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마련돼 있던 ‘산소방’. ⓒ시사IN 조남진
2011년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마련돼 있던 ‘산소방’. ⓒ시사IN 조남진

건강식품에도 유행이 있는 듯싶다. 한동안 온갖 열매며 잎사귀를 발효시켜 만든 ‘효소’가 인기였다. 효소(enzyme)의 교과서적 정의는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생물학적 촉매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일컫는다. 하지만 각종 미디어에서는 삼투압 효과에 의해 추출된 식물의 액체 성분이 포함된 설탕물을 효소라고 불렀다. 소화불량 개선에서부터 항균, 혈관 건강, 피부 미용, 관절염 완화에 이르기까지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효과들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혈당을 높인다는 점이었다.

이어서 ‘디톡스(detox)’가 유행했다. 무림고수의 독공(毒攻)에 해를 입은 것도 아니건만 우리 몸에서 독소를 빼내야 한다며 과일과 야채를 갈아서 마시거나 단식, 장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가장 최근의 유행은 ‘항산화(anti-oxidation)’인 것 같다. 블루베리·브로콜리·가지·녹차 등등 ‘활성산소를 줄이고 노화 속도를 늦추는’ 다양한 천연 식품 목록들이 미디어를 장식하고,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면서 영양보충제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잠깐, ‘활성산소’를 줄인다고? ‘산소 같은 여자!’를 내세운 화장품 광고가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1990년대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 아닌가. 요즘은 산소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이 하늘을 찌른다. ‘활성산소 같은 여자’가 나타난다면 그녀는 분명 희대의 악당일 것이다. 활성산소, 즉 ‘산화(酸化, oxidation)’는 정말 몸에 나쁜 것일까?

원소기호 8번인 산소는 우주에서 수소와 헬륨 다음으로 흔한 원소다. 지구 지각의 46%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구성성분이며, 바닷물 무게의 89%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산소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기체 상태의 산소 분자(O₂)가 떠오른다. 그래서 땅과 바다에 그토록 산소가 많다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물의 화학식은 H₂O가 아니던가. 또한 각종 암석들도 금속과 비금속 원소에 산소가 결합된 산화물 형태로 존재한다. 예컨대 지각을 이루는 가장 흔한 물질인 규산염(SiO₄)은 규소와 산소가 결합한 것이다.

‘불멍’을 한다는 것은 목재의 격렬한 산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기도 하다. ⓒ시사IN 포토
‘불멍’을 한다는 것은 목재의 격렬한 산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기도 하다. ⓒ시사IN 포토

일반적으로 산화는 화학반응에서 원소가 전자(電子, electron)를 잃는 것을 지칭하지만, 원래는 화합물에 산소가 결합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였다. 산소 자체는 맛·색·냄새가 없는 기체이지만 반응성이 대단히 높고 다른 물질과 잘 결합한다. 철에 녹이 슬었다는 것은 철과 산소가 만나 산화철이 되었다는 것이고, 격렬한 산화반응 과정에서 열과 빛이 발생한다면 ‘연소’라고 부른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불멍’을 한다는 것은 목재의 격렬한 산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산소는 유기체의 여러 조직에서 중요한 구성성분이기도 하다. 유전물질의 기본이 되는 핵산부터 단백질, 탄수화물은 물론이고 치아와 골격에도 산소는 빠지지 않는다.

병에 담긴 액화 산소의 모습. 산소는 기체가 아닌 액체나 고체 형태로도 존재한다. ⓒ위키피디아
병에 담긴 액화 산소의 모습. 산소는 기체가 아닌 액체나 고체 형태로도 존재한다. ⓒ위키피디아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산소 기체다. 산소는 대기 부피의 21%를 차지하지만 지구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약 27억 년 전 남세균(cyanobacterium)이 출현하면서부터 광합성의 부산물로 산소가 본격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했고 21억~24억 년 전 즈음부터는 과거에 대기를 채웠던 메탄을 밀어내고 주요 구성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에는 변동이 적지 않았다. 약 5억4000만 년 전 캄브리아 시기 이래 산소 농도는 15~30% 사이에서 변동했고 3억 년 전 석탄기에는 최고 35%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거대 절지동물(arthropod), 특히 거대 곤충들이 활보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들 절지동물은 혈액을 통해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氣管, trachea)을 통해 직접 산소를 전달하는데, 기관 생장의 제약만큼 몸이 커지는 데에도 제약이 따른다. 만일 대기 중 산소압이 높아져 같은 기관의 크기로도 훨씬 쉽게 조직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면 몸은 커질 수 있다. 화석을 토대로 고생대를 재현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갈매기만 한 잠자리들이 하늘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길이 2.5m, 폭 50㎝에 달하는 노래기들이 스르르 미끄러지며 숲을 산책했다. 그분이 고개(?)를 쳐든다면, 앞에 선 인간과 눈을 맞추며 대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인류가 출현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어쨌든 대기 중 산소의 출현은 지구 생태계를 거의 완벽하게 변화시켰다. 일부 혐기성 생물을 제외한 모든 동식물과 균류는 세포호흡에 산소를 사용한다. 우리가 섭취한 영양소들을 ‘산화’시켜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ATP를 생성한다. 이는 광합성의 반대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세포호흡이 일어나려면 일단 산소가 세포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피부로도 호흡할 수 있는 개구리나 두꺼비와 달리, 인간은 폐호흡을 통해 산소를 얻는다. 기도를 통해 몸에 들어온 공기 중의 산소는 폐의 허파꽈리(폐포)에서 주변 모세혈관으로 확산되어 혈액 속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결합한다. 산소가 풍부한 혈액은 심장의 펌프질에 의해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폐로 돌아오는 길에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를 데려온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유명해진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체외막산소공급기)’는 우리 몸 바깥에서 폐와 심장 대신 이 과정을 수행하는 장치다. 심장이나 폐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명유지’ 장치인 셈이다.

에크모나 인공호흡기 말고도 산소 문제를 해결한 의료 혁신 중에서 인공 폐표면활성제(pulmonary surfactant)를 빼놓을 수 없다. 계면활성제(surfactants)는 표면(surface)-활성(active)-제(agent)의 합성어다. 두 가지 액체, 혹은 액체와 기체, 액체와 고체 사이의 표면장력을 줄여주는 화합물을 말한다. 세제와 비누의 주성분이 바로 계면활성제인데, 물을 밀어내는 부분과 물에 친화적인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도록 만들고 거품을 형성하며 오염물질 분리를 촉진한다.

왜 백인 아기들에게만 유효했을까

이러한 계면활성제를 우리 몸에서도 만들어낸다. 폐의 말단에 위치한 폐포들은 폐표면활성제를 분비하고, 이는 촉촉한 폐포 표면과 공기 사이에서 표면장력을 낮춰 폐포가 쪼그라드는 것을 막아준다. 폐포가 쪼그라든다는 것은 산소-이산화탄소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저산소증에 빠지게 된다.

2019년 11월15일 헝가리 한 아동병원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이른둥이)의 모습.ⓒEPA
2019년 11월15일 헝가리 한 아동병원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이른둥이)의 모습.ⓒEPA

문제는 너무 일찍 세상으로 나온 아기들이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탯줄의 혈액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다. 임신 24~28주가 되어야 폐포와 모세혈관이 발달하고 계면활성제가 분비되기 시작한다. 이보다 먼저 태어나는 아기들은 폐가 아직 미성숙할 뿐 아니라 계면활성제가 없어서 폐가 충분히 펴지지 못하고 쪼그라들어 호흡부전 증후군(respiratory distress syndrome, RDS)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조산아들에게 폐표면활성제 투여는 매우 중요한 치료 방법으로, 이는 세계보건기구 필수 의약품 목록에도 올라 있다. 하지만 1996년에 미국 연구자들이 발표한 논문은 과학기술 혁신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문제를 드러냈다.

미국 식품의약국이 폐표면활성제 사용을 승인한 것은 1990년이다. 논문은 승인 전후인 1987~1989년과 1991~1992년 동안 세인트루이스 지역 4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초저체중아(500~1500g) 1563명을 추적 조사하여 출생 후 28일 이내에 일어난 사망(신생아사망률) 현황을 분석했다. 관찰 기간에 폐표면활성제 사용은 약 10배 증가했고 초저체중아들의 신생아사망률은 1000명당 220.3명에서 183.9명으로 16%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사망률 감소의 대부분은 호흡부전증후군 사례에서 관찰되었다. 1987~1989년에는 초저체중 출생아의 5%만이 폐표면활성제를 투여받았지만 1991~1992년에는 그 수가 56%로 늘어났다. 기술혁신은 단시간에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사망률 개선 효과가 백인 아기들에게서만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백인 아기의 신생아사망률은 1000명당 261.2명에서 155.5명으로 41% 감소한 반면, 흑인 아기의 사망률은 195.6명에서 196.8명으로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폐표면활성제 도입 이후, 그전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던 흑인과 백인 아기의 신생아사망률 통계에서 분명한 불평등이 나타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단 폐표면활성제를 투여받은 경우에는 인종 간 사망률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1991~1992년에 초저체중으로 태어난 조산아 중에서 백인은 63%, 흑인은 52%가 약제를 투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기술에 대한 접근성에 불평등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후 2012년 출판된 논문은 1990년대에 흑인 조산아에게 백인만큼 폐표면활성제를 투여하지 않은 것은 폐 성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1999~2002년 뉴욕에서 시행한 조사에서도 불평등은 여전히 관찰되었다. 투여 기준을 충족하는 흑인 아기들이 폐표면활성제를 투여받지 못할 가능성은 백인 아기에 비해 여전히 4배나 높았다. 2006년 출생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임신 28주 이전에 태어난 백인 아기들은 흑인과 히스패닉 아기들에 비해 폐표면활성제 투여 확률이 각각 4배, 2배 정도 높았다.

폐표면활성제의 효과가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 의료접근성 격차, 임상적 의사결정에서의 (암묵적) 차별이 함께 작동하여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1966년에 체결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는 과학적 진보와 그 응용기술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기들이 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는 권리는 공평하게 보장되지 않았고, 이는 새로운 기술 도입이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킨 대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인류에게 오존층 회복시킬 재능이 있다면

산소 문제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모범 사례’도 한 가지 언급하고 싶다. 바로 오존층 회복이다. 태양으로부터의 자외선은 대기의 O₂를 분해하여 산소 원소(O) 두 개로 만들고 이것이 다시 산소 분자와 결합하여 오존(O₃)을 생성한다. 이는 유해한 자외선(UVB)으로부터 지구상 생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오존층이 없다면 심각한 DNA 손상으로 인류와 생태계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1974년 냉장고, 에어컨, 헤어스프레이 등에 사용되는 냉매 CFC가 성층권의 오존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985년에는 남극 상공에서 오존층 구멍이 확인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1987년 CFC 사용을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지난해 5월11일 서울시청 인근 전광판에 오존주의보 발령 안내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11일 서울시청 인근 전광판에 오존주의보 발령 안내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년, 미국 항공우주국은 2005~2016년 지구 오존층의 구멍 크기가 20% 작아졌고, 이러한 회복은 CFC 규제의 효과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동안 환경보호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많은 국제협약들이 맺어졌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이 결과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물론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CFC는 대기 중에 50~100년까지 잔류할 수 있기에, 완전한 회복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 2023년 유엔 발표에 따르면, 지금처럼 규제 정책이 지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남극 2066년, 북극 2045년, 나머지 지역에서는 2040년이 되어야 1980년대 수준, 즉 CFC가 사용되기 이전으로 오존층이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유작이 되어버린 〈Billions & Billions: Thoughts on Life and Death at the Brink of the Millennium〉(1997, 한국어판 제목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존층에 생긴 구멍은 일종의 하늘에 새겨진 글씨입니다. 처음에는 마녀가 만들어낸 치명적 위험 앞에서 계속 안일하게 행동하는 우리 모습을 적어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롭게 발견된 재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희망대로, 인류는 스스로 저지른 환경파괴를 복원할 수 있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재능의 발현이 단지 오존층 회복에만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자명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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