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동교초등학교 정문 앞에 낯선 문구점이 문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조명 너머로 자주색 암막 커튼을 친 이 작은 점포의 이름은 ‘동백문구점’. 가게에는 각종 필기구와 노트가 진열되어 있고, 창을 바라보는 자리에는 누구나 앉아 글씨를 써볼 수 있는 작은 책상이 놓여 있다.
동백문구점을 운영하는 유한빈씨(29)는 온라인에서 이름 난 손글씨 전문가다. ‘펜크래프트’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유씨는 2020년 처음으로 이곳 망원동에 글씨 쓰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열었다. 동백문구점은 여느 ‘문구점’과는 다르다. 향을 피워두고, 글씨에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을 틀어둔다.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신의 글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키보드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이 활자를 남기는 주된 도구가 되었지만 여전히 펜을 쥔 손의 감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유씨가 처음 손글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군대 선임 때문이었다. 흔히 말하는 ‘어른 글씨’를 쓰는 사람을 처음 만나봤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글씨에 몰두한 유씨는 2018년부터 온·오프라인에서 필체 강연을 시작했다. SNS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글씨 관련 책도 네 권이나 출판했다.
누가 그랬다. 덕질의 끝은 제작이라고. 유씨 역시 ‘내 마음에 드는 노트’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고급 노트를 제작했고 품목을 넓혀 동백문구점을 열기에 이르렀다. 온라인 마켓에서도 유씨가 ‘덕질 끝에 제작한’ 각종 노트와 잉크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 6월, 유씨는 그동안 글씨를 매개로 쌓아 올린 여러 에피소드를 묶어 〈어쩌다, 문구점 아저씨〉를 출간했다. 책에는 덕질 끝에 ‘문구점 아저씨’가 된 어느 청년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유씨는 이 책을 두고 “시즌 1을 마무리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좋아서 글씨를 배웠고, 좋아서 필사했고, 좋아서 글씨 쓰는 과정을 SNS에 올렸다. 사람들은 유씨의 채널과 계정에서 잔잔하게 잉크가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좋아하는 행동이 결국 직업이 되는 과정을 이 책에 정리했다.
유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제품의 품질을 조금 더 보강해서 해외 판로도 개척해보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참석하지 못한 해외 초청 행사도 차츰 다녀올 계획이다. 유씨의 활동과 동백문구점의 근황은 그의 인스타그램(@pencraft_)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
부채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게
부채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게
김동인 기자
부채로 허덕이는 청년들 가운데 상당수가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 빚이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 채, 돈을 아껴야 해서 대면 활동을 줄인다. 그러다 보면 점점 사회적으...
-
‘여성’ 운전자 말고 ‘그냥’ 운전자를 위해
‘여성’ 운전자 말고 ‘그냥’ 운전자를 위해
김다은 기자
“내가 클랙슨을 울려도 될까요?” ‘언니차프로젝트’ 이연지 기획자(37)에게 여성 운전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주행 경력이 오래된 운전자라도 클랙슨 앞에선 머뭇거려진다고 했...
-
‘경찰=범죄 진압=남성’ 전제를 바꾸는 보통의 이야기들
‘경찰=범죄 진압=남성’ 전제를 바꾸는 보통의 이야기들
김영화 기자
흉기를 휘두르는데 경찰이 사라지더라, 범죄 현장에서 수수방관하더라…. 흔히 ‘여경 무용론’이라 불리는 오해와 편견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상이 짜깁기된 채 퍼지기도 했...
-
그의 국제 뉴스엔 ‘한국 최초’가 붙었다
그의 국제 뉴스엔 ‘한국 최초’가 붙었다
김은지 기자
2022년 한국 시민에게 국제 뉴스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당장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 시진핑 3연임이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금리...
-
자녀의 스마트폰을 빼앗을 수 없다면, 원칙을 두세요
자녀의 스마트폰을 빼앗을 수 없다면, 원칙을 두세요
이상원 기자
경찰인재개발원 서민수 교수요원(50)은 “10여 년 전 아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세게 방황했다”라고 말했다. 일에 치여 자녀에게 소홀했던 탓이 아닌지 돌아봤다. 수사가 아니라 행정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