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강간·살해를 저지른 범인. 전자발찌는 범행을 막지 못했다. ⓒ연합뉴스

범인은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강도상해, 특수강도강간과 같은 흉악범죄를 다섯 번이나 저질렀다. 징역형을 네 번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성인이 되고 주로 교도소에 있었다. 마지막 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서 전자발찌가 발목에 부착됐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감옥으로 돌아가려 했다. 발찌를 찬 채로 강간 범행을 저질렀다. 집으로 돌아와 체포되기를 기다렸으나 경찰은 오지 않았다. 1차 범죄 13일 후 다시 집 근처에서 2차 범죄를 저질렀다. 강간을 시도하다 격렬히 저항하는 피해자를 끔찍하게 살해했다. 피해자는 네 살, 다섯 살 두 아이의 엄마였다.

2차 범죄 피해자 유족들을 대리하여 공익 사건으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막연히 범죄 피해자라는 이유로 국가의 책임을 물은 건 아니었다.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대상자의 위치와 이동경로, 상태를 24시간 파악해 재범을 억제할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감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전자발찌를 찬 범인이 연달아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두 번째 범죄는 막을 수 있었으나, 시스템은 고장 나 있었다.

1차 범행 수사하던 경찰, 위치정보 조회 안 해

재판에서 겹겹이 싸인 국가의 잘못을 밝혔다. 교도소 석방 통보문부터 틀렸다. 징역 6개월 형을 받은 절도범으로 기재했다. 경찰서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단순 자료보관 대상자로 분류됐다. 보호관찰도 소홀했다. 관내 대상자 1165명 중 9위에 해당할 정도로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평가하고도, 소홀했다.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을 저질러 교도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면담에서 듣고도, 소홀했다.

전자발찌 시행 지침에 따르면 월 3회 이상 대면 접촉을 해야 한다. 지켜지지 않았다. 7월16일 업무를 인계받은 보호관찰관은 2차 범행이 일어난 8월20일까지 한 번도 대상자를 찾아가지 않았다. 월 1회 이상은 위치를 확인해 불시 출장하도록 되어 있지만,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매일 입력하도록 되어 있는 일일 감독 소견 지침도 무시됐다. 5개월 치가 하루에 입력되기도 했다. 8월1일부터 17일까지의 소견이 17일 하루에 입력됐다. 허위 입력되던 그 사이 8월7일 1차 범행이 발생했다.

1차 범행을 수사하던 경찰은 위치정보 조회를 하지 않았다. 범행 장소에 전자발찌 부착자가 있었는지 조회하면 통상 2시간 이내에 통보받는다. 1차 범행 시 조회를 했더라면, 2차 범죄는 막을 수 있었다. 2차 범행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한 후에야 위치정보를 조회했다. 그제야 1차 범행 장소에도 범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자발찌 위치정보 활용에 대한 수사 지침도 없었다. 관련 교육도 없었다.

그러나 제1심 법원에 이어 서울고등법원도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수사기관이나 보호관찰소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국가배상책임을 져야 할 정도로 객관적 정당성이 결여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상고를 했다. 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하는지 상세한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국내외 판례를 분석하는 보충 서면도 냈다.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날은 2017년 12월14일이다. 2012년 사건 당시 네 살이던 피해자의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숙고한 만큼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기자명 박성철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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