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나폴리가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김민재가 팬들과 환호하고 있다. ⓒEPA

2020년 12월4일, 이탈리아 항구도시 나폴리를 연고로 하는 SSC 나폴리의 홈구장 스타디오 산 파올로는 57년 만에 이름을 바꿨다. 새로운 이름은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축구의 신’ 마라도나의 풀네임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펠레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자리를 놓고 생전에도, 사후에도 치열하게 경쟁한 인물이다.

21세기 스포츠는 자본주의의 전장이다. 경기장 이름은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축구단에 수천억 원을 쏟은 구단주 소유 회사명이나 글로벌 기업명이 경기장(각국 언어에 따라 스타디움, 스타디오, 아레나, 에스테디오 등으로 표기)에 붙는 게 일반적이다. 나폴리 구단 이사회의 선택은 반대였다. 명칭권을 쓰는 대가로 연간 수백억 원을 주는 기업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축구로 영원히 기억될 기쁨을 준 이방인의 이름을 새롭게 붙였다. 마라도나의 부고가 전해지고 열흘간 논의를 거친 뒤 일이었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초대형 경기장(수용 규모 5만명 이상)은 한 사람의 업적을 오래 기억하는 공간이 됐다.

나폴리는 왜 그렇게 마라도나를 추앙할까?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남부의 근대사를 살필 필요가 있다. 긴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반도는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심각하다. 1861년 이탈리아반도 통일 전까지 북부는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등 다양한 공화국으로 갈려 있었다. 나폴리, 팔레르모가 중심 도시인 남부는 700년 가까이 시칠리아 왕국의 강역이었다. 사실상 남남이었다. 통일 후 북부는 경제 중심지로 위세를 자랑한 반면 산업화가 늦은 남부는 뒤처졌다. 북부와 남부는 지역에 따라 1인당 지역총생산(GDP)이 3배 이상 차이 나는 심각한 격차를 보였다.

정치적 갈등도 심각하다.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북부동맹이 의회 내 제3당을 거쳐 2019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며 여당이 되었다. 창당 초기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의 분리독립을 강조하던 북부동맹은 최근 극우 노선을 타고 있다. 연방제, 반(反)유럽연합, 반이민 정책을 강조한다. 북부동맹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남부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극렬한 항의를 받을 정도다.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으로 명성이 높지만 근대 이탈리아의 주역이 된 일은 거의 없다.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이 1, 2차 세계대전 당시 군비 증강을 위해 해군 요충지로 발전을 지시한 시기 정도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남부 지역민들은 생존을 위해 대거 미국 이민을 택하기도 했다. 그 배경을 자세하게 묘사한 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한 3부작 영화 〈대부〉다.

이탈리아 축구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A 지형도도 다르지 않다. 1898년 창설 이후 125년 동안 북부를 대표하는 3개 클럽이 주류였다. 토리노 연고의 유벤투스(36회), 밀라노 연고의 AC 밀란, 인테르 밀란(각 19회)이 총 74회 우승에 성공했다. 21세기 들어서도 마찬가지. 이번 시즌을 제외하면 AS 로마가 2000-2001시즌 정상에 선 것이 남부 팀의 유일한 우승이었다. 나머지 21회 우승은 모두 유벤투스와 양 밀란의 차지였다. 이들은 남부의 자존심인 나폴리를 상대할 때마다 ‘베수비오 화산이여, 저들을 불로 씻어버려라’는 섬뜩한 응원가를 부른다. 그런가 하면 ‘나폴리는 이탈리아의 하수구’ ‘저들은 이탈리아가 아니다’라는 심각한 차별 문구가 쓰인 걸개를 내걸기도 한다.

북부의 위세에 짓눌려 있던 시대, 나폴리에 등장한 구세주가 마라도나였다. 1984년 마라도나는 세리에A의 약체 나폴리에 입단한다.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미 스타가 된 마라도나는 1982년 유럽 최고의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며 꿈의 무대로 향했다. 그러나 첫 시즌에는 간염으로 고생하며 3개월간 결장했고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놓쳤다. 막바지 분투로 코파델레이(FA컵), 코파데라리가(리그컵) 트로피를 선사했다. 마라도나를 정상적인 수비로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상대 클럽들은 두 번째 시즌 들어 노골적인 파울을 범했다. 4라운드 만에 상대 수비수의 악랄한 태클에 마라도나는 발목 골절과 인대 파열 중상을 입었다. 수술 후 복귀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복귀한 뒤에도 집단 난투 수준의 파울이 계속됐고 마라도나는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축구장 밖에서 마약, 성매매 등 다양한 스캔들에 연루됐다.

세계 최정상 클럽에서 이골이 났기 때문일까? 2년 만에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한 마라도나의 선택은 흥미로웠다. 다른 명문 클럽의 오퍼를 뒤로하고 나폴리로 날아갔다. 당시 세리에A는 분데스리가와 함께 세계 최고의 리그였지만 주인공은 북부의 부유한 클럽들이었다. 나폴리가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인 760만 달러를 제시한 것도 의외였지만, 마라도나가 그 러브콜을 받아들인 것은 일종의 반골 기질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정설이다. 별볼일 없는 클럽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바르셀로나에는 없던 평화, 그리고 존중을 기대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세계 축구사에 유례없는 신화가 시작된다. 1984-1985시즌 마라도나는 원맨쇼를 펼치며 나폴리를 리그 중위권인 8위로 이끌었다. 1985-1986시즌에는 팀과 함께 3위로 올라섰다. 그의 결승골로 홈에서 유벤투스를 꺾은 날에는 엄청난 희열에 심장마비를 일으킨 관중이 나올 정도였다. 멕시코에서 열린 1986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우승에 성공한 마라도나는 새 시즌 목표를 나폴리의 우승이라 선언했다. 1986-1987시즌 나폴리는 결국 우승에 성공했다. 나폴리 시내는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이탈리아의 축구 판도가 뒤집혔다.

나폴리와 마라도나의 행복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88-1989시즌에는 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이 나폴리로 배달됐다. 1989-1990시즌에는 통산 두 번째 세리에A 우승을 달성했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FIFA 월드컵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가 격돌했다. 공교롭게 경기 장소는 나폴리의 홈인 스타디오 산 파올로였다. 마라도나는 “나폴리만은 나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나폴리 팬들은 준결승 당일 “미안해 디에고, 그래도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이다”라는 걸개를 걸었다.

5월4일(현지 시각) 나폴리 팬들이 우승을 확정한 뒤 마라도나 사진이 새겨진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AFP

나폴리의 구세주 마라도나, 그리고 김민재

결별은 아쉬웠다. 나폴리는 대표적인 마피아 조직인 카모라가 사회·문화 전반을 뒤에서 조종하는 곳이었다. 바르셀로나 시절 마약을 처음 접한 마라도나는 카모라의 지원 속에 코카인에 빠졌다. 결국 가장 아름다운 영광의 시절이 마라도나를 수렁에 빠트렸다. 나폴리에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을 달성한 마라도나는 이후 목표를 잃고 방탕한 사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약 소지 혐의로 조사를 받은 그는 도핑 검사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왔다. 신화는 끝났다. 몰락한 마라도나는 15개월 출장정지 징계 속에 조용히 나폴리를 떠나야 했다.

마라도나가 떠나고 나폴리도 빠르게 추락했다. 본래 자리인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2부 리그인 세리에B로도 모자라 세리에C(3부)까지 강등됐다. 2004년 이탈리아 최대 영화 제작자인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회장이 구단을 인수하며 회생은 시작됐다. 빠르게 1부 리그로 복귀한 나폴리는 라우렌티스 회장의 지원 속에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번번이 유벤투스에 막혀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네 차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나폴리가 기다린 세 번째 우승은 1990년 이후 33년 만에 돌아왔다. 마라도나 사후 3년 만인데, 이번에는 신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였다. 라우렌티스 회장은 가치평가가 절하된 블루칩을 모았다. 전술 능력은 좋지만 트로피는 들어올리지 못했던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 나이지리아 출신의 골잡이 빅터 오시멘, 코소보 대표팀 센터벡 아미르 라흐마니, 카메룬의 미드필더 앙귀사 등이 나폴리의 뼈대를 이뤄갔다. 2022년 여름 추가한 선수 두 명이 핵심이 됐다. 유럽에서도 약체인 조지아 출신의 측면 공격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무명의 센터백 김민재였다. 특히 김민재는 세리에A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던 칼리두 쿨리발리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나폴리는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 주요 기착지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 나폴리는 축구계에서 비주류로 통하는 국가의 주요 선수들이 모여 무서운 질주를 시작했다. 개막 후 15경기 연속 무패(13승 2무)를 기록하며 독주했다. 결국 리그 종료 5경기를 남겨두고 조기 우승을 달성했다. 오시멘, 흐비차가 이끄는 공격과 김민재가 버티는 수비는 시즌 내내 극찬을 받았다. 33년 만의 우승을 자축하기 위해 나폴리 팬들은 지역 멸시의 도구로 활용되던 베수비오 화산에 올랐다.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초록색·흰색·빨간색 불꽃을 터트리려 시도했지만, 국립공원 당국에 저지됐다. 그들은 그 빛나는 불꽃을 자신들을 멸시하던 이탈리아 전역에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늘에 있는 마라도나에게 닿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자명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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