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개가 그립다. 복실복실한 털에 얼굴을 실컷 부비고 싶다.” ⓒ정우열 제공
“요즘 부쩍 개가 그립다. 복실복실한 털에 얼굴을 실컷 부비고 싶다.” ⓒ정우열 제공

나에게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폐소공포증의 다른 이름이다. 가본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당시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 같은데, 언제부턴가 그때를 회상하면 이상하게 가슴이 갑갑해지고 온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을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쿠폴라(돔) 내부의 그림을 좀 자세히 보고 싶은데 그럴 겨를도 없이 인파에 떠밀려 어어어, 하면서 좁고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오른다. 두껍고 완고한 벽이 지나치게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 나 있는 창문은 숨통을 틔워주기는커녕 이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를 실감하게 할 뿐이다. 게다가 모두 촘촘한 철창으로 막혀 있다.

갑자기 두 팔을 양옆으로 크게 펼치고 싶은 충동이 주체할 수 없이 솟아오른다. 동시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미칠 것 같은 공포심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을 쉴 수가 없다. 당장 뒤돌아서 오던 길로 도망치고 싶지만 앞도 뒤도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로 꽉 막혀 있다. 벽을 부숴야 한다. 이탈리아 국보일 텐데 그래도 되나? 근데 이탈리아에도 국보 같은 게 있나? 있겠지, 있겠지. 그걸 부쉈으니 온 세상 뉴스에 나오겠지. 왜 그랬나요? 왜 성당을 부쉈죠? 죄송합니다, 죽을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이탈리아 국민들과 두오모 성당을 사랑하는 전 세계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죗값을 달게 받으면서 살겠습니다. 제발 좁은 데만 가두지 말아주세요.

개가 죽은 지 아홉 달이 지났다. 바람이 찬 계절에 떠나보내서 그런지 날이 쌀쌀해진 요즘 부쩍 개가 그립다. 복실복실한 털에 얼굴을 실컷 비비고 싶다. 뜨뜻한 배에 입술을 대고 부르륵, 부르르륵, 부르르르륵, 일명 배방귀를 3회 실시하고 싶다. 늙은 개는 싫은 내색을 미묘한 귀 각도로 표현하면서 게슴츠레하고 멀뚱멀뚱한 얼굴로 내 장난을 견뎌주었을 것이다. 단단하고 미끈한 이마를 쓰다듬고 싶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스물다섯 번에서 서른 번 쓰다듬을 때쯤 개는 그으으으읍 하고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낼 것이다.

이쯤에서 못살게 굴기를 중단하는 편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개는 기회를 노려 도망칠 것이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마지막으로 한번 꼭 끌어안은 다음 미간에 뽀뽀를 두 번 하고 개를 놓아준다. 그랬지, 그런 일상이 있었지. 그런 게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적막하게 느껴진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언젠가 비슷한 걸 느껴본 것 같다. 두오모 성당의 좁은 계단이 떠오른다.

두오모 성당에서의 경험이 정말 그랬는지, 혹은 내 기억이 점점 과장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영상 초반에는 ‘음, 역시 과장된 거였나’ 싶다가 뒤로 갈수록 ‘어이쿠, 아쉽지만 저긴 다시 못 가겠군’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보기 어려워 영상을 닫으려 할 때쯤 갑자기 공간이 확 열리며 파란 하늘 아래로 피렌체 시내 전경이 펼쳐졌다. 갑갑하던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 다시 땅을 디디려면 좁은 계단을 또 내려가야 하겠지만, 뭐 원래 인생이 그런 거겠지.

기자명 정우열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