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지방해양경찰청 마약수사대 수사관들이 2021년 11월 부산 앞바다에서 건진 마약 주사기의 투약자를 추적해 2년 동안 21명을 검거했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남해지방해양경찰청 마약수사대 수사관들이 2021년 11월 부산 앞바다에서 건진 마약 주사기의 투약자를 추적해 2년 동안 21명을 검거했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부산항만공사 앞바다에 드리운 낚시찌가 크게 흔들렸다. 묵직한 손맛에 낚시꾼은 문어가 잡혔으리라 기대하며 빠르게 릴을 감았다. 정작 낚싯바늘에 딸려 나온 것은 비닐봉지였다. 그 안에 핏자국이 묻은 주삿바늘 60여 개와 돌덩이가 있었다. 범죄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한 낚시꾼은 해경에 신고했다. 2021년 11월, 부산 앞바다에서 건진 ‘비닐봉지 마약 사건’의 시작이다.

부산·울산·통영·창원·사천 등 남해 해역을 관할하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남해해경청) 마약수사대가 지난 11월까지, 2년간 해당 사건의 수사를 맡았다. 단순 투약자를 넘어 부산 중심가에서 활동하는 폭력조직 내 유통총책 등 모두 21명을 검거하고 이 중 16명을 구속했다. 특히 윗선 판매책을 연쇄적으로 추적해 지역 내 마약 유통 거점들을 무너뜨리는 성과를 이뤘다. ‘큰물이 도는’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베테랑 마약 수사관 다섯 명으로 구성된 남해해경청 마약수사대는 2021년 3월에 신설된 전국 지방해양경찰청 최초의 마약전문 수사팀이다. 동남아·중남미산 마약을 실은 외국 국적 선박이 부산항을 기항지로 삼거나 국제 선박끼리 ‘던지기’ 수법으로 남해 앞바다에서 약을 거래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증거인멸이 쉬운 해상에서 ‘선박 마약 파티’ 사건 등이 증가하면서 해경 내 마약수사대 창설 요구가 커진 것이 계기다.

남해해경청 마약수사대는 창설 이후 만 2년 동안 마약사범 57명을 검거하고 이 중 28명을 구속했다. 약 40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인 필로폰 123g과 약 3600명이 투약 가능한 양인 대마 366g 등을 압수했다. ‘비닐봉지 마약 사건’은 이곳 마약수사대의 노하우와 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베테랑 마약수사관 김인호 제1반장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마약사범은 반드시 잡힌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베테랑 마약수사관 김인호 제1반장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마약사범은 반드시 잡힌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통상 바다에서 건져 올린 투약 주사기는 염분에 의해 심하게 오염되므로 추적 단서가 될 확률이 낮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주사기는 바늘 마개가 꽉 닫힌 온전한 상태로 비닐에 밀봉돼 있어 오염도가 낮았다. 남해해경청 마약수사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혈흔이 묻은 일부 주사기에서 투약자의 DNA 정보를 확보했고 기존 마약 전과자 정보와 대조해 조폭 조직원 출신이자 친구 사이인 50대 투약사범 ㄱ씨와 ㄴ씨를 특정해 검거했다.

보통 사람은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마약 투약자는 조폭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형님 취급’을 받지 못하다 보니 피의자들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마약수사대는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판매책이 여전히 조직과 연루되어 있을 거라고 보고 잠복과 추적을 이어간 끝에 마약 판매책인 조직폭력배 부두목 ㄷ씨와 또 다른 판매책인 조직폭력배 ㄹ씨 등을 연이어 구속했다.

김인호 남해해경청 마약수사대 1반장은 마약 판매책을 ‘유령’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도, 신용카드도, 거주지도 없이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으로 쓴 서신을 교환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대포차’와 ‘대포폰’을 이용해 추적을 교란한다. ‘유령’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사관들은 속칭 '야당'이라 불리는 정보제공자의 첩보와, 통신 추적에 매달려 증거를 수집한다. 통신·체포·구속 영장 등을 발부받기 위해 정확한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필수다. 이 자료들은 마약 정밀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와도 피의자를 구속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물급 판매책일수록 몸이 ‘가볍다’. 해외에 있는 윗선 공급책에게 마약을 조달받아온 유통총책 40대 조폭 ㅁ씨(2023년 6월 구속)가 그랬다. 이런 마약 총책들은 2~3일에 한 번씩 거처를 옮기기 때문에 마치 수도승처럼 짐이 단출하다. 그만큼 생활의 흔적이 적다. 마약을 확보하는 즉시 아랫선 판매책들에게 손대손(대면) 거래로 빠르게 약을 ‘뿌리기’ 때문에 주머니도 깨끗하다. 자신의 거래 상대인 마약사범들조차 믿지 않아 유통 정보를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고 언제나 혼자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유령’들도 “시간이 문제일 뿐, 결국엔 잡힌다”(김인호 반장).

40대 택시 기사인 마약 판매책을 경남 통영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검거하는 모습.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40대 택시 기사인 마약 판매책을 경남 통영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검거하는 모습.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마약사범들의 삶은 닮아 있다”

투약자의 삶은 ‘마약’이라는 단어에 모든 것이 속박되는 삶이다. 김인호 반장은 약을 끊기 위해 시골로 들어갔던 어느 마약사범 이야기를 꺼냈다.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 만큼 모든 것과 단절하며 지냈는데도 어느 날 뉴스에 나온 ‘마약’이란 단어 하나에 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투약해 검거됐다. 이들은 ‘내일 구속되더라도 오늘은 약을 한다’는 마음으로 산다.”

이런 마약사범들의 삶은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닮아 있기도 하다. “마약사범들은 법을 아주 잘 안다. 검거 당시 상황을 문제 삼거나, 본인이 특정되는 언론 인터뷰를 했다며 수사관들에게 소송 거는 일도 많다. 이들이 법을 잘 아는 이유는 많은 범죄를 저지른 끝에 다다르는 것이 마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된 이후에는 그다음이 없다. 투약과 구속, 다시 투약을 반복하다 마약을 팔고, 마약을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마약은 모든 범죄의 끝이다.”

원래 범죄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지던 마약은 점점 범죄에 입문하는 손쉬운 ‘시작 단계’가 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10대 마약류 사범은 2018년 전체 1.1%(143명)에서 2022년 2.6%(481명)로 늘었으며 20대 마약류 사범 역시 2018년 16.8%(2118명)에서 2022년 31.6%(5804명)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마약사범이 되는 계기도 ‘중독 때문(3.5%)’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14.4%)’인 경우가 더 많다. 그만큼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투약자도 늘고 있다. '비닐봉지 마약 사건'으로 검거된 사람들도 대리운전 기사, 건설 노동자, 병원 상담원, 여대생, 부동산 중개업자, 요식업자 등이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마약을 구매한 피의자도 있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고 마약을 거래한 피의자도 있었다.

해상 범죄를 단속할 때 사용되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형사기동정. ⓒ시사IN 조남진
해상 범죄를 단속할 때 사용되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형사기동정. ⓒ시사IN 조남진

〈시사IN〉 취재진이 김인호 반장과 인터뷰를 마무리하던 오후 4시, 주진홍 마약수사대 2반장이 마치 이제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는 듯이 피의자 추적을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유도 유단자인 주진홍 반장의 손바닥에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 얼마 전 마약사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손바닥을 베여 꿰맨 자국이다. 왜소한 60대 남성인 마약사범은 순순히 검거에 응하는 척하다 손바닥으로 감싸 숨기고 있던 주머니칼을 휘둘렀다. 마약사범은 대부분 약에 취한 채 검거되지만,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갑작스레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마약수사대는 기피 부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유통책을 잡기 위해 발품을 팔며 긴 시간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돌발 변수가 많아 수갑을 채우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호 반장은 마약사범을 수사하는 보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초범을 잡으면 ‘지금이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때’라고 설득한다. 단약을 하려면 주변 마약사범을 끊어내야 한다. 그 기회를 우리가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기자명 부산·김다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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