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눈 뜨고 코 베인 꼴이라니. 미디어법이 통과되는 그 아수라의 장면을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지다 못해 어이없는 웃음만 실실 나는구먼요. 여보세요, 아저씨 아줌마들. 아, 인생 한번인데 ‘간지’ 안 나게 그게 뭐예요? 뒷골목 양아치들 싸움도 스타일은 구기지 않는 법인데! 게다가 ‘투표 종용’을 어떻게 ‘투표 종료’로 알아듣는데요? 한물간 사오정 개그 하시나?  

일자리를 창출하고, 채널 선택권을 확대한다고요? 장난하세요? 지금도 위성방송, 케이블 채널, 인터넷 방송, 1인 미디어 방송까지 다 합치면 채널이 대체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 단기 알바 자리는 좀 늘겠지만, 평생을 4대 보험 보장은커녕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목숨이 위태로운 비정규직 인생으로 살라고요? 아, 경제 효과가 어쩌니 선진국 수준이 어쩌니 하시는데,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졸았어요? 민주주의, 선거 절차, 토론, 이런 거 아주 쉽고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는데. 그리고 돈만 많다고 선진국 되지 않는 거 모르시나? 무식한 졸부가 존경받는 거 봤어요?

이탈리아 ‘바보 총리’가 롤모델?

아저씨 아줌마들 뜻대로 모모모 재벌 신문사와 기업이 방송까지 장악해서 화려한 코믹 버라이어티 쇼를 날이면 날마다 빵빵 내보내주면서, 국가 기간산업 죄다 헐값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온갖 불법 비리 다 저질러도 모르쇠하고, 깔끔하게 광고나 몇 편 찍어서 방송해주면 다음번에도 또 그 다음번에도, 아니 영원히 권력이 내 손안에 있을 거 같죠? 또 통신망법 같은 망조 들린 법 만들어서 누리꾼 손가락 묶어두면 저절로 태평성대가 되고 온 나라에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질 것 같죠? 당신들 롤모델이 베를루스코니예요? 누군지 몰라요? 왜 있잖아요. 거대 방송 재벌에 유명한 축구단도 갖고 있고, 온갖 섹스 스캔들 만드느라 정치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이탈리아 ‘바보’ 총리.

고다르의 오래된 영화 중에 〈알파빌〉이라고 있는데, 들어나 보셨나. 바쁘신 분들이니 설마 문화적 소양까지 쌓을 시간이 있으려고요. 암튼, ‘슈퍼컴퓨터 60’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 이야기예요. 컴퓨터는 감정이라는 게 없잖아요? 아무리 똑똑해봐야 얘는 0과 1밖에 몰라요. 근데, 인간은 아는 게 많지요. 감정도 있고,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 사회에서는 양심·동정·사랑 이런 것을 법으로 금지했어요. ‘왜’라는 질문도 금지되어 있지요. 왜냐고요? 명색이 지배자인데 자기가 못하는 걸 인간들이 하면 각이 안 나오잖아요! 거기서는 기계적 연산에 따른 행동만 허용돼요. 인간을 노예처럼 부려먹어야 하니까. 어떤 남자의 부인이 죽었어요. 그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 딱 한 방울 흘렸어요. 그는 어떻게 되었을 거 같아요? 총살! 어때요 끔찍하죠? 이 영화, 나름 SF 장르의 고전인데, 나는 자꾸 호러물처럼 느껴지는 거 있죠? 당신들은 이게 리얼리즘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미디어법 따위로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도 이제 당할 만큼 당했고, 알 만큼 알거든요. 인터넷도 없고 신문·방송도 몇 개 안 되는 1980년대 그 웃기지도 않은 ‘보도 지침’을 거쳐 나온 기사를 보면서도 뭐가 진실이고 뭐가 뻥인지 금방 알아채곤 했어요. 그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지요. 가장 중요한 기사는 신문 가장 귀퉁이 1단에, 그리고 가장 짧은 단신으로만 나온다고. 검열요? 그까짓 거야 풍속을 빌미 삼아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잖아요. 미디어라고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밖에 없던 시절에도 3·1운동이 일어났던 거 몰라요? 마지막으로 덕담 한마디만 할게요. 제발 ‘과식’하지 마세요. 탈 나요.
기자명 권용선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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