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으로 로봇이 들어가고 있다. 학생들을 만나면 영어로 인사하고 말을 건네며 외국어 학습을 돕고, 학교 사각지대 구석구석을 훑으며 방범· 순찰 활동을 벌인다. 급식 시간에 조리실 튀김 솥 앞에 서서 학생들에게 나눠줄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학교 내 필요한 인력은 늘어나는데 교육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에 주어지는 예산을 앞으로 더 줄이려는 사회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인력 채용에 따른 고용 유지와 산업재해 위험도 교육 당국이 피하고 싶어 하는 부담이다. 학교에 들어간 로봇들은 과연 교육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

2023년 11월2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숭곡중학교 급식실에서 급식 로봇이 조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1월2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숭곡중학교 급식실에서 급식 로봇이 조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1월22일 오전, 서울시 성북구 숭곡중학교 급식 조리실에서는 학생들의 점심 식사 720인분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날 메뉴는 볶음밥, 쇠고기탕국, 양념치킨, 김치볶음, 근대얼갈이무침. 뜨겁고 유해한 조리 퓸(Cooking fumes)을 내뿜는, 볶고 튀기고 끓이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조리실무사 6명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방수포를 덮어쓴 기계 4대도 가스 불 앞에서 팔을 들고 내리고 휘저으며 음식을 준비했다. 올해 2학기부터 숭곡중학교 급식실에 들어온 ‘급식 로봇’이다. ‘숭뽀끔(볶음)’ ‘숭바삭(튀김)’ ‘숭국이(국·탕)’ ‘숭고기’ 등 학생들이 직접 지어준 이름표를 달고 로봇들은 무거운 음식 재료를 나르거나 뜨거운 기름 솥에 재료를 쏟아부었다.

조리 로봇이 학교 급식실에 도입된 건 서울 숭곡중학교가 처음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3년 2월 상반기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대규모 로봇 융합모델 시범사업’ 공모를 통해 총 10억원 예산의 급식 로봇 4대를 지원받게 되었다. 높은 노동강도와 폐암 등 산업재해 위험으로 많은 학교 급식실이 늘 조리실무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학교들 가운데 현장 실사 등을 통해 로봇이 들어가기 적합한 학교를 가려냈고 숭곡중학교가 최종 선정되었다.

한 학기 시범 도입해본 학교 급식 로봇의 성적은 일단은 나쁘지 않다. 2023년 10월 초 숭곡중 급식실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급식 로봇은 ‘근무 여건 개선에 도움(83%)’이 되고 ‘기존 대비 25~50% 정도 업무를 경감(86%)’해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11월22일 급식 로봇 공개 행사에 참여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리 종사원 인력이 부족한 학교를 중심으로 급식 로봇 도입을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4년에도 전해처럼 로봇산업진흥원의 급식 로봇 지원 사업에 공모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급식기획팀 관계자는 “2023년 시범사업 만족도가 애초 기대했던 바보다 높아, 이번에는 2~3개 학교에 로봇 1~3대씩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도입 학교를 좀 더 늘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의회에서도 2024년도 경기도교육청 예산안에 급식 로봇 도입 예산 10억원을 편성해놓았다.

2023년 11월29일 서울시교육청의 ‘서울교육 국제화 추진 방안·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 발표 기자회견 때도 로봇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들에 ‘영어 튜터 로봇’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2024년 3월부터 초등학교·중학교 5개 학교에서 영어 튜터 로봇을 시범 도입한 뒤 하반기부터 수요 조사를 거쳐 160개 학교까지 늘릴 계획이며, 이를 위해 예산을 약 50억원 책정해놓았다.

이날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 기자회견에서 질문 대부분이 영어 튜터 로봇에 관해 나왔다. 기자들은 로봇의 구체적인 형태와 기능, 역할이 무엇이고 어떤 기관과 어떤 방식으로 협업 개발한 결과인지 등을 물었으나, 현장에 도입하기까지 불과 4개월 남은 것치고는 교육청의 답변이 다소 두루뭉술했다. 김태식 교수학습기초학력지원과장은 “외형은 기존 식당에 가면 주문받고 서빙하는 로봇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다만 로봇 안에 학생들과 실시간 영어 소통이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탑재된다. 학생마다 얼굴 인식을 미리 해놓고 예를 들어 철수가 지나가면 철수 수준에 맞는 대화를 먼저 건네는 정도까지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민관 협력을 통해 ‘개발 중’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개발 기관과 예산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기존 AI 학습 프로그램 등과의 차별점에 대해 함영기 교육정책국장은 “특별히 튜터 로봇을 주목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호기심과 동기를 유발하는 물리적인 실체가 학교 내에 있다는 것이다. 여타 에듀테크 프로그램과 달리 물리적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디스플레이 기능을 갖추고 아동을 인식할 수도 있어서 한 단계 뛰어넘은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데 상당히 유용할 거라 본다”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늘어나는 추세다. 단발적 이벤트를 넘어, 각 나라 교육 현장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지속 가능한 수단으로 활용이 모색되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시는 정신적 불안 등으로 인한 장기 결석 학생 수가 늘어나자, 그들을 학교로 유도해 복귀시키기 위한 중간 다리로 로봇을 활용하는 방안이 시도되었다. 2023년 10월부터 구마모토시 일부 초·중학교에 도입된 이 원격 로봇은 교실과 학교 내를 돌아다니며 집에 있는 학생에게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해주고 이들이 수업에 참여하거나 학우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끔 한다. 이렇게 학교생활을 ‘의사(疑似) 체험’시킴으로써 학생의 불안을 낮춰 학교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로봇이 미국 뉴멕시코의 한 고등학교 내를 순찰하고 있다. 교내 총기 사고 등을 예방하는 역할이다. ⓒKRQE 유튜브 영상 갈무리
로봇이 미국 뉴멕시코의 한 고등학교 내를 순찰하고 있다. 교내 총기 사고 등을 예방하는 역할이다. ⓒKRQE 유튜브 영상 갈무리

장기 결석 학생 돕고, 학교 침입자 물리치고

학교 내 총기 사고 문제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학교 순찰 로봇’이 도입되었다. 2023년 6월부터 미국 뉴멕시코의 산타페 고등학교에서는 360도 비디오 영상을 찍어 전송하는 무게 180㎏의 사륜 로봇이 교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침입자를 감지하고 있다. 위험한 사람을 발견하면 로봇은 보안팀에 경고를 보내거나 그에게 다가가 보안팀에 비디오와 영상을 전송하며, 침입자와 보안팀이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무기를 장착하지는 않았지만 침입자의 가슴에 레이저 빔을 겨냥해 위협하거나, 침입자와 부딪침으로써 일종의 ‘공격’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학교에 로봇이 배치된 사례가 급식 로봇, 영어 튜터 로봇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6월 서울시 서초구 관내 초·중·고교 51개교에는 적외선 카메라와 안면인식 기술이 탑재된 ‘발열 체크 로봇’이 한 대씩 보급되었다. 서초구청이 구매비용을 지원했다. 이 로봇은 당시 학생들의 등굣길에 발열 검사를 맡아 일정 온도 이상이 측정되면 경고음을 내고, 마스크 미착용 시에 착용을 지시하는 음성 안내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방역 인력을 지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 학교에서 발열 체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요즘에는 이 로봇들이 별로 사용되고 있진 않다.

서울시 서초구 계성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조기성 교사는 “2020년 학교에 들어온 로봇이 중국산이긴 한데 굉장히 고가로 알고 있다. 발열 체크 기능 외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봤는데 쉽지가 않더라”라고 말했다. 전 스마트교육학회장(현재 고문)이기도 한 조 교사는 학교에 로봇을 배치할 때 ‘로봇이라는 하드웨어’ 하나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로봇은 결국 프로그래밍하기 나름이다. 로봇이 학교에서 명확한 기능을 하려면 교사 등 담당자가 그것을 활용할 역량이 필요하고, 맡은 기능에 관련된 많은 데이터가 들어가야 하며 그것을 교육과정과 실제 현장과 연동시키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제반 환경 없이 들어오는 로봇은 그냥 ‘비싼 하드웨어 밀어내기’밖에 안 된다.”

2022년 1월5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서초구 한 학교의 발열 체크 로봇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5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서초구 한 학교의 발열 체크 로봇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을 투입하기 힘든 환경에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이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지도 한 번 더 검증이 필요하다. 서울시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신청이 조리실무사는 뉴스 기사를 통해 급식 로봇 소식을 접하고 맨 처음 든 생각이 ‘쟤들 청소는 누가 하지?’였다. “로봇이 우리 업무를 보조·대체해준다고 하지만 로봇 유지보수 관리는 또 결국 사람이 해야 하지 않나. 매일 급식실 기름때 청소가 조리실무사들의 가장 큰 일인데 거기에 로봇 목욕까지 추가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신 실무사는 또한 로봇의 업무 유연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사람은 급식 일이 숙련되면 할 수 있는 업무가 되게 다양해진다. 한 사람이 조리부터 청소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업무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수행하게 되는데 딱 설정해놓은 기능만 가능한 로봇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급식실에서 활용될 수 있을지, 사실 그다지 크게 기대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학교에 로봇 도입할 돈 있으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로봇에 예산 얼마 얼마를 투입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 입장에선 마냥 환영하기가 쉽지 않다. 추가 인력과 시설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예산이 없어서 어렵다’는 답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2024년 시도 교육청 교부금이 전해에 비해 7조원 가까이 깎인 상황을 고려할 때,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는 이런 로봇들이 ‘제로섬’ 경쟁자로 인식될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 급식 로봇 한 대를 도입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로봇 구입 예산뿐 아니라 층고 높이기, 배전설비 구축, 조리대 및 기구 교체 등 대대적인 급식실 리모델링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학교 급식실은 종사자들의 폐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기본적인 환기 시설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2022년 17개 시도 교육청이 실시한 전국 학교 급식실 환기설비 점검 조사 결과에 따르면, 97%(4802개 학교)가 2021년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환기설비 설치 기준에 미달했다. 아직 반지하나 지하에 위치한 급식실도 적지 않다. 신 실무사는 “로봇 도입할 돈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환기 시설 하나라도 더 개선해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학습 보조 도구로 로봇을 활용하는 데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0년 넘게 영어 전담 교사를 맡아온 한희정 서울 삼양초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이 2024년 새 학기에 도입을 계획하는 영어 튜터 로봇의 효용에 대해 회의적이다. “요즘 학생들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수업을 해보면 대화 상대를 무슨 노예 대하듯 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대하는 윤리와 관련해서 우리 교육 현장이나 사회에는 준비된 게 없다.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도입한 로봇은 교육적 효용보다 악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 한 교사는 “코로나19 이후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교육격차 현상은 지금 상상 이상이다. 사교육을 통해 미리 실력을 쌓은 아이들은 튜터 로봇 같은 걸 활용해 자유롭게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한쪽에서는 5~6학년이 되어서도 아직 알파벳을 떼지 못하는 아이도 상당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부금 감소로 가뜩이나 내년도부터 교육청에서 핵심적으로 추진하던 여러 격차 해소 사업이 없어지거나 예산이 삭감되는데, 아직 실체와 기능도 뚜렷하지 않은 로봇에 몇십억 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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