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개막한 2009년 12월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REUTERS

‘버드-헤이글(Byrd-Hagel) 결의안’이라는 게 있다. 1997년 교토의정서 협상을 앞두고 미국 상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도국이 미국과 동등한 법적 의무를 수락하지 않는 한 미국 정부는 기후협약의 어떤 의무도 지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정내권 전 기후변화대사는 저서 〈기후담판〉에서 “1991년 이래 기후변화 협상이란 한마디로 전 세계가 미국 상원의 ‘버드-헤이글 결의안’ 하나와 싸운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력한 기후체제를 염원했던 국제사회가 결국 각국의 ‘자발적 감축’으로 타협하게 된 데에는 이처럼 미국의 책임이 컸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총회는 구속력 있는 체제를 구축할 마지막 기회였다. 2004년 러시아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한 것을 계기로 선진국에 대한 의무감축체제 출범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위기를 ‘우리 시대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도 기후협상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높은 기대감 속에 코펜하겐 기후변화총회에는 참가자 5만명이 운집했다.

코펜하겐에서는 미국과 중국, 양대 강국이 세게 맞붙었다. 당시 중국은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45% 감축 목표치를 발표하는 등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의 목표치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나서면서 협상이 삐그덕거렸다. 중국은 개도국의 감축 목표치가 자발적인 만큼 이는 주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당시 미국 의회를 주도하는 공화당은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승인해주지 않고 있었다. 감축 목표치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미국이 오히려 중국에 검증 공세를 취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내권 대사는 당시 코펜하겐에서 중국의 기후변화 장관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검증을 거부하기보다는 조건부로 수용 의사를 밝히면 어떨까요? 미국이 IPCC의 제시대로 1990년 대비 25% 감축 목표치를 수락하면 중국도 검증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입니다.” 중국 장관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며 좋아했지만, 실제 제안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중국공산당이 ‘수용 불가’ 원칙을 못 박았기 때문이다. 결국 코펜하겐 총회는 중국에 대한 비난으로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정내권 대사는 “기후협상 역사에서 코펜하겐의 이 장면이 두고두고 가장 아쉽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의 감축 목표치 수락을 지렛대로 삼았다면 이후 협상의 흐름이 변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대해서는 법적 구속력 있는 감축을, 개도국에 대해서는 국제적 검증을 받는 기후체제 구축으로 협상이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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