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9일(현지 시각) 열린 아르헨티나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극우 급진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전진하는 자유’당)가 중도 좌파 ‘모두를 위한 연합’의 세르히오 마사(현 집권 여당 소속인 경제부 장관)를 누르고 승리했다. 이날 선거에서 밀레이는 약 56%를 얻은 반면 마사의 득표율은 44%에 그친 것으로 집계되었다.

“모두 꺼져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밀레이는 승리가 확정된 이후의 연설에서 “퇴보(the model of decadence)가 끝났고, 이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엔 없다”라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에선 밀레이 지지자들이 록 음악과 경적을 울리며 이번 선거의 구호였던 “(기존 정치인들은) 모두 꺼져라”를 연호하는 등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11월19일, 하비에르 밀레이(왼쪽)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당 본부에서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후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PHOTO
11월19일, 하비에르 밀레이(왼쪽)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당 본부에서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후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PHOTO

밀레이의 열혈 지지자들 가운데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은 중도 좌파(페론주의자)와 중도 우파가 주도해온 아르헨티나의 사회‧경제 체제가 ‘위기에서 더 큰 위기로 나아가는’ 시대에 성장했다. 로이터가 밀레이의 승리 직후에 만난 아르헨티나 20대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황홀하다. 밀레이는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람이다. 마사가 승리했다면 아르헨티나에겐 미래가 없었을 터이지만, 드디어 우리의 미래가 돌아왔다.” “밀레이는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대표하고, 마사는 아르헨티나의 모든 문제점들을 상징한다.”

‘페소 폐지’가 의미하는 것

밀레이의 승리는, 기존 양당(중도 좌파-중도 우파) 체제가 ‘연간 150%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빈곤율 상승’ ‘일자리 부족’ ‘국가부도 위기’ 등 산적한 아르헨티나의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에서 완벽한 낙제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정치 경력이 거의 없는 데다 주 지사나 시장 등 행정 집행 인력마저 갖추지 못한 밀레이를 ‘지금의 체제와 결별하겠다’는 슬로건만 믿고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에 엄청난 사회‧경제적 충격을 줄 공약들로 당선되었다. 가장 인상적인 공약은 ‘중앙은행 폐쇄’다. 현재 아르헨티나 통화인 페소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국가 통화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GDP가 남미 2위(브라질 다음)일 정도로 큰 규모의 나라가 자국 통화 정책의 고삐를 사실상 미국의 중앙은행에 넘기겠다는 경우는 사상 최초다. 그는 기후위기를 “사회주의자들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아르헨티나의 기후 관련 정책들 역시 모두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11월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의 지지자들이 밀레이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REUTERS
11월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의 지지자들이 밀레이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REUTERS

사회 부문에서는 여성의 ‘임신 중지권’ 폐지, 총기 규제 완화, 교도소 운영권을 군대로 이양, 의료 민영화, 공공 자금으로 사교육 지원 등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밀레이는 또한 중국과 브라질을 비판하며 “공산주의자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선호한다고 말해왔다.

트럼프,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CNN(11월20일)에 따르면, 밀레이의 승리 직후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에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라며 “나는 당신(밀레이)이 매우 자랑스럽다”라고 썼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밀레이의 행운과 성공을 기원하지만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좌파 성향의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오늘은) 남미의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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