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왼쪽)이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AP Photo
5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왼쪽)이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AP Photo

즉각적 경기침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20% 이상 폭등, 800만 개 이상 일자리 상실, 주식시장 가치 45% 폭락, 사회보장연금 지급 중단, 연방 공무원 일시해고, 미군 월급 지급 중단,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미국 국채 기피, 달러화 폭락, 달러 기축통화 약화, 미국발 세계경제 불황 등. 미국 정부가 늦어도 6월1일까지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데 실패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이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에 연방정부의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부채한도 증액에 동의해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요즘 미국 사회에 디폴트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이자,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100개 넘는 기업의 회장들은 의회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디폴트가 초래할 ‘경제적 재앙’을 경고하며 합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연방정부가 78차례 부채한도에 걸렸지만 디폴트가 초래할 경제적 재앙을 우려해 실제 디폴트에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11년 8월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 시절, 디폴트 직전까지 갔지만 공화당과 극적으로 타협해 위기를 모면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당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70년 만에 처음으로 강등되고, 그 여파로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이번에도 양측은 막판에 극적 타협을 이룰 것으로 기대되지만 협상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부채한도 증액 문제는 미국에선 거의 연례행사처럼 반복돼왔다. 올해는 지난 1월에 일찌감치 이 문제가 도래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의회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부 부채가 의회가 정한 한도액인 31조4000억 달러에 이미 도달해 ‘긴급조치’를 통해 채무를 변제하고 있다”라며 증액 필요성을 촉구한 것이다. 공화·민주 양당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옐런 장관은 최근 ‘6월1일’이라는 날짜까지 밝히면서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으면 채무불능 상태에 빠진다고 거듭 경고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5월9일과 16일 두 차례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등과 만났다. 이어 G7 일정까지 단축하며 막판 타협을 시도했다.

지난 4월 하순 공화당은 부채한도 증액과 연방정부 지출 삭감을 연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의 골자는 연방정부가 부채한도를 지금보다 1조5000억 달러 증액하거나 내년 3월31일까지 연장하되, 연방정부 지출을 2022년 수준으로 줄이고 예산 증액을 연 1%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부채한도 증액과 연방 지출은 별개 문제라며 통과된 법안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야당인 공화당과 타협해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공화당 하원의원들 가운데는 이른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외쳐대며 “연방정부가 지출을 삭감하라는 공화당 요구를 무시하면 디폴트를 주도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르는 극우파 의원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매카시 하원의장이 얼마나 유연성을 보일지 의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타협점을 찾지 못해 연방정부가 실제 디폴트 위기에 몰릴 경우에 대비해 대안을 논의 중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협조를 얻어 하원의장을 거치지 않은 채 다수결로 부채한도 증액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방안이 그 하나다. 전체 하원의원은 435명. 민주당은 다수결에 해당하는 218명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 하원의원이 213명임을 감안하면 공화당 의원 5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임시방편으로 의회가 부채한도를 몇 주 혹은 몇 달 정지시키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 경우 1차 시한은 9월 말이 유력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점이 바로 2024 회계연도 연방 예산의 통과 시한과 맞물린다는 점이다. 이 경우 백악관은 우군인 민주당과 함께 공화당을 상대로 부채한도 증액 및 연방 예산 문제를 동시에 협상해야 한다. 부담이 크고 타협 가능성도 낮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공화당과 끝내 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결국 비상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첫 번째 비상 방안으로는 대통령 행정명령이 거론된다. 즉 바이든 대통령이 조폐국에 1조 달러짜리 백금(platinum) 동전을 발행하도록 지시해 이를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에 예치한 뒤 이 돈으로 채무 변제에 나서서 디폴트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이 1조 달러어치 동전을 받아줄지도 확실하지 않은 데다 가뜩이나 인플레가 높은 상황에서 1조 달러를 새로 찍어내면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가 심화될 우려 때문에 부정적 시각이 많다.

두 번째 비상 방안은 연방정부의 채무 변제를 의무화한 수정헌법 제14조를 발동하는 것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866년 연방 상원은 ‘미국 정부가 진 채무의 효력은 의심받아선 안 된다’며 국가의 채무 변제를 의무화한 수정헌법 제14조 제4항을 신설했다. 부채한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최근 이 조항이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과 민주당 상원 지도자들, 헌법학자들 사이에 관심사로 떠올랐다.

민주당 상원 딕 더빈 법사위원장 ⓒAFP

“분명히 소송 뒤따를 해법”

의회 전문지 〈더 힐〉에 따르면, 민주당 상원 딕 더빈 법사위원장은 “수정헌법 14조에 명백히 있는 만큼 부채한도 증액과 관련해 이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조인 출신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도 “매카시 하원의장이 미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면 대안을 찾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며 수정헌법 14조 발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상원 예산위원회 셸던 화이트하우스 위원장은 “수정헌법 14조 발동만이 디폴트를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에 바이든 대통령도 최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수정헌법 14조 발동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옐런 재무장관은 “분명히 소송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해법은 되지 못한다”라며 우려했다. 실제 상하원 공화당 지도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채한도 증액을 위해 수정헌법 14조를 발동할 경우 의회의 예산지출권을 무시한 ‘위헌’이라며 법원에 즉각 효력정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문제가 연방대법원까지 가도 보수 법관 6명 대 진보 법관 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역학상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다.

수정헌법 14조 발동 문제는 역대 행정부 시절에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논의되었지만 실제로 실행된 적은 없다. 행정부와 의회가 디폴트 직전에 극적 타협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제이컵 루는 CNN 방송에서 “수정헌법 14조를 발동하면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안전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법원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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