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4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보수당 연례회의에서 담배 구입 금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AP Photo
지난해 10월4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보수당 연례회의에서 담배 구입 금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AP Photo

모두가 안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 흡연은 암과 중증 폐질환, 심혈관 질환 등의 직간접 원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담배를 피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성인 흡연율은 20.6%다. 여성은 6.6%, 남성은 34%.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 당국은 흡연자 수를 줄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수단으로 전자 담배를 꺼내든 나라가 있다. 영국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0월4일 ‘담배 없는 세대(smokefree generation)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09년 출생자부터는 성인이 되어도 평생 담배를 살 수 없게 된다. 담배 구매 가능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해마다 1세씩 올려 담배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게 영국 정부 목표다. 이 계획은 지난해 11월 찰스 3세 국왕이 연설에서 언급했고 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높고 야당도 찬성에 기울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강경한 영국의 금연정책이 전자 담배를 동력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금지 조치에서 전자 담배는 예외다. 청소년의 전자 담배 구매를 막기 위해 맛과 포장을 제한한다는 대목만 있다. 성인 흡연자에게는 오히려 전자 담배를 적극 권한다. 지난해 4월 영국 보건사회복지부는 ‘스왑 투 스톱(Swap to Stop: 끊기 위해 바꿔라)’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흡연자 540만명 중 100만명에게 무료 전자 담배 키트를 제공하는 게 골자다. 자못 파격적으로 보이는 이 정책은 어떤 근거로 추진되는 것일까? 영국 정부는 지난 수년간 일관된 이유를 제시해왔다. ‘전자 담배는 흡연보다 훨씬 덜 해롭다.’

용어 정리부터 하자. 전자 담배(e-cigarette)는 크게 둘로 나뉜다. 영국에서 흡연자에게 권하는 것은 ‘액상형 전자 담배’다. 니코틴이 든 액체를 기기에 넣고 열을 가해 피우는 방식으로 ‘베이핑(vaping)’이라고 불린다. 반면 ‘아이코스’ ‘글로’ 등의 기기는 ‘궐련형 전자 담배’다. 담뱃잎이 든 전용 스틱을 넣어서 쓴다. 액상형과 궐련형의 결정적 차이는 타르 함유 여부다. 궐련형 전자 담배에 있는 타르가 액상형 전자 담배에는 없다. 타르는 담배에 든 대표적 발암물질이다. ‘인체에 특히 해로운 타르는 빼고 니코틴만 얻겠다’는 게 액상형 전자 담배의 개발 취지다. 그래서 베이핑 옹호론자들은 1970년대 중독 증세를 연구한 의사 마이클 러셀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사람들은 니코틴을 위해 흡연하지만 타르 때문에 죽는다.”

니코틴이라고 무해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니코틴은 중독성이 몹시 강한 마약성 물질이다. 적지 않은 흡연자가 담배의 해악을 알면서도 니코틴에 중독돼 담배를 끊지 못한다. 중독성이 헤로인이나 코카인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니코틴은 혈압을 올리고 맥박을 빨리 뛰게 하며, 과다 복용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그러나 연초(불을 붙여 피우는 담배)의 다른 유해 물질만큼 해롭지는 않다는 게 영국 정부 판단이다. 영국 정부의 국영 의료체계인 국가보건서비스(NHS)는 공식 웹사이트에 이렇게 썼다. “흡연의 해악 대부분은 니코틴 이외의 독성 화학물질에서 나온다. 니코틴이 그 자체로 암, 폐질환, 심장질환 또는 뇌졸중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종합적으로 NHS는 “베이핑은 위험성이 없지 않으나 흡연보다 상당히 덜 해롭다”라고 결론 내렸다.

서울 시내 한 전자 담배 가게에 진열된 액상형 전자 담배 기기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전자 담배 가게에 진열된 액상형 전자 담배 기기의 모습. ⓒ연합뉴스

“니코틴은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

액상형 전자 담배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영국이 불완전하고 불투명한 연구를 토대로 섣불리 결론 내렸다고 말한다. 시중의 액상형 전자 담배는 성분이 천차만별인데 제품 대다수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참고한 논문 저자 일부가 전자 담배 회사와 연관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옹호하는 측에서는 논문 하나로 내린 판단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2018년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의 ‘전자 담배의 공공보건 영향’ 보고서를 근거로 든다. 전자 담배 관련 연구 다수를 취합해 각 가설이 어느 정도로 근거가 있는지 살폈다. 보고서에는 “전자 담배 기체가 가연성 담배 연기보다 독성물질의 가짓수와 수준이 더 낮다”라고 적혔다. “가연성 담배를 전자 담배로 완전히 대체하면 가연성 담배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에 대한 사용자 노출이 줄어든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산하 금연 관련 기관에서 이러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전자 담배도 담배다’ ‘전자 담배도 해롭다’ 일변도로 흐른다. 오히려 ‘전자 담배가 연초보다 더 위험하다’고 이해할 만한 자료도 있다. 예컨대 2020년 국가금연지원센터가 낸 ‘담배 규제 팩트시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액상형 전자 담배 사용은 (중략) 일반 담배보다 심장의 혈류를 감소시킬 수 있음.” “일반 담배를 피운 직후 혈류량이 약간 증가한 다음 스트레스를 받은 후 감소한 데 비해, 액상형 전자 담배(를 피운) 그룹은 휴식 시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후에도 심장 혈류량이 감소하면서 일반 담배 그룹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타남.” 국가금연지원센터 관계자는 “연초와 전자 담배 등 종류와 관계 없이 모든 담배 제품을 똑같이 규제하는 게 우리 입장이다. 전자 담배라고 (연초보다) 덜 유해하지 않고 충분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만의 독단은 아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전자 담배(베이핑)에는 니코틴과 다양한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중략) 전자 담배 사용이 심장·폐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일부 연구가 있다”라고 밝힌다. 영국이 특수 사례일 뿐, 한국은 세계적 추세를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11월6일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 회원들이 정부의 액상형 전자 담배 사용 중단 권고를 규탄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6일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 회원들이 정부의 액상형 전자 담배 사용 중단 권고를 규탄했다. ⓒ연합뉴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영국의 길’을 따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전자 담배에 비판적인 이들도 ‘연초보다 전자 담배가 해롭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액상형 전자 담배가 개발된 것은 불과 20여 년 전 일이다. 상용화된 기간은 그보다 짧다. 액상을 흡입했을 때 인체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두 알아내기에 태부족한 시간이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담배의 전파는 1500년대 신대륙 발견부터다. 그런데 담배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건 그 후 400여 년 이상 지난 20세기 들어서야 알려졌다. 2003년 처음 개발된 액상형 전자 담배를 두고 어떻게 지금 유해성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영국은 어째서 불확실하고 예외적인 정책을 택한 것일까? 이성규 센터장은 영국 특유의 의료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의료비를 전부 정부가 부담한다. 흡연이 유발하는 질병 치료비가 고스란히 국가 재정에서 나간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영국 정부는 빨리 의료비를 줄여야 할 유인이 있다. 전자 담배 이전부터 일찌감치 강력한 금연정책을 주도한 이유다. 영국 담뱃값은 1갑에 약 2만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법으로 담뱃갑 모양을 통일하고 진열도 제한한다. 이성규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정책을 모두 다 하고도 도저히 담배를 못 끊는 인구가 있었다. 비유하자면 모든 치료를 다 한 뒤에도 가망이 없는 말기 암 환자에게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권하는 일이 영국의 전자 담배 정책이다. 이걸 한국에 도입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유석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액상형 전자 담배를 금연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신선영
정유석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액상형 전자 담배를 금연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신선영

국내 학계에는 액상형 전자 담배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20년 이상 금연 치료를 해온 정유석 교수(단국대 의과대학)는 액상형 전자 담배를 옹호하는 몇 안 되는 의료인 중 한 명이다. 정 교수는 “모든 담배는 해롭다. 전자 담배도 피우지 않는 게 좋다”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연초와 전자 담배가 ‘100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50층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똑같이 위험하다’라는 전자 담배 비판론자들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궐련(연초)이 100층에서 떨어지는 거라면 액상(형 전자 담배)은 2층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유석 교수의 말이다. “연초는 담뱃잎을 태우는 과정에서 흡연자가 원치 않는 먼지까지 들이마신다. 액상형 전자 담배의 독성물질 흡입량이 연초 대비 훨씬 낮다는 것은 여러 권위 있는 연구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영국이 특이 사례라는 지적에는 정유석 교수도 동의한다. 그런데 정 교수는 특수한 의료제도가 낳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영국의 전자 담배 정책은 더욱 신뢰할 만하다고 주장한다.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영국은 사실 보건정책이 상당히 보수적인 나라다.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시술에는 국가 재정을 들이지 않는다. (중략) 도저히 담배를 못 끊는 사람들이 폐암에 걸리고 정부 돈이 나간다. 그래서 액상형 전자 담배에 베팅을 한 것이다. 이게 효과를 보았고 자신감을 얻었다.”

영국이 이례적이지만 주목해야 할 만한 사례인 이유가 여기 있다. ‘보수적 보건정책’은 국가 주도 의료정책의 결과물이다. 영국 정부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부작용 가능성이 높은 시술에 재정을 투입하기 어렵다. 액상형 전자 담배의 보건상 효과에 확신이 없다면 담배 키트 100만 개와 수많은 홍보 캠페인에 들어간 예산은 낭비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전자 담배가, 연초 이상의 치명적 부작용을 유발한다면?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국가가 국민을 해쳤다’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동시에 영국 정부는, ‘100%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의료정책에 배타적일 수 없는 처지다. 미국처럼 흡연으로 발생하는 의료비 대부분을 개인이 떠안는 나라 정부로서는 ‘모든 담배는 해로우니 담배를 끊으라’고 되풀이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최선의 경우 완만하더라도 흡연자는 줄어들고, 최악의 경우라도 흡연율이 현상 유지될 뿐 큰 변수는 없다. 하지만 영국처럼 흡연과 국가 재정이 직결된 나라는 끊임없이 ‘차악’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돈을 아낀다. 흡연이 유발하는 각종 중증질환이 곧 재정지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액상형 전자 담배의 보건상 이익’과 ‘액상형 전자 담배의 위험성’을 더 엄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비교해야 할 이유가 영국 정부에게는 있다. 이런 특수 환경에서 채택된 스왑 투 스톱 정책은 일개 국가의 특이한 판단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정유석 교수도 당장 영국과 같은 정책을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전제 조건들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완전한 금연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정 교수는 상담과 약물 투여 등 모든 종류의 금연 치료를 한 뒤에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에게만 ‘다시 금연을 시도할 때까지 액상형 전자 담배로 바꾸라’고 권유한다. 정부는 연초의 매력을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 담배가 연초를 완전히 대체해 ‘이중 사용자’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초의 니코틴 함량을 줄이고 소매점을 10분의 1로 줄이는 뉴질랜드의 금연정책을 그 방안으로 들었다(이 정책은 지난해 교체된 정권이 세수 확보를 이유로 추진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청소년 접근성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전자 담배를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게 발각되면 영업정지를 명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수하지만 중요한 영국의 결정

현재 한국에서는 성인 흡연자의 ‘전환’도, 청소년 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자 담배 사업자들의 연맹체인 전자담배총연합회의 김도환 상근부회장은 세금 문제를 들었다. 김 부회장은 “천연 니코틴 액상 한 개(30ml)가 연초 열 갑쯤에 대응하는 양인데, 세금만 5만3970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세금이 제대로 걷히는 것도 아니다. 국내 도매상들은 천연 니코틴이 아닌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만 들이는 편법을 쓴다. 담배사업법상 담배 정의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하는 것(천연 니코틴)뿐이다. 화학물질로 제조한 합성 니코틴은 담배가 아닌 셈이다. 김 부회장은 “합성 니코틴이 원가는 더 비싸지만 천연 니코틴을 쓰면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해서 한국 시장에서만 합성 니코틴이 주류다”라고 말했다. 기기 구매 비용과 복잡한 구동 방식, 액상 교체의 불편함까지 감안하면 흡연자가 액상형 전자 담배를 택할 이유는 적다.

인터넷은 청소년 접근성을 높인다. 전자 담배 찬반 양측 전문가들 모두 “미성년자가 인터넷에서 전자 담배 구하기가 너무 쉽다”라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을 통한 일탈은 청소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액상 값을 아끼려는 이들이 니코틴 용액을 직접 구매해 자의적으로 다른 액체와 혼합하는 일도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레시피’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배합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액상을 사고파는 일이 빈번하다. 정유석 교수는 “니코틴은 적정 농도가 있다. 기준에 맞지 않는 제조는 굉장히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이성규 센터장은 전자 담배가 마약의 도구로 쓰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센터장은 “미국 10대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중독인데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 문제 때문이라도 ‘액상형 전자 담배가 위험하다, 아니다’ 논쟁할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현실에서 전자 담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20년간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인터넷 유통 환경과 결합해 청소년 흡연의 관문이 되거나, 마약 흡입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최악’에 대응할 수단으로 전자 담배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나온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년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5만8000명이다. 매일 159명이 담배 때문에 죽었다. 흡연자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않는다. 정말 ‘모든 담배는 해롭다’는 구호만으로 충분할까. 의문은 날로 커지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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