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은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190쪽짜리 소책자가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각 국회의원실에 한 권씩 배달되었다. 8월28일 이재명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80일간 활동을 마무리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내놓은 보고서였다.

2022년 거푸 패배했던 대선과 지방선거를 평가하고 중장기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우상호 비대위가 꾸린 ‘새로고침위원회’가 주도했다. 이관후 전 국무총리 비서관(간사),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 이원재 랩2050 대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등 외부 인사가 중심이 되어 참여했다.

보고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마케팅(선거)에서 두 축인 시장조사(유권자)와 업체 점검(정당)을 모두 짚었다. 전국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웹조사로 ‘변화된 유권자 지형’을 살폈고, 수도권·충청·호남·PK(부산·울산·경남) 만 20~55세 남녀 102명을 열두 그룹으로 나눠 민주당에 대한 표적집단심층면접(FGI)을 진행했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실패를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한발 더 뒤로 가 큰 그림에서 조망했다. 전술보다는 전략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유권자 그룹을 재정의함으로써 기존 조사와 분석으로 잡히지 않았던, 그래서 놓친 부분을 찾아 다녔다. 목표는 명징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선거 승리를 위해 존재하는 정당의 다음 스텝 제시다.

8월25일 새로고침위원회는 관련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 발표했다. △전통적 진보·보수 구도 붕괴, 새 지지층 확장 필요 △민주화 기여했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확장성 한계 △평등·평화에 더해 신성장과 친환경, 복지의 대혁신 필요 △국민의힘보다 더 폐쇄적이고 낡은 이미지 확인 등이다. “20년 동안 40%에 가까운 핵심 지지층을 형성해냈지만, 그러한 성공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지지층의 확장성을 저해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어서 패배를 가져왔다”라고 진단했다.

웹조사를 통해 민주당 지지도 제고를 위한 시급 과제를 순위로 매기기도 했다. 정치 행태에서 신뢰의 회복(21.9%), 세대교체(16.4%), 팬덤 정치와의 결별(14.9%), 미래지향적 정책의 구현(13.6%), 민생정책 전면화(11%), 당원 중심성 회복(5.6%), 윤석열 정부 견제(4.3%), 여당과의 협치 강화(4.3%), 진보 성향 정당·세력과의 연대 강화(1.3%) 순이다.

새로고침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했던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은 이러한 데이터를 어떻게 읽었을까. 10월5일 국회에서 만나 독해법을 물었다. 그는 이번 보고서가 민주당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민주당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유권자 지형의 변화를 읽어냄으로써) 나는 진보주의자이기에 그에 적합한 진보적 어젠다가 뭔지 진보적 연구 방식을 찾고, 국민의힘에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보고 보수적 해법으로 묶을 생각을 할 거다. 경쟁이다.” 지리멸렬한 싸움보다는, 제대로 겨뤄보자는 얘기다.

어떻게 기획하게 된 보고서인가.

비대위원장이 되고, 초·재선 의원들에게 두려워 말고 대선과 지방선거 평가를 하라고 했다. ‘문자 들어오면 어떠냐, 하고 싶은 평가 하라’고 했다. 대신 마지막 수렴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좌표에 관한 것으로 내가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걸 왜 내세웠냐’ ‘누구를 공천했냐’ 하는 전술 평가는 현역 정치인들이 하게 하고, 새로고침위원회 위원들에게는 두 가지를 부탁했다. 유권자 지형 분석을 해달라, 우리 당에 씌워진 나쁜 이미지가 뭔지 살펴달라. 후자는 서울시당·중앙당·민주연구원에서도 했지만, 이러한 분석이 유권자 지형과 연결되었을 때 선거 전략이 세워질 수 있다.

유권자 지형 분석이 왜 중요한가.

대선을 30여 일 앞두고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나에게는 항상 시간을 안 주고, 하다가 안 되면 부르더라(웃음). 각종 여론조사를 보고받는데, 안 잡히는 유권자가 너무 많았다. 100일 전에만 맡았어도 이런 분석도 하면서 5%, 6%씩 (상대 지지율을) 빼먹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비대위원장 맡고 당의 돈을 써서 했다. 전통적 민주당 자문 그룹보다는 젊은 학자 그룹에 맡겼다.

보고서를 받아보고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정책 어젠다(성별 임금격차 해소, 재산세율 인하, 핵무기 보유, 검찰개혁, 난민 수용, 기본소득 등 34가지)에 대한 선호로 유권자 지형을 6가지로 나눴다. 대선 때 호남의 20~30대가 왜 다른 반응을 보였는지, 지방선거 때 왜 광주에서 투표율이 떨어졌는지 보이더라. 물론 지금껏 일반적 정치 분석은 있었다. 기득권 정당이 오래 패권을 장악하니 찍으나 마나 해서 그렇다는 건데, 전에는 안 그랬나? 이 사람들은 저쪽이 미워서 (이쪽을) 찍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유권자 지형 분석으로 최근 3~4년 사이 구조화된 새 유권자 그룹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상에, 당의 전략가라는 사람이 (이걸) 처음 본 거다. 미리 봤으면 이들을 타기팅하는 선거 모델을 개발하고, 공약도 냈을 거다.

전통적 진보·보수로 볼 수 없다는 얘긴가.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진보여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진보적 지형에서 얘기하는 몇 개의 정치적 담론에 반응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상·이념적 진보인가? 더 이상 진보·보수 이분법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만든 게 이 보고서다. 그런데 정당이 다양화된 유권자 지형을 수렴할 수 없는 닫힌 구조다. 이념으로나, 정책으로나, 소통 구조에서나. 그걸 분석해야 한다. 내 결론은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책, 인재, 정당 지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월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민주당 지지도 제고 방안에서 ‘세대교체’가 앞 순위에 있다. 특히 해당 보고서가 주장하는 새로 발굴해야 할 유권자 지형(친환경·신성장 그룹)에서 586 정치인의 ‘빠른 정치 은퇴’가 1위다.

재선 2년 차부터 물러가란 소리를 들었다. 그런 입장에서 물러가라는 얘기가 그렇게 적실성 있어 보이진 않는다. 내 보호본능도 있겠지만. 86은 나이 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싫어하는 세대다. 보수 진영은 기본적으로 운동권을 싫어한다. 불온한 세력이니까. 보수는 항상 ‘쟤들은 과거 주사파 출신이라 북한에 나라 갖다 바치려고 하는 애들’이라는 사상적 의심을 한다.

지금은 아니지 않나?

아니다. 뉴라이트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당에서 성장하고 싶은데 우리(586 정치인)가 너무 단합이 잘 돼 있고 똘똘 뭉쳐서 자기들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하는 거다. 그것도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적으로 (586을 물러나라고) 터치하는 것은 바깥이고, 여기를 기득권으로 만들어서 몰아내야 자기 자리가 생기는 후배 그룹들이 볼 때 답답한 거다. ‘너무 많아, 좀 비워주지’ 이런 거다. 나는 그런 후배들한테 얘기한 적이 있다. ‘비워주면 너희가 들어올 수 있을까? 너희들은 우리를 밀어내야 돼. 말이 아닌 더 나은 가치와 어젠다를 가지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비워줘도 우리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10년 정도 젊은 전문가·스타들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런데도 세대교체에 대한 여론이 왜 높을까.

정치적 담론이다. 세대를 물러가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담론이 아니다. 이 문제에 맞서 논리적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론 진다. 이미 정치적으로 담론화돼 있는데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의미가 있나. ‘그러면 내가 물러나주자. 가장 대표적인 내가’라고 생각했다(서울 서대문갑 4선 의원인 우 전 위원장은 202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86도 다양하다. 초선도 있고. 그들 다 물러나라는 건 아닐 거고, 대체로 오래 한 86일 거다. 그러면 송영길,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정도를 대표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 중 75%가 이미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을 했다.

‘팬덤 정치와의 결별’도 민주당 지지율 제고 방안으로 수위에 꼽혔다.

지금 우리 당의 당원은 이중 구조다. 호남이라는 전통 지지 기반의 개혁 당원층과 특정 정치적 사건 때 분노해서 들어온 참여형 당원층이 있다. 이 중 일부가 해당 시기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키기 위해 팬덤 문화를 형성했다. 개인 정치인이 좋은 팬 문화를 갖는 것을 질투할 것은 없다. 나는 팬이 없어서 미치겠더구먼(웃음). 특정 정치인의 팬이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다. 정당의 리더가 특정한 팬심에 의거해 정당을 운영하면 안 된다. 전체 몇백만 당원, 70만 권리당원 중 일부 의사를 과대 반영하면 당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

‘문자 폭탄’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경쟁 관계에 있거나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보이는 공격성이 있다. 그건 지도자가 막아줘야 한다. 자기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도 몇 번 (그런) 호소를 했다. 나도 비대위원장 할 때, 양쪽의 팬심으로부터 공격이 들어왔다. 사실과 다른 얘기로 선동하며 ‘우상호가 이러려고 한다’라거나, 욕설이 들어오면 서운하더라.

‘수박’이라고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며칠 문자가 안 오다가 수박 이모티콘이 왔다. 그런데 그때도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 쓰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정당 운영에서는 적극적 의사표현 층의 의견을 존중하되, 유권자 지형에서 보면 그 팬덤은 아주 소수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팬덤에만 의존하면 당은 폐쇄적이고 편협하게 된다. 당의 리더가 지혜롭게 끌고 갈 문제지, 팬덤 자체를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 지지율 제고 방안에서 ‘윤석열 정부 견제(4.3%)’가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

조사 시점이 8월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 지금 조사하면 더 순위가 높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견제 야당’에 대한 필요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오만함이다. 오만하니까 공부를 안 하고, 문제를 일으켜도 인정 안 한다. 굉장히 위험하다. 소통하지 않고 자꾸 억압하려 한다. 그 기본적 태도의 출발은 오만이다. 오만한 권력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우상호 당시 비대위원장(가운데)이 8월25일 새로고침위원회 활동 결과 보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그래서 벌써부터 2024년 총선은 민주당이 유리할 거라고 믿는 민주당 의원도 있는 것 같다.

내년·내후년을 어떻게 아나. 반사이익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정치인이 가장 무능한 정치인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제일 모르는 사람이다. 선거를 게임으로 보는 태도다. 민심을 얻는 것은 예술이고 정성이다. 우리 당이 어떻게 변할지, 또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 사고만 치면 나는 (당선)된다’는 생각은 민주당이 가장 극복해야 할 태도다. 지난 대선 때도 윤석열 후보만 몰아치면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실제로 윤 후보는 많이 미숙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졌다. 그때도 윤석열 후보가 유능했나? 우리가 더 부족해 보였던 거다. 그걸 새로운 출발의 문제의식으로 삼지 않고, (반사이익만) 생각하는 분들은 그 지역에서 다 질 거다. 국민은 기가 막히게 우리를 잘 안다.

당도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우리 당의 효용성을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견제용으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민주당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으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훨씬 더 다수다. 지방선거 때도 견제론이 잘 먹히지 않았다. 당시 윤 대통령에 대한 견제 여론이 없지는 않았지만, (유권자들이) 우리 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대선에서 분명히 패배했는데 지방선거 앞두고 지도부나 이재명 후보, 송영길 전 대표의 모습을 보고 ‘왜 이런 식으로들 하지?’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유는 이해하지만, 우리 당에 도움이 됐을까. 책임을 안 지는 모습이었다. 출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출마 명분이 너무 약했다. 책임지는 방식으로 출마했다지만, 그러려면 어떻게 책임지는가에 대한 민생 어젠다를 더 크게 내세워야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재명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은 아주 감명 깊게 봤다. ‘기본사회’를 만든다는 구상을 30년을 내다보고 하자고 하더라. 대선 때 그렇게 말했으면, 전략으로 썼을 거다.

대선 당시 기본소득 공약은 접지 않았나.

그땐 내가 말렸다. 5년짜리 공약으로는 기본사회를 만들 수 없다. 재정이 너무 많이 든다. 첫 단계를 임기 중에 시작하겠다고만 했으면 그 공약을 쓰자고 했을 거다. 이번 대표연설에서는 우리가 30년 노력해서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상당히 동의한다. 지금은 복지가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정도라면, 이제는 기본생활 보장으로 가야 한다. 최저 삶을 보장하는 것으로는 ‘세 모녀 사건’을 못 막는다. 그래서 내가 연설 보고 찡해서, 집필한 사람을 찾았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이라기에 술 한잔 샀다.

갈등 조정 상황에 곧잘 등판했다.

갈등 조정의 핵심은 양쪽의 입장을 자세히 경청하는 거다.

남들은 안 듣나?

안 듣는다. 자기 걸 고집한다. 나도 내 생각이 있지만 남의 얘기를 들어본다. 듣다 보면 ‘이쪽은 이 정도 수준에서만 받을 수 있고, 저쪽은 저 정도 수준에서만 받을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럼 그 정도 수준에서 (타협)한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지도 않았다. 이니셔티브를 쥐고 100% 하려고 하니까 싸움이 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원내대표로서 각 당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때 국민의힘 의원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서 술 먹었는지 모른다(웃음). 그게 어떻게 압력으로만 되나. 탄핵에 이르는 길은 설득, 소통, 대의로 하는 거다. 탄핵 얘기가 나온 김에, 끝으로 이 말을 강조하고 싶다. 탄핵은 진보가 한 게 아니다. 일부 세력은 진보가 했다고 자꾸 착각한다. 탄핵은 진보와 보수가 손잡고 했는데, 그 탄핵 정신과 연대를 계속 유지하지 못했다. 안타깝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이해찬 전 대표가 20년 집권을 말했으면, 탄핵 연대를 끌고 갔어야 했다. 20년 집권론은 진정성이 있는 얘기였다. 그런데 ‘우리 편만 옳고 저쪽 편은 나쁘다’는 식으로 비쳤다. 그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게 비친 건 실책이었다. 정치가 그래서 어렵다. 우리는 이처럼 많은 실패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이 있지만, 아직은 저쪽이 잘못하고 있어서 일부 반사이익을 보고 있을 뿐이라 여기며 혁신해야 한다. 그게 이번 보고서의 역할과 분석이다. 그리고 결국 대안을 만들어내는 건 정치 지도자들 몫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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