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한국지뢰제거 연구소장이 9월28일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광동리 일대에서 유실된 지뢰를 발견해 보여주고 있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제공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광동리 460번지 일대에는 ‘지뢰 제거 작전 완료 알림문’이라고 쓰인 군부대 입간판이 있다. 2013년 군이 이 일대에서 8개월여 동안 지뢰를 탐지해 25발을 제거한 후 ‘지뢰 제거가 끝났으니 안심하고 출입해도 된다’고 공지한 곳이다. 지난 9월28일 오후, 이곳에 민간 지뢰 제거 전문가들이 나타났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 일행은 이곳 입간판 주변 30m 반경에서 수풀을 헤치며 지뢰탐지기로 땅을 탐사했다. 얼마 뒤 곳곳에서 삐~ 하는 금속 탐지음이 울렸다. 일행이 땅을 조심스럽게 파헤치자 곳곳에서 원통 모양의 금속 덩어리들이 나왔다. 두 시간 동안 총 20여 발의 M7A4 대인지뢰 및 경전차지뢰를 캐냈다.

이날 지뢰 탐지 발굴 현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참관했다. 김 의원은 “군부대가 지뢰 제거 작전을 완료했다고 간판을 설치한 곳에서조차 이렇게 무더기로 지뢰가 나오다니 어이가 없다. 이번 국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말했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지뢰 20여 발을 찾아낸 김기호 소장은 “이곳은 군부대 지뢰 제거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곳으로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군이 지뢰 회수 과정에서 부실하게 처리해 남아 있던 지뢰 부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뢰에서 뇌관과 분리된 뚜껑 8개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김 소장은 “국제지뢰행동표준에 따르면 지뢰 제거 지역에 대해선 지뢰 관련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 그런데 ‘표준’이 정한 지뢰 탐지·토지 해제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후방지역 33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매설된 지뢰 5만855개 중 2842개가 제거되지 않았다. 경기도에서는 김포시(190발), 파주시(181발), 고양시(136발), 가평군(114발) 등에 각각 100발 이상 지뢰가 남아 있다. 경기도는 이들 지역 외에 연천군에도 상당수의 지뢰가 매설돼 있으며, 유실 지뢰까지 포함하면 정확히 집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국방부가 이미 지뢰 제거 작전을 완료했다고 선언한 곳에서도 지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군부대의 지뢰 제거 작업이 부실하다면 이는 국민 안전의 또 다른 뇌관이다. 경기도·강원도 북부 지역 각 지자체들은 인근 군부대와 계약을 맺고 민통선 후방지역의 미확인 지뢰 탐지 및 제거 작업을 의뢰한다. 지자체는 폭발물 탐지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군에 지원한다. 각 군의 공병부대는 이 돈을 받아 탐지 및 제거 작업을 수행하지만, 부실한 탐지 능력으로 지뢰 제거 작전 완료 뒤에도 미확인 지뢰들이 남아 있어서 안전사고가 빈발한다.

군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난 7월3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하천에서 수해 복구작업을 하던 30t짜리 굴삭기가 지뢰에 폭파됐다. 사고가 난 지역은 3사단 공병대대에서 폭발 일주일 전 지뢰 탐지 작업을 마친 뒤 안전하다고 철원군에 인계한 하천이었다. 안심하고 준설공사를 하던 굴삭기가 폭파되면서 조종석은 100m 밖까지 날아갔다. 현장에서 사망한 기사 문 아무개씨는 팔다리, 머리가 잘려 나간 채 몸통만 발견돼 군경이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시신 일부를 찾지 못해 사고 후 한 달간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비슷한 참사는 2016년 11월30일 철원군 근남면 풍암리-마현리 간 도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도 발생했다. 작업 중이던 덤프트럭이 대전차지뢰를 밟는 바람에 운전사 한 아무개씨가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철원군과 인근 15사단 사이에 ‘지뢰 탐지 및 제거 작전 합의각서’가 체결돼 군부대가 지뢰 탐지 제거 활동을 마친 지역이었지만 사고가 났다. 공병부대의 지뢰 제거 작전 완료 지역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일어나도 군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돈을 받은 뒤 지뢰 제거를 수행한 군에서도 이 사고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신 철원군 담당 공무원과 시공업체 감독관만 처벌받았다.

한강 하구의 유실 지뢰도 문제다. 최근 2년간 한강 하구에서 지뢰가 터지거나 발견된 사례는 5건이다. 인천 강화도와 경기도 김포·고양 등 한강 하구 일대에서는 비무장지대(DMZ)에 매설됐다가 폭우 등으로 흘러나온 M14 대인지뢰 등 유실 지뢰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다. 지난해 6월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환경정화 작업을 벌이던 50대 남성 김 아무개씨가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고양습지는 국제적으로 생태계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5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으나 이 사고로 안전사고 위험이 제기되면서 생태관광 개발계획이 중단됐다. 또 지난해 11월21일에는 김포시 한강변 초소 주변에서 수색 경계 작전을 펴던 육군 17사단 소속 부사관이 대인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장항습지에 이어 김포 초소 인근 폭발까지 모두 김포대교-일산대교 사이 구간에서 발생했다.

2000년 이후 공병부대가 지뢰를 제거하면서 의무복무 병사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병사 14명은 지뢰에 팔다리가 절단되거나 눈이 실명되는 등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안전을 책임지는 지휘관이 지뢰 사고에 책임을 진 적은 없다. 이 때문에 국방 의무를 위해 입대한 병사를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하는 것은 인권침해이자 헌법 제39조 2항(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전문적인 군 장병을 지뢰 제거 작전에 투입하는 것은 장병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막대한 비용만 들어가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등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듯 군의 지뢰 제거 능력 부족이 밝혀지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민간 전문기관의 지뢰 제거 활동 필요성에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2000년 이후 매년 군 공병부대에서 지뢰탐지병과 폭파병을 교육 훈련해 지뢰 제거 작업을 수행해왔다. 이들 경험 있는 병사들은 2년 만에 전역한다. 지뢰 제거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쌓인 이 예비역 자원을 활용해 국제지뢰행동표준에 따른 표준 절차를 교육하고 지뢰 제거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의 생명과 삶을 파괴시키는 지뢰가 후방 곳곳에 방치되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지뢰 제거 작업에 민간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는 법안이 올해 안에 정부(국방부) 법안으로 입법되리라 보인다.

국회 국방위 김병주 의원이 연천 지뢰 제거 작전 완료 지역을 찾은 것도 이곳 상황을 통해 군의 지뢰 제거 능력의 한계를 밝히고 민간 전문가들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법안의 필요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김 의원은 “지뢰 등 제거 활동에 대한 법률을 독자적으로 입법 발의하려고 준비하던 중 이미 정부에서 국방부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인간 생명의 존엄을 먼저 생각해 정부 법안을 지원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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