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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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날 일기처럼 시를 썼다.

‘나는 한 마리 고래/ 잠긴 첫숨마다 푸른 탯줄을 달아/ 물 위로 들어올리네.’

그날 이후 동화작가 문은아씨에게 세월호는 숨쉬는 고래 한 마리였다. 출산한 고래가 새끼의 몸을 물 위로 들어올려 첫 호흡을 시키듯 그 역시 바닷속 깊이 잠겨버린 수많은 숨들을 들어올리고 싶었다.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세월호가 자신과 승객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분투했는지.

책이 나오기까지 결국 10년이 걸렸다. 제목은 〈세월 1994-2014〉. 1994년 ‘나미노우에(바다의 신에게 평화를 빌던 절)’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배가 2014년 한반도 남쪽 바다에서 생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썼다. 〈노근리 이야기〉 〈황금동 사람들〉 등으로 잘 알려진 박건웅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동화의 주인공은 세월호 자신이다. 세월호의 1인칭 시점으로 쓴 글은 담담하고 그림은 아름답다. 그림을 그린 박건웅 작가 특유의 격정적인 그림체를 아는 이들이라면, 깜짝 놀랄 만큼 서정적인 유화가 동화 속에 펼쳐진다.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는다고 말한다. 문은아 작가가 박건웅 작가에게 부러 부탁했단다. 우리가 만드는 책의 그림이 좀 밝았으면 좋겠다고. 박 작가도 흔쾌히 응했다. 제주도 유채밭에서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풍경에 기자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문은아 작가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동화 〈이름 도둑〉으로 2014년 5·18문학상을 받았다. 사회적 현실을 작품에 담는 동화작가로 살아왔지만 세월호는 좀 달랐다. 적잖은 이들이 그렇듯, 그 역시 단원고 아이들의 마지막 영상을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굴 속에 들어간 곰처럼, 모든 영상과 기록을 샅샅이 보았다.

10년 전 다짐을 기어코 지키게 만든 건 이태원 참사였다. 아직 완전히 바꾸지 못했고 충분히 추모하지 못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책 〈세월 1994-2014〉의 작가 소개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2022년 10월29일 이후 다른 고래가 나에게 왔다. 또 함께 살아볼 생각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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