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등 IT 기업이 취업시장의 선두에 섰다. ⓒ시사IN 조남진

2021년 IT 업계의 화두는 단연 채용이었다. 개발자 채용 전쟁, 연봉 대란, 개발자 모시기 경쟁…. 언론 기사에는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 풍요로운 복리후생 등 경쟁하듯 내붙인 입사 조건들도 다수 포함됐다. 화려한 근무조건 때문일까.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처럼 대입을 준비할 때 대학교의 앞 글자를 묶어서 부르던 관행이 IT 업계에도 등장했다. 시작은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였지만, 이후 ‘당토직야(당근마켓, 토스, 직방, 야놀자)’가 추가됐다. 저마다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르거나 연봉이 높기로 소문난 기업이다.

올해 IT 업계 채용시장이 나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기업들은 IT 업계 입사를 희망하는 구직자들에게 ‘꿈의 직장’이다. 대신 그만큼 문턱이 높다. 특히 IT 기업의 개발자 채용은 여타 업계와 다소 다른 방식으로 치러진다. 대다수 기업에서 진행하는 1차 서류심사 대신 코딩 테스트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IT 기업 역시 일반적인 ‘서류전형’ 과정을 고수해왔다. 

최근엔 이런 과정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 토스 NEXT 개발자 채용’이다. 모바일 금융 애플리케이션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2020년 7월 개발자들의 개발 역량만을 우선시해 채용하겠다며 서류 평가 절차를 없앴다. 대신 모든 지원자에게 코딩 테스트를 치르게 했다.

코딩 테스트는 지원자가 어느 정도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지 개발 역량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이전에는 현장에서 이뤄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온라인에서 주로 수행된다. 코딩 테스트를 치를 수 있는 링크가 발송되면, 지원자들이 여기 접속해 제한 시간 내에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작성한 코드를 제출하면 검수 기능이 실행되어 지원자의 코드가 적절한 값을 반환하는지 체크하고 점수가 자동으로 매겨진다.

IT 기업들은 변화한 채용 문화에 대해 ‘우리는 학력도, 이력도 일절 보지 않고 오로지 실력만을 본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취지 아래 지원자들은 이력서 대신 포트폴리오(지금까지 수행해온 프로젝트의 목록과 내용, 신규 입사자도 제출해야 한다)를 제출하고, 서류 심사 대신 코딩 테스트를 치른다. 신입 개발자에게 ‘실력이 요구된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과거 우스갯소리로 통용되었던 ‘경력 있는 신입’도 어불성설이었는데, 프로젝트 수행 경력이 하나도 없는 신입 개발자가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출신 학교 등을 보지 않는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아직 회사에 취업하지 못한 신입 개발자들은 어디에서 ‘실력’을 쌓아야 한단 말인가?

대학입시 학원 닮아가는 부트캠프

그래서 이들이 향하는 곳은 ‘부트캠프’다. 부트캠프는 천차만별이지만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사이에 개발 교육을 제공하는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이다. 이 기간 교육생들은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개발을 학습하고 팀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프로젝트 과정에서는 교육생들끼리 협업해서 하나의 웹/앱 서비스를 시범 개발한다. 기본적으로 부트캠프는 기초적인 코딩 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채용 과정에 활용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준다. 팀으로 진행하는 협업 프로젝트가 곧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 가운데에는 국비 지원이 가능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프로그램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1000만원 규모의 등록비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땐 부트캠프가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지만, 몇 년 전부터 부트캠프는 흡사 취업 전문학원같이 변모하고 있다. 개발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네카라쿠배’ 등 이름난 IT 기업 취업을 겨냥한 전문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대학입시 전문학원과 유사하다. 기업에 따른 코딩 테스트, 면접 기출문제를 풀이해줄 뿐만 아니라 취업 성공 요소를 분석해 알려주고, 나아가 면접에서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을 가르쳐준다. 아예 프로그램의 이름을 ‘네카라쿠배 스쿨’이라고 짓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업체가 부트캠프를 수료하고 나면 무조건 대형 IT 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한다. 저마다 ‘네카라쿠배’ 합격자와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고, 해당 기업의 재직자를 멘토로 내세워 유료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8월22일 교육부 관계자가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카라쿠배’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업체의 FAQ에는 “본 과정은 초기부터 네카라쿠배 취직에 맞춰 서류 및 면접을 준비”하며, “개발 강의와 더불어 헤드헌터 출신 커리어 매니저를 매칭”해준다고 밝히고 있다. 학교를 줄 세웠던 학벌주의만큼이나 편협한 계급주의로 회사를 줄 세우며, 개발 역량 강화가 아니라 사회적 성공의 사다리로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몇 년 전이랑 지금은 취준(취업 준비)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어요.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고요. 구직자 입장에선 실력을 쌓았더라도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부트캠프 수료라도 해야 하나 싶은 것 같아요. 비전공자든 전공자든 일단 과정을 수료하면 ‘네카라쿠배’에 입사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부트캠프들이 많이 생겨나서…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걸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진짜 실속 있는 스터디를 한다기보다 포트폴리오로 보여주기 좋은 프로젝트만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여성, 백엔드 개발자 5년 차).”

구직자들은 저마다 불안감 때문에 부트캠프에 등록한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학습한다 하더라도, 일단 부트캠프에 들어가 취업 관련 팁을 얻고자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상대적으로 학습 시간이 더 오래 투여되는 전문지식 습득 등은 되레 후순위로 밀린다. 실제로 이 과정을 수료하여 원하는 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모두 그럴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8월22일 윤석열 정부는 부트캠프를 대학 교육과정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정작 부트캠프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취업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 실효성 검증은 부재한 상태다. 초·중등에서 정보 교육도 더 확대될 전망이라고 한다. 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프로그래밍을 학습하는 교육은 필요하지만, 이 교육이 어떤 방향성과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부트캠프는 매우 낯익은 방향으로 먼저 발걸음을 떼고 있다. ‘서연고’ 대신 ‘네카라쿠배’라고 이름만 바꿔 건 채. 

기자명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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