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20일, 컬럼비아 대학 졸업생들이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P Photo

요즘 미국에선 한국으로 치면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 학생들이 대학 원서라 할 수 있는 ‘커먼앱(common application)’을 작성하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대학 순위 사건’이 터졌다. 학생들이 주된 선택 기준으로 삼아온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유에스뉴스)의 대학 순위 지표에서 컬럼비아 대학이 지난해 2위에서 올해는 18위로 급락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에스뉴스의 대학 순위 지표도 공정성 시비에 휩싸였다. 1983년 처음 시작한 이래 이 순위 집계는 미국 내 대학 서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선별 기준에 따른 논란이 있어왔다.

뉴욕시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은 ‘아이비리그’ 8개 대학 가운데 하나다. 역대 대통령 4명, 유엔사무총장 2명, 노벨상 수상자 99명을 배출했다. 이런 ‘실적’ 때문에 268년 역사의 컬럼비아 대학이 지난해 처음으로 공동 2위에 올랐을 때도 순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난 2월 이 대학 수학과 마이클 새디어스 교수가 대학 측이 유에스뉴스에 제공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정확하거나 의심스럽다”라면서 공식 이의를 제기한 뒤 상황이 180° 달라졌다. 그는 ‘부정 자료’에 따라 순위가 오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대학 측이 주장한 수강생 규모와 전임 교수의 최종 학위 취득 상황. 대학 측은 당초 유에스뉴스에 전 과목의 83%가 수강생 20명 미만이고, 전임 교수의 100% 전원이 박사학위 소지자라고 밝혔다. 그러다 제출 자료의 오류를 시인한 뒤 수강생 20명 미만 비율을 57%로, 전임 교수의 박사학위 소지자 비율을 95%로 정정했다.

대학 측은 처음엔 제출 자료에 문제가 없다고 발뺌했다. 지난 7월엔 유에스뉴스의 내년도 대학 순위 집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다 대학 측은 뒤늦게 9월9일, 제출한 자료가 “오래됐거나 산출 방식이 잘못됐다”라면서 오류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유에스뉴스는 새디어스 교수가 제기한 새 자료와 자체 자료, 미국 교육부 자료 등을 근거로 9월12일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 컬럼비아가 올해 18위로 급락한, 그 순위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올해로 24년째 몸담아온 새디어스 교수는 주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측이 외부 독립기관이나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제기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측이 이런 그릇된 지표를 얼마나 오랜 기간 제공했나? 누구의 책임인가? 총장을 비롯한 대학 지도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등등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아직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유에스뉴스의 대학 순위 집계 방식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미겔 카르도나 교육장관은 이 매체를 지목하지 않은 채 “명성을 의식한 많은 대학들이 순위를 올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순위 시스템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새디어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할 교훈은 유에스뉴스의 평가 방식이 너무 허술해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컬럼비아 대학 순위가 1년 만에 2위에서 18위로 떨어지는 판국이라면 다른 모든 순위도 불신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새디어스 컬럼비아대 교수. ⓒThe New York Times

현재 미국 대학을 평가하는 기관은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워싱턴 먼슬리〉 〈머니〉 등 여러 곳이 있다. 그중 인지도와 평판도는 이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해온 유에스뉴스가 압도적이다. 유에스뉴스는 17개 평가 항목을 백분율로 계산한 뒤 이를 취합해 대학 순위를 매긴다. 특히 수능점수가 대학 평판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한국과 달리 유에스뉴스 평가에서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 또는 ACT 점수의 대학 순위 반영률은 7%에 불과하다. 대신 입학 후 6년 내 졸업 비율이 2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다른 대학이 해당 학교를 평가하는 학부 명성이 20%, 수강생 규모와 교수진의 박사학위자 현황을 담은 교수 자원이 20%에 달한다. 학생당 재정 보조도 10% 반영한다.

대학 순위 평가하는 언론의 책임도 제기돼

유에스뉴스는 이처럼 다양한 평가 항목을 통해 최대한 공정을 기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학교 특유의 강점이 무시된 데다 대부분 평가 자료를 대학에서 자체 제공하다 보니 정확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유에스뉴스가 해당 학교에 불리할 만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동안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 그러다 보니 일부 대학이 부정한 방법으로 순위를 무리하게 끌어올리려다 뒤탈이 나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소재 템플 대학 경영대학원의 모셰 포랫 대학원장이 순위를 높이려 2014~2018년 허위 자료를 제공한 혐의로 유죄가 인정돼 지난 5월에 14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또 지난 3월에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USC)이 지난 5년간 유에스뉴스에 제공한 자료에 오류가 있었다며 올해 평가 대상에서 자진해 빠지기도 했다. 이 대학은 지난해 443개 종합대학 중 25위를 기록한 바 있다.

유에스뉴스는 17개 항목을 기준으로 삼아온 현행 평가 방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에릭 거틀러 회장은 〈워싱턴포스트〉에 “우리는 각 대학이 평가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학생들이 최선의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파문도 해당 대학의 책임이지 유에스뉴스와 상관없다는 투다. 

새디어스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유에스뉴스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유에스뉴스가 각 대학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도록 요청하는 바람에 해당 대학 당국이 순위를 올리기 위해 “실제 수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감안하지 않은 채 통계 숫자를 조작하고 의심스러운 지표에 치중하도록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교육부가 졸업률, 졸업생의 취업 후 연봉, 학생 인종 분포 등 여러 요인을 합산한 대학 종합평가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전국의 종합대학·단과대학 순위를 일목요연하게 체크할 수 있는 유에스뉴스의 대학 평가를 선호해왔다. 

대학들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스타크 군자 미국교육위원회 부회장은 〈뉴욕타임스〉에서 “대학들이 유에스뉴스의 대학 평가를 반지성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말하길 꺼린다. 자신들 대학 순위가 오르면 자랑하기 바쁘다. 대학과 유에스뉴스와의 이런 애증 관계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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