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서 배워라

해나 개즈비 지음, 노지양 옮김, 창비 펴냄

“이제 해로운 농담은 끝내야 한다.”

당신이 넷플릭스를 본다면 언젠가 한번 추천 작품에 〈해나 개즈비:나의 이야기〉가 떴을지도 모른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개즈비의 삐딱한 표정을 보며 아마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남자야, 여자야?”였을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그의 저력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ADHD, 자폐 진단을 받은 젠더퀴어(여성이나 남성 같은 전통적인 성별 구분을 따르지 않는 제3의 성)인 그는 소수자성이야말로 자신의 힘이라 믿으며 자기만의 코미디를 계속해서 펼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삶의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무엇보다도 웃기고 재미있다.

플레이밍 사회

이토 마사아키 지음, 유태선 옮김, 북바이북 펴냄

“‘누가 약자인가’라는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그것으로부터 ‘약자의 특권’이라는 궤변이 만들어지게 된다.”

활활 타오른다는 의미의 플레이밍(flaming) 현상은 개인과 집단을 향해 격렬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뜻한다. 책에선 일본 사회에서 벌어진 사회적 대립과 폭력 문제를 다루지만,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는 지적이다. 국민적 사랑을 받던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이 한순간 미움의 대상으로 바뀌고, 여성 차별을 다룬 광고 이후 여론의 비난이 가해진다. 코로나19 당시 동정을 받던 음식점이 정부지원금을 받자 오히려 반감을 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이를 “히스테릭한 정의의 폭주”라고 부른다. 사이버 불링부터 캔슬 컬처, 해시태그 운동 등 플레이밍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누가 약자인가, 누가 피해자인가를 놓고 극단화하는 온라인 현실을 담았다.

세습 자본주의 세대

고재석 지음, 우석훈 해제, 인물과사상사 펴냄

“진보적인데 윤석열에게 무게를 실어준 세대.”

부제만 보고 책을 펴지 않으려 했다. ‘88만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 그저 그런 세대론 책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1986년생 제주 출신으로 대학 때 상경해 월간지 기자로 일하는 저자의 약력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서울살이를 씨줄로 삼고, 1980년대생 취재원들의 인생 경로를 날줄로 삼았다. ‘20대 때는 고시원 인생, 30대 때는 월세 인생, 급기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끌족이 된 세대’는,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이지만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이 응축되어 있다. 당사자가 풀어낸 1980년대생들의 ‘여러 겹의 얼굴’이 담겼다.

르 몽스트르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박철호 옮김, 제철소 펴냄

“있는 놈들은 그 돈이 어디서 나는 걸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문맹’이었다. 전쟁이 앗아간 모국어(헝가리어) 대신 “타인에게 끝내 도달하지 못할” 언어인 프랑스어로 읽고 써야 했다. 낯선 언어를 끌어안은 작가가 생전 프랑스어로 쓴 유일한 희곡 모음집이 국내에 처음 출간됐다. 소설이 곡선 모양으로 이야기를 둘러간다면, 희곡은 직진한다. 무대와 말밖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말로 세계를 짓고, 다시 말로 허물어지는 세계를 경이롭게 목격하는 즐거움은 희곡 독자의 몫. 읽는 동안 독자는 극 중 누구든 될 수 있다. 눈으로 읽고, 목소리로도 읽어야 할 책이 도착했다.

표류하는 세계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리더스북 펴냄

“미국 공동체는 쇠퇴하고 있다. 수평선 너머로 어둠이 몰려오고 천둥이 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인 미국이 표류하고 있다. 부자 감세와 규제 철폐, ‘주주가치라는 종교’로 인해 부의 편중이 극대화되면서 국가의 축인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힘이었던 ‘혁신’은 어느새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빅테크 기업 CEO들에 대한 우상숭배로 변질되면서 경제 정의를 해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청년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고립되면서 분노에 찬 인간형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도전은 계속되고 미국의 동맹국인 유럽은 쇠퇴하는 중이다. 이 책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과 정치 경제 현안을 100개의 인포그래픽으로 적나라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혁신과 다양성의 회복, 사회안전망 강화와 부패 척결, 공공서비스 확충 등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이규식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내 인생의 전반부는 갇혀 있던 삶이었고, 후반부는 싸우는 삶이었다.”

오늘 당장 택시도, 버스도, 지하철도, 기차도 탈 수 없다면? 출근하려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야 할 것이다.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건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그러다 점점 집 밖을 나서는 일 자체를 꺼리게 될 것이다. 무슨 이런 상상이 다 있냐고? 2023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실이다. 이동하지 못해서 공부하지 못하고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침마다 모여 우리도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외치지만 우리는 그들을 향해 어떤 시선을 보내는가. 지하철 타는 ‘불법 시위(지하철을 타는 게 불법인 데다 시위라니!)’ 맨 앞줄에 항상 앉아 있는 이규식 활동가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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