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이와이 슌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 일본 도쿄의 스태프와 차기작을 의논하는 통화 중이었다. 전화기 너머 스태프가 말했다. “흔들리나?” 감독은 그를 안심시켰다. “아니야. 마음 흔들릴 거 없고 차근차근 추진해보자.” “아니요, 그 말이 아니라… 지진인 것 같아요.”

도쿄에 지진이 난 줄 알았다. TV를 켜보니 미야기현에 지진이 났다고 했다. 북쪽 끝의 지진으로 도쿄까지 흔들린다고? 대체 얼마나 큰 지진인 거야? 조금 뒤,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현장을 헬리콥터에서 중계하는 뉴스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고향 마을 센다이가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일본에서 만들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일본에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때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엄청난 참사를 겪은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 현대사회를 영화에 담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긴 것이다. ‘죽음’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러브레터〉(1995)가 있다.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의 “오겡끼데스까?”에 한국 관객도 온통 마음을 빼앗긴 영화였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311:이와이 슌지와 친구들〉을 연출하며 직접 재해 지역을 방문하고 생존자를 만나면서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러브레터〉를 만든 나도 어쩌면 죽음을 진정으로 몰랐을 수도 있겠다”라고. 떠난 사람을 기억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간절하고 끈질기고 애틋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만들었다. 말을 잃고 노래만 할 수 있게 된 거리의 가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가 우연히 고향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를 만나 도쿄의 이곳저곳을 떠도는 이야기. 어느 날 나쓰히코(마쓰무라 호쿠토)라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키리에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난다. 동일본 대지진. 그때 쓸려간 언니 키리에의 이름을 빌려 가수가 된 그의 본명은 루카. 말을 잃고 노래만 할 수 있게 된 사연을 나쓰히코가 말해준다.

“루카는 지진으로 가족을 잃었어. 걔는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말을 하려 하면 울음이 터져버려. 울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대. 여러 가지를 참고 지내는 것 같아. 신기하게도 노래는 부를 수 있어. 왜 그런지는 본인도 모른대.”

‘말을 잃어서 안타깝다’ 대신 ‘노래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영화. 말과 함께 사라지고 빼앗기고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죽음’과 ‘상실’에 짓눌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래와 함께 쏟아내고 터뜨리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되찾아가는 ‘기억’과 ‘치유’의 여정이 담긴 이야기.

어느 날 잇코와 루카가 함께 바다에 가서 나눈 대화가 특히 잊히지 않는다. “바다가 무섭니? 쓰나미 무서웠어?” 하고 묻는 잇코에게 더듬더듬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얘기하는 루카. “왠지 바다는 그리운 느낌이에요. 모두가 바다에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결국, 그리움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곧 누군가의 ‘삶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이와이 슌지가 그 이야기를 해낸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가 아니면 만들지 못할 영화로.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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