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2018년 1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최태원 SK 회장과의 이혼소송 2회 조정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2018년 1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최태원 SK 회장과의 이혼소송 2회 조정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녀는 기업인의 아내였다. 남편은 대기업의 CEO였다. 이들은 결혼 생활을 32년 지속했고 두 딸을 낳아 키웠다. 아내는 첫아이가 태어나기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다. 출장·행사·회의 동행, 비즈니스 접대, 자선 활동 등 남편의 경영활동도 도왔다. 결혼할 무렵 경영대학원 학생이던 남편은 대기업 그룹 후임 회장으로 거론될 만큼 성장했다. 결혼 32년 후 남편은 그의 명의 총자산 10%에 해당하는 합의금을 제시하며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아내는 거부했다. 현금, 부동산, 주식, 퇴직연금 등 남편이 가진 재산의 ‘정확한 절반’을 요구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자신을 ‘남편의 모든 업무를 지원하는 ‘기업 아내(Corporate Wife)’’로 표현했다. “나는 집안의 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우리 가족이라는 회사의 CEO가 되고, 그가 나가서 자신이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을 유지하고, 사회적이고 감정적인 유대를 운영함으로써 남편을 보완했다. 이 파트너십 관계에서 나는 50%의 자격이 있다.”

1997년 GE캐피털 CEO였던 게리 웬트와 이혼한 로나 웬트의 이야기다. 당시 웬트 부부의 이혼소송은 미국 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부부 재산분할 시 배우자의 내조, 특히 남편이 고액 자산가나 유력 기업인일 경우 전업주부인 아내가 재산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관해 법리적·경제적·사회문화적 관점들이 서로 경합을 벌였다. 1998년 2월 로나 웬트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이런 표지 제목을 달았다. ‘기업 아내의 가치는 얼마일까?(What’s A Corporate Wife Worth?)’

1998년 2월 발행된 〈포천〉의 표지 이미지. 로나 웬트의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 이야기를 다루었다.
1998년 2월 발행된 〈포천〉의 표지 이미지. 로나 웬트의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로부터 25년 뒤, 한국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질문의 발화자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다.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1988년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당시 노 관장의 아버지(노태우)는 대통령, 최 회장의 아버지(최종현)는 선경그룹 회장이었다. 섬유회사로 출발한 선경(현 SK)그룹은 1980~1990년대 석유·통신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최 회장은 1991년 선경그룹에 입사해 1998년 SK그룹 회장이 되었다. 노 관장은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며 2000년부터 SK그룹의 문화예술 공간인 아트센터 나비를 설립해 운영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98년 3조8000억원이던 SK그룹 시가총액은 지난해 137조3000억원으로 36배 이상 뛰었다.

34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해오던 이들 부부는 현재 이혼소송 중이다. 2015년 최 회장은 언론사에 보내는 편지 형태로 내연녀와 혼외자 존재를 세간에 알렸다. 2017년 7월 최 회장은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노 관장의 반대로 합의가 무산되자 2018년 2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노 관장은 2019년 12월 맞소송을 내고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재산의 절반, 특히 SK㈜ 주식 1298만여 주(올 1분기 기준 2조2402억원) 가운데 50%를 분할해달라고 청구했다.

2022년 12월6일 1심 판결이 났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 김현정)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1억원과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의 SK 주식 지분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 관장은 한 달 뒤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판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부에 드러난 바로 5조 가까이 되는 남편 재산에서 제가 분할받은 비율이 1.2%가 안 된다. 34년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안팎으로 내조하면서 그 사업을 현재의 규모로 일구는데 제가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 순간, 그 금액보다 그동안 저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외면당한 것 같다(〈법률신문〉 2023년 1월2일자, (단독)[노소영 관장 인터뷰] “1심 판결 예상 못한 결과…가정에 대한 헌신과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의 의미를 전면 부정”).”

노 관장은 자신의 소송 결과가 다른 가정과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1심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들뿐만 아니라 그 규모를 불문하고 사업체를 남편이 운영하는 부부의 경우, 외도를 한 남편이 수십 년 동안 가정을 지키고 안팎으로 내조해온 아내를 거의 재산상의 손실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앞으로 기업을 가진 남편은 가정을 지킨 배우자를 헐값에 쫓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성의 역할과 가정의 가치가 전면 부인되었다. 이것이 제 마음을 가장 괴롭힌다.” 노 관장은 1심 판결 직후 항소를 제기했다. 내년 1월11일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한 판결은 크게 두 가지 법률 조항에 근거해 내려진다. 첫 번째는 민법 제830조 제1항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라는 조문이다. 부부 한쪽의 명의로 되어 있는 특유재산(特有財産)은 ‘원칙적으로는’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동시에 민법은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해 부부간 협의가 되지 않을 때 가정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한다. “가정법원은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 기타 사정을 참작하여 분할의 액수와 방법을 정한다(민법 제839조의 2).” 부부 일방의 특유재산이라 할지라도, 재산분할 소송을 통해 부부의 실질적 공유재산으로 인정받아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여러 차례 대법원 판단을 통해 판례로 굳어졌다. 부부 일방의 명의로 되어 있어도(대법원 1998.4.10. 선고 96므1434 판결), 혼인 전부터 갖고 있었던 재산일지라도(대법원 1994.5.13. 선고 93므1020 판결, 대법원 1998.2.13. 선고 97므1486·1493 판결) 다른 일방이 유지·증가·감소 방지에 기여했다면 특유재산이나 그 증가분을 재산분할 대상에 넣을 수 있다. 여기서 ‘기여’란 맞벌이와 같은 경제적 협력은 물론이고 육아와 가사노동 등 비경제적 협력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대법원 1993.5.11.자 93스6 결정).

분할 대상 범위는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예를 들면, 2014년 결혼한 부부 A와 B는 2015년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이후 2년 동안 이들은 함께 아파트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납입했다. 2017년 이들의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A는 홀로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 경우 재산분할 대상은 혼인 파탄 이전에 같이 납부한 계약금·중도금 납입대금일까, 아니면 이후 A 명의로 취득한 아파트(시세) 전체일까? 2심 재판부는 전자로 판단했으나 3심 대법원에서 이를 뒤집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므12549, 12556 판결).

또 다른 부부 C와 D는 각각 전 배우자와의 이혼과 사별 이후 17년 동안 사실혼 관계로 동거했다. C는 가사를 전담하면서 전립선암과 뇌출혈을 앓는 D를 D의 자녀들과 함께 간병했다. 2019년 C는 재산분할 재판을 청구하며 사실혼 관계 이전부터 D가 소유해오던 부동산과 그로 인한 월세 수익도 분할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부산가정법원 2020.11.6.자 2019느합200048 심판).

이미 수령한 퇴직금과 연금은 물론이고(대법원 1995.5.23. 선고 94므1713,1720 판결, 대법원 1995.3.28. 선고 94므1584 판결) 향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금과 퇴직연금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되었다(대법원 2014.7.16. 선고 2013므2250 판결). 개인택시 면허 같은 ‘영업권’도 마찬가지다(울산지방법원 2007.10.4. 선고 2007드합23, 2007드합252). 결혼 기간 취득한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자격도 준비 기간 상대 배우자의 도움이 인정되면 장래 예상 수입이 재산분할 액수에 참작될 수 있다(대법원 1998.6.12. 선고 98므213 판결).

“혼인 유지 자체가 재산에 대한 기여”

특히 전업주부(주로 여성) 배우자의 ‘기여’에 대해서도 가정법원은 점차 폭넓게 인정하는 태도로 바뀌어왔다. 재산분할청구권이 도입된 초기에는 아내가 전업주부로서 가사노동, 양육과 더불어 소득 창출을 위한 별도의 경제활동을 했는지를 따지며 상대방 소유 재산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들은 피아노 교습, 가게 운영, 양말 생산, 행상 등 갖은 방법으로 화폐 노동 활동을 증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한’ ‘헌신적’ 내조와 간병 등이라도 확실히 인정되어야 분할의 몫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법원 판결은 ‘가사와 육아 전담’ ‘가사와 자녀 양육에 종사’한 것만으로도 상대방 특유재산에 대한 재산분할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27년간 전업주부로 혼인 생활을 유지한 아내에게 남편이 혼인 전 취득한 토지의 재개발보상금 45%, 공무원 퇴직 시 받게 될 연금의 40%를 분할하도록 한 판결(서울고등 2014르826)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가정법원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양재역 지하철 환승 통로에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판들이 늘어서 있다. ⓒ시사IN 신선영
서울가정법원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양재역 지하철 환승 통로에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판들이 늘어서 있다. ⓒ시사IN 신선영

‘순수한 가사노동’이 상대방 특유재산에 대한 기여가 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법원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다. 한쪽에서는 “분할 대상 재산의 범위를 무제한으로 넓혀 우리 법률이 정하고 있는 부부별산제도와도 크게 어긋난다”라고 비판한다(김영식, ‘재산분할청구의 부양적 측면에 관한 고찰’, 2015). 다른 한쪽에서는 “‘순수한 가사노동’이 기여인지 아닌지를 따지기에 앞서, 실질적인 혼인공동체를 형성하여 이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기여’라고 보아야 하고, 그 혼인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제공한 노력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노동으로 제공되었든 간에 동일한 가치로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가사노동을 했다든지’, ‘화폐 노동을 했다든지’ 등을 통하여 별도로 ‘기여’하였음을 굳이 입증하지 않아도 동거와 부양과 협력의 의무를 이행하는 통상적인 부부관계의 형성과 유지 자체가 ‘재산의 유지·증식에 대한 기여’가 된다(최은정 외, 재산분할의 기준 정립을 위한 방안 연구, 2016)”는 것이다.

이 관점은 (주로 전업주부가 되는) 여성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고려한다. ‘내 재산 따로, 네 재산 따로’를 규정한 부부별산제가 실질적 형평성을 가지려면 아내와 남편 모두 소득과 재산을 형성할 기회와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가사와 자녀 양육을 담당하며 직업 활동을 단절한다. 다른 집으로 시집갔다는 이유로 남자 형제에 비해 친정부모로부터 상속도 적게 받는다. ‘평등의 공허한 슬로건(양현아, 〈한국 가족법 읽기〉, 2011)’에 불과한 부부별산제를 보완·개선하기 위해 1990년 도입된 게 바로 재산분할제도이니, 재산분할을 위한 기본 자격 역시 ‘혼인 공동체의 유지’ 자체로 성립된다는 논리다.

다른 나라들은 많은 경우 명문화된 규정과 판례로 이런 관점을 인정하고 있다. 2002년 미국법률협회는 ‘이혼법 원칙(Principles of the Law of Family Dissolution)’을 발표했다. 주마다 서로 다른 이혼법제와 판례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보편적 판단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장기간의 혼인이 해소되는 경우에는 특유재산이라 할지라도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편입할 수 있다’고 규정된 부분이 있다. 영국 대법원은 2000년 판결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경제적 수익을 얻는 노동과 동등하게 이해한다’는 핵심 원칙을 제시했다. 독일 민법은 소득이 발생한 원인에 대한 구분 없이 혼인 중 증가한 재산에 대해 일률적으로 분할 대상이 된다고 본다. 한국도 명문화된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여러 판례를 통해 이런 추세가 굳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노소영 관장에게는 왜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법률신문〉 인터뷰 중)” 재산분할 판결이 내려졌을까? 노 관장의 혼인 유지 기간은 30년이 넘는다. “(결혼 전부터) 미래와 사회에 대한 꿈과 비전을 함께 나눈 파트너였고 결혼 후 자녀들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저는 육아와 내조를, 남편은 밖에서 사업을 하는 역할 분담을 하며” 협력했다. 1994년 당시 대한텔레콤 지분(현 SK㈜ 주식)을 사들인 종잣돈 2억8000만원의 출처에 대해서도 노 관장과 최 회장 측 주장이 갈린다. 최 회장 측은 SK 주식이 자신의 특유재산이라 주장하고, 노 관장은 “함께 이루었지만 최 회장의 명의로만 되어 있는 공유재산이자 사유재산”이니 절반을 분할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재산에 관해 최 회장 측 손을 들어주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SK주식회사 주식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영권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 가정경제공동체와는 뚜렷하게 구분해 관리 운영되었다. SK 주식의 관리업무와 실무는 과거부터 그룹 경영기획실 등이 협력해 수행해서 원고(노 관장)의 기여나 관여가 없고,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면서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맡고 있는 원고가 SK 주식의 가치 상승이나 처분 및 관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이유도 붙였다. “‘가사노동 등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사업용 재산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회사 기타 사업체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고,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가 있다.” 재산분할의 영향이 당사자 및 소수 가족에게만 미치는 일반 가정과 달리, 노소영·최태원과 같은 기업 경영(소유)자 부부의 재산분할은 그 사회경제적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특수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공동취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공동취재

판결 내용이 세세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과거 다른 대기업 재벌가 이혼소송에서도 특유재산의 분할이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2016년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하면서 이 사장이 보유한 2조5000억원대 재산 절반을 분할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2020년 대법원은 141억원만을 재산분할액으로 인정했다. 지난해 11월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혼소송 판결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전 남편에게 줄 재산분할액으로 13억3000만원이 인정됐다. 2009년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은 결혼 11년 만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지만 소 제기 일주일 뒤 합의 조정이 성립돼 구체적인 재산분할 액수가 알려지지 않았다.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연합뉴스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연합뉴스

대기업 오너나 재벌 경영인의 재산 중 많은 부분이 해당 기업의 주식(지분)이다. 대부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결혼 후 그 가치가 상당히 많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혼할 때 상대 배우자와 나누는 재산분할액에는 기업 지분이 빠져야 하는가, 포함되어야 하는가? 혼인공동체의 기여를 폭넓게 인정하는 관점에 따르면 포함될 수도, 특유재산의 소유권과 기업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관점에 따르면 빠질 수도 있다. ‘부부란 무엇인가’와 ‘기업(주식)이란 무엇인가’를 동시에 묻는 이 난해한 질문에 대해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재벌 회장 재산분할, 어떻게?

지난 3월31일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최한 ‘특유재산 분할의 판례 동향과 법적 쟁점’ 대토론회에서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대 배우자가 기업 유지와 가치 증가에 직접적·재정적으로 기여했음이 증명되거나, 그 특유재산 말고는 재산분할 대상이 없거나 극히 적을 경우가 아니면 증여·상속으로 받은 기업과 그 가치 증가분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경영자들은 통상적으로 기업으로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그 보수는 재산분할의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배우자의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적 기여’는 ‘배우자가 회사로부터 받은 보수를 통한 간접적 이익’을 통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현 교수는 특히 의결권 행사에 의해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주식회사의 경우, 회사의 경영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지분비율의 존속이익(변동 없이 유지되었을 때의 이익)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며, 그걸 건드리는 건 가정법원의 권한 밖이라고 보았다. “가정법원은 가사사건을 관장하는 법원으로, 입법자는 그에게 시장경제와 회사법의 법리에 따라 결정된 대주주나 이사의 법적 지위를 좌지우지할 권한까지 부여하지 않았다.”

같은 토론회에서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대 의견을 펼쳤다. “부부 각자의 노무의 성과는 그것이 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실질적 공동재산에 속한다. 특유재산이 기업이고 그 보유자가 기업 경영자인 경우 경영자의 노무가 수익 창출에 중요한 기여를 할 뿐 아니라 그 결과 기업의 실질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기업 경영자의 노무의 성과 역시 실질적 공동재산이다.” 기업 경영자의 ‘노무’에는 배우자의 기여가 전제되고, 그 노무로 인해 기업의 가치가 성장(주식 가치가 상승)했다면 그 가치 상승분 또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재산의 출발점이 만약 혼인 전이나 혼인 중 일방이 증여나 상속으로 취득한 특유재산이라도 마찬가지일까? 이 교수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토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A라는 사람이 땅을 증여받았다고 해보자. 그건 특유재산이다. 그런데 결혼 생활 중 A가 자신의 노무를 들여 그 땅을 절토하고, 인허가를 받고 개발사업을 유치하고 해서 토지 가치가 100배 늘어났다. 이때 늘어난 땅의 가치까지 모두 특유재산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볼 경우 이 교수는 특유재산 보유자의 ‘자의적인 재산 배분(조작)’을 허용할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를테면 A가 혼인 중 근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족족 자신의 특유재산 토지의 관리와 개발에 갖다 썼다면, A의 배우자는 이혼 시 분할받을 수 있는 공동재산 자체가 없어진다. “그게 인정되면 특유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가치 증가분을 특유재산에 다 갖다 붙이는 게 유리해질 거다.”

그 재산이 기업 지분일 때도 마찬가지다. “기업 경영자가 어떤 거래형태를 택했는지에 따라 그 재산이 특유재산인지 공동재산인지가 달라진다면 부당할 것이다. 특유재산인 10억원 상당의 기업지분을 받아 혼인 후 이를 110억원 상당의 기업지분으로 성장시킨, 그러나 그 이외의 가정경제는 사실상 재산 축적 없이 유지해온 경우와, 특유재산인 10억원 상당의 기업지분을 받아 혼인 후 이를 80억원 상당의 기업지분으로 성장시키고 배당을 받는 등으로 위 지분 외에 30억원 상당의 개인 재산을 보유한 경우를 달리 취급할 근거는 없다(이동진, 기업 경영자의 이혼과 재산분할, 2023).”

경영자의 기업 지분이 재산분할 범위에 포함되면 기업 소유구조와 기업 경영권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업 투자자들과 임직원들이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노소영·최태원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가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라고 말한 그 부분이다. “하지만 민법이 인정하는 적절한 대응은 기업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아니라 분할 방법을 정할 때 가급적 기업 존속과 현상 유지에 도움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이동진).” 기업 지분이 문제될 경우 금전 분할만 인정하거나, 담보를 받고 지급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적절히 재산분할을 하면서도 기업 지배구조에는 변동이 적게끔’ 가정법원에서 그 방법을 정하는 대신 자본시장 내에서 일정한 장치를 만들 수도 있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 오너의 이혼 시 그 특수성을 고려하는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재산분할로 이전된 지분에 대해서 의결권은 제한하고 배당권만 인정한다든가, 지배권 계산 시 이혼 배우자에게 준 지분은 분모에서 제외함으로써 오너의 지분 희석을 줄인다든가, 지분을 ‘편하게’ 줄 수 있는 방안들이 검토될 수 있다.”

다만 기존 법리에서 예외를 둬 이혼 시 재산분할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할 만큼, 재벌 중심의 현 대기업 지배구조가 사회적으로 그리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배구조가 바뀌면 기업이 흔들리고 나라 경제도 흔들릴 거라는 생각은, 한국 기업구조 체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생기는 지나친 우려일 수도 있다. 시장이 평가하게 할 일을 왜 법원이 나서서 미리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비슷한 취지로 노소영·최태원 부부의 이혼소송 판결을 비판했다. “재산분할로 인한 경영권 변동이 판결의 고려 사항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책 사유를 제공한 최태원 회장 개인이 풀어야 할 문제다. 설마 극소수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호령하는 전근대적 재벌 시스템을 지켜야 국민경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식의 낡은 프레임이 동원된 것일까 의심스럽다(1월23일 〈한국일보〉 칼럼 ‘1.2%’).”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매켄지. ⓒAFP PHOTO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매켄지. ⓒAFP PHOTO

 

기업인의 이혼 시 재산분할은 해외에서도 논쟁적인 주제다. 1978년 오스트리아에서 혼인법 개정 당시 재계의 강력한 요청으로 ‘기업 지분은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개정 이후 이에 대한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위헌 논란이 일었다. 결국 1999년 혼인법 개정 때, 적어도 혼인 재산이 기업에 유입된 경우 그 가액을 분할대상으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다만 ‘재산분할은 이혼하는 부부의 생활영역에 장래에도 가급적 적게 영향을 주도록 행해져야 한다’(제84조)는 조항을 통해 기업 자체의 존속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 선언되었다. 미국 등에서는 CEO 이혼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부부 이혼 시 기업 재산 분할을 전문으로 다루는 로펌들도 다수 영업을 하고 있다.

해외 유명한 부호들도 이혼 시 거액의 재산분할액을 지급했다. 결혼 이후 아마존을 창업해 성공시킨 제프 베이조스는 2019년 부인 매켄지와 이혼할 당시 자신이 보유한 아마존 주식의 25%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이혼한 빌 게이츠 부부도 175조원 상당의 주식, 부동산, 미술품 등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합의했다고 당시 언론에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크고 작게 재산분할 몫을 전 아내와 나누었다. 이때마다 가장 중요한 준거가 ‘혼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였다. 결혼 전 미리 재산의 소유권과 분할방식에 관해 합의해놓음으로써 이혼 시 다툼의 여지를 줄이는 것이다.

2021년 이혼한 빌 게이츠와 멀린다. ⓒAP Photo
2021년 이혼한 빌 게이츠와 멀린다. ⓒAP Photo

한국에도 ‘부부재산약정’이라는 계약 형태가 존재한다. 결혼 중 부부의 재산 관리 및 처분의 권한 등을 미리 약정해 등기하는 문서다. 하지만 현재 민법에서 이 계약은 ‘혼인 중’까지만 효력이 적용된다. 결혼 기간 내 특정 재산의 소유, 관리, 처분에 관한 사항만 규정할 뿐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효력이 없다. 반드시 혼인신고 전에 작성해 등기해야 하고, 작성 후 변경도 어렵다. 이런 제약들 때문에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올해 10월 기준 전국 등기소에 등기된 부부재산약정 등기는 총 393건에 불과하다.

결국 부부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한 기준과 판단은 오롯이 가정법원 재판부에 달려 있는 형국이다. 부부마다, 사안마다, 재판부 성향에 따라 지나치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내려지는 판결이 주는 혼란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 1부장은 “재산분할 판결 기준이 너무 애매하고 불분명해서 재판에서 대응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유리하고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사람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변화와 각 나라 입법례를 반영하여 일선 법원에서 참고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아우트라인은 잡아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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