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보수의 텃밭 경북 구미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는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지사 후보. ⓒ시사IN 신선영

노점에 앉아 상추를 다듬던 백발노인이 명함을 건네받고는 눈을 빤히 쳐다봤다. 명함에는 짙은 파란색 글자로 ‘경북, 새로운 시작 그래! 임미애’와 숫자 ‘1’이 적혀 있다. 마주 앉은 임미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경북도지사 후보가 이내 마스크를 내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제가 이번에 경북도지사에 출마했어요. 사전투표 안 하셨으면 저 좀 꼭 뽑아주세요. 여성이 27년 만에 처음 나왔는데 너무 안 나오면 기죽지 않겠어요?”

노인은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뽑겠다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받자마자 길에 버리거나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보단 나은 반응이었다. 5월31일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찾은 경북 구미 중앙시장에서 임미애 후보는 상가마다 명함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임미애 후보는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자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인구수 6위(262만명)에 이르는 지역의 장을 뽑는 선거인데도 후보 주변에 취재진이 몰리는 일이 없다. ‘접전’ ‘경합’ 지역이 쏟아지면서, 결과가 불 보듯 뻔한 지역은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임미애 캠프 관계자들은 경북을 ‘민주당의 무덤’ 혹은 ‘빨간 점퍼 입는 순간 당선되는 동네’라고 표현했다. 상대 후보는 국민의힘 소속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다. “5월에 출마 선언을 했을 때 기사 제목이 ‘해보나 마나 한 선거’ ‘싱거운 게임’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항의 전화를 했어요. 판단은 유권자가 하는 거지 왜 언론이 선거를 규정지어 버리느냐고.” 임미애 후보는 이기는 선거만이 선거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그의 정치 인생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앙 정치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경북에선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2006년 의성군의회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군의원에 당선된 후 재선에 성공, 2018년에 경북도의원을 지냈다. 이력마다 최초를 달고 다녔다. ‘경북지역 민주당 유일 기초단체 재선 의원’ ‘경북지역 첫 여성 민주당 도의원’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84학번인 임 후보는 서울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1992년 남편 고향인 의성에 자리 잡았다. 함께 운동했던 ‘86그룹’ 우상호 의원, 이인영 전 장관과 다른 길을 걸었다. 의성에서 사과부터 마늘, 고추 등 밭을 갈아 농사짓는 동안 중앙 정치와는 거리를 뒀다. 아이 둘을 키우던 중, 학교 급식에 지역 농산물이 쓰이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보고자 군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2006년은 지방선거에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 해였다.

“처음 선거에 나갔을 땐 명함 드리자마자 ‘민주당? 여자가 재수 없게’라는 말도 들었어요. 어떤 분은 보란 듯이 명함을 찢기도 해요. 그런 순간이 있을 때마다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편이에요. ‘저는 선생님 손주가 잘 커서 저처럼 정치를 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런 대접 안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되게 당황해요.” 이렇게 직접 ‘부딪친’ 어르신 중에는 드물게 그의 지지자가 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북 의성은 전국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낮기로 손에 꼽히는 지역이다. 그는 지난 5월 지방자치 직선제 27년 이후 경상북도 첫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가 되었다.

경북의 민주당 정치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당선보다는 득표율이다. 위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지사 후보. ⓒ시사IN 신선영

“당은 게을렀고 지역 정치는 개인에 맡겨”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수도 있다. 원래는 의성군수에 출마할 마음이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이후 ‘험지’인 지사직에 출마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4월30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그를 경북도지사 후보로 전략 공천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하고 지역 당원들 사이에선 좌절감과 패배감이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대선 한번 졌다고 모든 지지자와 당원이 숨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지방선거를 위해 경북 민주당은 4년을 준비했거든요.” 누군가는 움츠러든 지지자들을 위로하고, 선거 출마를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당’과 ‘경북 민주당’은 조금 다르다. 적어도 기회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경북 민주당은 기초의회 284석 중 50석, 광역의회 60석 중 9석만을 얻었다. 경북을 지역구로 당선된 민주당 국회의원은 역대 한 명도 없다. ‘험지’라는 의미는 정치적 자원이 희소하다는 뜻 이상이다. “경북 민주당은 사람이 없어서 정말 열심히 사람을 찾아요. 어렵게 청년 정치인을 키워두면 저쪽(국민의힘)에서 싹 데려가요. 그런데 붙잡을 수도 없어요. 기회가 없잖아요.” 국회의원 정책 보좌관 자리 한번 경험하기가 경북 민주당에서는 쉽지 않다고 했다. “아무리 보수 동네라 해도 새로운 인물에 대한 요구는 늘 있어요. 당이 적절하게 사람을 준비하고 선거 때마다 출전시켜주면 좋은데, 당은 늘 게을렀고 지역 정치는 개인의 의지에 내맡겨져요.”

촉박한 일정 탓에 선거운동원 구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국토 19%를 차지하는 경상북도는 임 후보 지역구인 의성군보다 6배 넓다. 부랴부랴 구미에 선거사무소를 차리고 5월9일 출마 선언을 했다. “경북 지역 소득은 전국 꼴찌 수준까지 떨어지는 등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저는 30년 동안 이런 경북 도정과 맞서왔다.” 20여 일간 23개 시군을 돌아다니며 기업과 청년인구 유출, 전국 상위권인 치료가능사망률(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조기 사망) 등 ‘지역 소멸’의 위기 징후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철우 후보를 심판해달라’ 목소리를 높였다. 유세차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바깥에서 대구·경북은 견고한 빨간 섬처럼 보인다. ‘어차피 지는 게임에 왜 나왔나’ 하는 질문도 자주 받았다. 임미애 후보의 1차 목표는 당선이 아니었다. 실의에 빠진 민주당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움직여 경북 지역 기초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당선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제가 경북도의회에 가보니 견제와 토론이 실종됐어요. 도지사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대해 배짱 있게 반대하는 지역 의원들이 없어요. 공천이 도지사 영향 아래 있으니까요.” 특히 임 후보는 대구·경북 행정 통합과 대구 공항 이전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게 된 현실이 바로 견제받지 않는 지방 권력구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민선 7기까지 경북 구미 선산읍·무을면·옥성면은 한 번도 민주당 출신이 출마하지 않았다. 경쟁자가 없어서 보수당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됐다는 의미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양당 대결 구도가 심해지면서 이 같은 무투표 당선자가 전국적으로 508명에 이르렀다. 광역의원의 경우 90% 이상이 영남과 호남에서 쏟아졌다. 비단 올해만의 현상은 아니다. 김현권 민주당 구미을 지역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실질적 경쟁이 없다는 이야기다. 영남은 국민의힘, 호남은 민주당이 그대로 되는 거다. 선거나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는 현상이 지방자치 27년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다.” 임미애 후보의 임무 중 하나는 그런 선거구에 후보 출마를 독려하고 당원을 다시 모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험난한 여정에 변화가 생긴 건 2주쯤 지났을 때였다. 간혹 파란색 꽃다발과 편지를 들고 유세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생겼다. 경북 지역의 2030 여성 지지자들이었다. 5월31일 구미 인동네거리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장을 찾은 한 30대 여성은 말했다. “여기 살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정치적 성향을 숨기게 된다. 그런데 강단 있게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여성 정치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힘을 받았다.” 그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임미애 후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내내 담담하던 임미애 후보도 여성 지지자들과 포옹을 나눌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고맙고 미안해서요. 정치인들은 서로 비난하고 평가하기 바쁜데 ‘민주당 할 수 있어’ ‘임미애 때문에 투표장 나갈 거야’ 하더라고요.” 선거운동 기간에 5700여 명이 소액 후원을 보냈다.

경북 의성의 한 농장에서 소를 돌보는 임미애 경북도지사 후보. 그는 직접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다.ⓒ임미애 후보 캠프 제공

“10년에 10%포인트씩 오른 셈”

경북의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주된 관심사는 당선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우상향하는 득표율이다. 그것이 곧 변화의 지표라고 보기 때문이다. 임 후보 남편인 김현권 위원장은 20대 국회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18대, 19대, 21대 총선 모두 경북 지역구로 출마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경북에서 민주당의 벽이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선거운동 한 번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라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2004년에 제가 받은 득표율이 18.7%, 2012년엔 27.3%였다. 2020년 때 득표율이 35.7%를 기록했다. 10년에 10%포인트씩 오른 셈이다. 35.7%라는 숫자가 제 인생 20년을 갈아넣은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임미애 후보는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22.04%를 얻었다. 이철우 후보가 77.95%로 재선에 성공했다. 본투표 하루 전날 “이재명 후보가 대선 당시 기록한 득표율(23.7%)만큼 얻으면 좋겠다”라던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여정이었다. 5월31일 마지막 유세에서 임미애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우리 경북 민주당은 조금씩,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제 꿈은 이 경북에서 민주당이 51% 사랑받는 정당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끝이 아니니 다시 시작합시다.”

자신의 당선보다 기대했던 지방의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국민의힘 일당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의미 있는 진전도 보였다. 예천 다선거구에서 민주당 기초의회 의원이 처음 나왔다.

5월31일 저녁 9시, 마지막 유세를 마치고 선거운동원들이 하나둘 짐을 쌌다. 임미애 후보는 “그때 화내서 미안하다”라거나 “우리 선거를 통해 같이 성장하자”라는 말을 남겼다. 선거가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임 후보는 “우사를 살피러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2004년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송아지 세 마리를 샀다. 지금은 한 해 송아지 37마리를 직접 받는 축산업자가 되었다. 선거운동 하느라 집을 비운 한 달간 송아지가 새로 태어났다. “경북에서 ‘민주당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농사를 짓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거가 끝나면 다음 날 밭에 가서 일해야 해서 결과에 붙잡혀있을 시간이 없어요.” 밤 10시, 선거사무소 문을 잠그고 그는 의성으로 향했다. ‘어차피 지는 선거’에 뛰어든 임미애 후보의 여정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기자명 구미·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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