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최영숙씨(왼쪽)와 딸 손금옥씨가 납북귀환 어부였던 고 손용구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아내 최영숙씨(왼쪽)와 딸 손금옥씨가 납북귀환 어부였던 고 손용구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손금옥씨(63)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라고 그날을 회상했다. 2023년 1월12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51년 전 내렸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았다. 피고인은 고 손용구. 손금옥씨의 아버지다.

이날 재판부는 반공법·수산업법 위반으로 1972년 11월에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던 손용구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직후 방송사 마이크 앞에 선 손금옥씨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눌러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청소년기에 봤던 아버지의 고통은 저에게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오명을 벗었니 편히 잠드실 것 같습니다.”

손용구씨는 강원도 속초에서 고기잡이배 무진호를 타는 선원이었다. 1972년 8월23일 오징어 조업을 하러 바다로 나갔던 무진호는 납북되었다가 9월15일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1970년대 초반에는 북한 경비정이 한국 해역에 침투해 어선들을 나포해가는 일이 횡행했다. 동해와 서해에서 조업 도중 납치당하거나 방향을 잃어 월경했다가 북한에 억류된 뒤 돌아온 이들을 ‘납북귀환 어부’라 부른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1952년부터 1987년까지 납북된 어선과 선원은 각각 459척, 3651명에 달한다. 국가는 어부들을 보호하는 대신 간첩으로 의심하고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들이밀었다.

2021년 12월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꾸려졌다. 이듬해인 2022년 2월,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납북귀환 어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손금옥씨는 지난 몇 년간 시민모임에 참여하고 활동을 해오면서 아버지가 겪은 일이 ‘국가 폭력’이고 본인과 가족들은 ‘국가 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2년 9월15일. 납북되었던 배가 속초항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갔던 일을 손씨는 기억한다.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창문 너머를 볼 수 있었는데, 커다란 강당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구타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손용구씨는 강릉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대전교도소에서 1년6개월 형을 마친 뒤인 1974년 3월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식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는 손금옥씨의 사진. 손씨는 "아버지는 원래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결혼식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는 손금옥씨의 사진. 손씨는 "아버지는 원래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2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수감 중에 풍을 맞아 오른쪽 신체 마비 증세가 생겼다. 고문 트라우마와 누명을 썼다는, 풀 길 없는 억울함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을 향했다. “저는 첫째라 아버지의 다정하고 따뜻한 원래 모습을 알거든요. 그런데 동생들은 워낙 어렸으니까 감옥에 갔다 오신 이후에 예민하고 난폭해진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게 참 가슴이 아프더라고요(손금옥).” 가족의 생계는 어머니와 당시 열두 살이던 손금옥씨가 짊어져야 했다.

손용구씨는 1993년 12월,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초 경기도 부천에서 치러진 막내딸의 결혼식에 갈 때도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딱 하루 만에 속초로 돌아왔다.

재심 선고 이후 손금옥씨는 무죄가 난 판결문을 가지고 아버지 산소에 갔다. 너무나 바랐던 판결이지만 그저 기뻐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겪은 고초를 떠올리면 슬픔이 밀려왔다. 선고만 무죄가 났다뿐이지 국가가 과거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피해 회복의 측면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거잖아요.”

지난해 4월 손금옥씨는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형사보상은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수사와 형사재판 절차에서 구금을 당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을 국가에 요구하는 제도다. 억울하게 수감되었던 손용구씨가 사망했으니 상속인인 아내 최영숙씨와 손금옥씨를 비롯한 5남매가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10년 전 사망한 둘째 손정옥씨의 경우 그 아들이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2021년 12월10일 속초시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창립식이 열렸다. ⓒ시사IN 조남진
2021년 12월10일 속초시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창립식이 열렸다. ⓒ시사IN 조남진

훈시규정에 불과한 ‘6개월 내 보상 결정’

형사보상법 제14조 3항은 ‘보상 청구를 받은 법원은 6개월 이내에 보상 결정을 해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형사보상 결정이 빈번하게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 법 개정으로 신설된 조항이다. 그러나 법이 정한 6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도록 손용구씨 사건의 형사보상 결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법원 내에서 ‘6개월 조항’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역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지난해 4월 춘천지법 강릉지원과 속초지원에 형사보상을 청구한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 5명의 유가족도 법원의 결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손금옥씨가 속을 태우는 건 연로한 어머니 때문이다. “(무죄가 나기를) 50년도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희는 괜찮아요. 그런데 엄마가 지금 많이 안 좋으시거든요. 자식들 마음은 엄마가 한도 풀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라든지, 그동안 고생스러웠던 걸 조금이라도 보상받으셨으면 하는 거죠.” 어머니 최영숙씨는 16년 전 얼굴뼈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느라 오른쪽 눈을 잃었다. 한쪽 눈에 의지해 생활해왔는데 뇌경색이 찾아와 몇 달 전부터는 거의 앞을 보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답답한 마음에 가족들이 모여 납북귀환 어부 사건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원곡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변호사를 통해 춘천지법 강릉지원 해당 재판부의 실무관에게 전화를 했더니 “탄원서라도 제출하면 (담당 판사에게) 전달해보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손씨와 동생들은 그 자리에서 짤막한 탄원서를 작성했다. “현재 어머니 최영숙님의 나이는 85세입니다. (···) 형사보상으로 지급받는 돈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그 돈을 다 쓰며 여생을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속하게 형사보상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시사IN〉 취재진을 만난 1월10일까지 손금옥씨의 기다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기자명 속초·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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