서를 따라 이전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각종 산업․교육․주거 시설 등도 이전했는데, 이것은 강력한 권력을 구가하던 과거의 행정부가 경제와 시민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에나 가능한 구태의연한 일이다”라는 주장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야당과 충청도민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정론 측이 좀 더 우세한 위치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운찬 총리의 ‘수정 불가피’ 발언 직후인 지난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수정론과 찬성론이 엇비슷했으나 최근에는 대략 5대3 비율로 수정론이 앞서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세종시를 진짜 ‘유령 도시’로 만들 만큼 무모한 이명박 정부는 아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갑자기 폭락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교육․과학․연구도시 등을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으며, 이 대통령 자신도 최근 비공식 자리에서 “부처보다는 산업체가 가야 한다”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별 뾰족한 것 없이 가능성마저 불투명한 게 문제다. 원안 찬성론자인 육동일 충남대 교수(자치행정학과)는 “기업들이 시장논리에 맞지도 않는 결정을 정부 뜻대로 할 리가 만무하고, 아무리 국립대학이라 하더라도 교수나 학생들, 동문들의 동의 없이 행정도시로 이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꼬집는다. 육 교수는 이어 “정치권과 사법부가 결정한 법대로, 대통령의 약속대로, 그리고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만이 유일한 최선의 대안이다”라고 못박았다.

ⓒ전문수충청남도 연기군 세종시 건설 공사 현장. 전체 공사비의 24%가 집행된 상태다.
4~5년 뒤에도 같은 풍경이?

일각에서는 ‘원안=균형발전’이라는 공식을 비판하며 ‘원안+α’를 강조하기도 한다. 가령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정책을 ‘먹튀’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유령 도시화’와 관련해 의외로 수정론자와 같은 전망을 내놓는다. 그 근거는 다름 아닌 ‘균형 발전’에 걸맞은 교육과 부동산 정책의 부재다.

한 예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3년 동안 외국어고의 전․출입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서울은 전출에 비해 전입이 더 많은(49명→81명→83명) 반면 비수도권의 경우 전출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계속 늘어나는 것(75명→97명→102명)으로 나타났다. “모든 게 여전히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행정기관만 옮긴다고 인구가 대거 늘어나고 자족 기능이 생기겠느냐”라는 반론이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이룬 세종시 문제를 들쑤셔 다시금 논란을 증폭시킨 장본인은 이명박 정부이지만 참여정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강준만 교수는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세종시 반대자들이 온갖 궤변을 일삼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주요 근거를 노무현 정부가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수도권 부동산 정책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교육․부동산 정책이 뒤따라 주지 않으면, 세종시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 세워질 혁신도시도 주말마다 수도권을 왕래하는 교통량만 폭증시킬 수밖에 없다. 세종시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대자들의 비판을 선점해 스스로 밝히면서 구체적 대안과 더 큰 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정치의 부족’과 ‘미숙한 정책홍보’를 문제로 짚으며 심지어 정권을 빼앗기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 있는 첨예한 쟁점임에도 노 정부는 필요성과 당위성만을 강조했다. 정치권이나 언론, 다수 국민에게 지역 균형발전은 곧 수도권 기능 분리나 규제 강화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치른 비용은 적지 않았다. 전체 인구의 47%를 차지하는 수도권 주민들을 잠재적 피해의식에 젖게 하면서 과거 우호적 지지기반을 형성했던 수도권 민심을 등돌리게 만들었다.”

이는 4대강 살리기 등 각종 대형 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이명박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과잉 예산․과잉 진단․과잉 기대효과 등 숱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사업을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설득 없이 강행할 때, 국민을 오로지 ‘개발 이익’에 목매는 노예로 만들 때, 4~5년 뒤 지금과 또 똑같은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 근본 책임이 누구한테 있든, 야당에서 ‘민란’까지 언급되고 이틈을 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요즘의 분위기를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사업 타당성․환경 문제 등으로 무려 15년 동안이나 공방이 이어진 새만금 사업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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