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카 마코토 씨(64·사진)는 일본의 저명한 진보 성향 주간지 〈슈칸 긴요비〉를 발행하는 ‘주식회사 금요일’의 사장이다. 고등학교 교사, 경제 잡지 편집자를 거쳐 평론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사축(社畜·회사의 가축)’이라는 용어로 일본 기업사회의 병리를 지적하며 이 나라의 대기업·경영자 등을 엄격하게 비판해왔다. 경제 부문뿐 아니라 평화헌법, 교육 등 현대 일본의 구석구석에 대한 관찰과 비판에 주력해온 그를 만나 이번 민주당 집권의 역사적 의의를 물었다.

이번 민주당의 압승은 고이즈미 구조개혁으로 인한 양극화 악화와 소외된 서민들의 분노가 분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나.
틀린 분석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고이즈미가 자민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 슬로건이 ‘자민당을 깨뜨린다’였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정말 깨뜨린 것은 자민당이 아니라 자민당의 지지기반이었다. 고이즈미 집권 이전에 자민당의 지지 기반은 지방의 보수파였다. 농협·우체국장 모임 등이다. 이런 지방 보수파의 구조개혁에 대한 반발이야말로 민주당 압승의 원인이었다.
 

사타카 마코토 씨(64·사진)는 일본의 저명한 진보 성향 주간지 〈슈칸 긴요비〉을 발행하는 ‘주식회사 금요일’의 사장이다.

지방 보수파가 고이즈미 시기에 피해를 봤나.
예컨대 고이즈미는 우정국 민영화가 상징하는 구조개혁, 즉 자유경제 촉진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부동표를 획득하려 했다. 이는 지방 보수파의 이익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5년 중의원 선거 당시에는 지방 보수파, 즉 자민당의 지지 기반은 자기들이 버림받은 것을 몰랐다. 이들이 버림받은 사실을 알게 되어 반격에 나선 것이 이번 사건의 진상이다.

그렇다면 양극화의 심화 때문에 일본 시민들이 분노했다는 견해는 틀린 것인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양극화가 깊어짐에 따라 도시의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지방의 노인들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고이즈미 류의 정책이 자신들의 생활을 지켜주기는커녕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정책으로 소외된 시민들이 민주당을 신뢰하게 되었는가.
4년 전의 중의원 선거는 고이즈미에 대한 표였다. 그러나 이번에 민주당을 지지한 표는 하토야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안티 자민당’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의 ‘민주당 지지’는 막연해서 민주당은 고생깨나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4년 전에 의지했던 부동표, 즉 무당파층도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 편에 서지 않았는가.
무당파층, 즉 도시의 젊은 층은 무엇을 지키기보다는 변화를 좋아한다. 자민당은 옛 애인을 버려서 바람둥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결국은 양쪽에서 차인 것이다. 원래 무당파층은 유행을 타거나 현상 타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자민당은 그 부분을 잘못 보았다.

그렇다면 자민당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것은 빈부 격차가 경제의 자유경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야 한다. 고이즈미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그것은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미국처럼 경제 주체들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어서 국민의 자기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자민당의 원래 지지층의 경우, ‘자기 책임론’은 찬성하는데, ‘작은 국가’는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일관성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옛 지지층은 자신들의 생각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면서도 사민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사민당은 국가의 역할을 확대해서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자고 주장하는데도 말이다.

자민당보다는 민주당이 더 진보적이지 않은가.
단순히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민주당의 지도층은 거의 옛날 자민당의 다나카 전 총리파 출신이다. 이번에서 당선된 의원 중 대표 대행인 오자와 이치로파가 100명 이상인데 그 역시 다나카 전 총리의 제자였다.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 역시 처음에 다나카파로 당선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과 자민당의 근본적인 정치 이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 교체라고 하지만 ‘카레라이스’가 ‘라이스카레’로 된 정도의 변화이다.

아동수당 등 민주당의 공약을 보면 자민당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자민당이든 민주당이든, 이번 선거 공약들은 다 돈을 뿌리는 것일 뿐이다. 빈부격차 문제, 고령화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돈만 뿌리겠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일시적으로 돈을 주기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확보해주는 게 중요한데 그런 정책은 거의 못 보았다. 민주당도 자민당도 약육강식의 자유경쟁식 경제구조와 결별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민주당 당선자 중에 매우 우익적인 인물도 있다.
민주당이 의석을 너무 많이 확보하는 바람에 자민당보다 오히려 우익적인 사람도 많이 당선됐다.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는다고 하며,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관계에서도 벗어나겠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런 우파 의원들이 내부에서 반대하게 되면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개혁이 없는 것은 선거제도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 일본의 소선거구제도는 민의를 반영하기 힘든 구조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4년 전의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296석을 얻었다. 공명당과 합치면 327석으로 압도적 승리였다. 이때 고이즈미는 ‘우정국 민영화’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를 선거의 초점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 결국 민영화에 찬성하면 자민당이나 공명당, 반대하면 다른 당이나 무소속 의원들에게 투표하게 된다. 즉, 민영화를 반대하는 시민은 민주당·사회당·공산당·국민신당·신당일본·무소속 의원 등 6개 분파로 투표하면서 표가 분산되어버렸다. 당시 자민당·공명당은 3300만 표를 얻었지만 다른 정당은 3400만 표를 획득했다. 즉, 우정국 민영화를 반대하는 유권자가 100만 표 더 많았던 것이다. 이런 소선거구제도의 마법을 4년 전에는 고이즈미가, 이번 선거에서는 오자와(1994년에 소선거구제 도입을 주도했던)가 잘 이용했다. 이처럼 소선거구제도는 목소리 큰 대형 정당만이 압승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자명 도쿄·김향청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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