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이후 머리를 빗은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미국 달러를 아르헨티나의 공식 통화로 채택하겠다고 공약했다. 급기야는 인체 장기는 물론 유아의 거래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르던 마스티프의 유전자로 복제한 강아지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름을 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밀턴’, 로버트 루카스(전 시카고대 교수)의 ‘로버트’와 ‘루카스’ 등.

이 사람의 이름은 아르헨티나 하원의원인 하비에르 밀레이. 경제학자 출신의 리버테리언(자유시장 근본주의자) 정치인이다. 한때 남미 최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유력 대통령 후보로 막 떠올랐다.

2석 차지한 소수 정당 대표가 예비대선에서 1위 차지

밀레이는 지난 8월13일 열린 아르헨티나 예비선거(primary election,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본선 이전에 치르는 선거)에서 최다 득표율인 30%를 기록했다. 그가 소속된 ‘전진하는 자유’는, 이 나라 하원(257석)에 단 2석을 보유한 소수 정당이다. 그러나 예비선거에서 중도 보수/진보로 구분되는 양대 거대 정당의 후보를 제쳐버렸다. 중도보수 야당 연합인 ‘변화를 위한 함께’의 후보들은 모두 28%, 집권 여당인 중도좌파 ‘모두를 위한 연합’ 후보들은 27%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더욱이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24개 주 가운데 16개 주에서 승리했다.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중도 보수/진보의 양대 정당을 응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르헨티나 하원의원이자 대선 예비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지난 8월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아르헨티나 하원의원이자 대선 예비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지난 8월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물론 예비선거로 밀레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르헨티나의 예비선거는 성인 대다수가 의무적으로 투표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예비선거는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누가 당선될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표로 간주되어 왔다.

이런 의외의 결과는 지난 몇 년 동안 악화일로였던 아르헨티나의 경제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40%가 빈곤층으로 집계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율(지난해 같은 달 소비자물가 기준)은 지난 6월 현재 116%에 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통화인 페소의 달러 대비 가치는 1년 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떨어진 상태다. 외환보유고는 바닥났다. 지난 8년 동안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번갈아 집권했으나, 이들은 경제난 해결에 철저하게 무능했다.

기후변화 부정하고 '코로나 백신 접종' 거부한 정치인

밀레이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파격적 언행과 록 페스티벌 같은 유세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밀레이는 자유시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 지출을 전기톱으로 잘라버리(복지 지출 대폭 삭감)’고 미국 달러를 통화로 채택해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집권하면, 페소를 발행하는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쇄할 계획이다. 모든 현대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는 장기나 유아의 자유로운 시장 거래를 합법화하는 방안까지 언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총기 소지를 허용하고 임신중절은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밀레이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코로나 백신 접종도 거부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을 대단히 존경한다.

이날 예비선거에서 집권 중도좌파 연합은 세르지오 마사 현 경제부 장관을, 중도우파 연합은 강경 보수파인 패트리샤 불리치 전 안보부 장관을 각각 자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밀레이-마사-불리치 3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의 본선은 오는 10월22일 열린다.

이 본선에선 45% 이상을 득표하거나 혹은 40~45%(미만)지만 다음 순위의 후보보다 10%포인트 높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런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엔 1, 2위 후보가 11월에 결선 투표를 벌이게 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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