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2일 박완주 의원의 성 비위 의혹에 대해 사과하는 박지현(오른쪽)·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국회사진취재단

지난 4월28일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열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비공개 화상회의. 한 동료 의원이 카메라를 켜지 않자, 이를 본 최강욱 의원이 “숨어서 무엇을 하냐”라며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자리엔 의원뿐 아니라 당직자와 보좌진 등 10여 명이 있었다.

그런데 최강욱 의원실은 5월2일 해당 발언이 ‘짤짤이’였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심각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가벼운 농담에 불과한 발언이었는데 취지가 왜곡되어 보도됐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회의 내용을 유출한 제보자를 색출해야 한다거나 ‘검찰개혁’ 추진 동력을 잃게 했다는 ‘2차 가해’가 이어졌다.

5월12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정책위의장을 지낸 박완주 의원(3선·충남 천안시을)을 성 비위 의혹으로 제명했다. 피해자가 지난 4월 말 당내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 신고하자, 박 의원이 피해자를 직권 면직시키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 의원은 5월15일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당과 저에게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하게 제명의 길을 선택했다. 어떤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피해자 측은 박완주 의원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연이은 성 비위 의혹에 민주당 지도부는 ‘철저한 진상 파악’과 ‘최고 수준의 징계’를 예고했다. 과거와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 보좌진 A씨의 생각은 다르다. “만장일치로 제명했다면 자기 몫의 반성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내 손으로 동료 의원을 제명했다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고, 향후 의정활동을 할 때 보좌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이 들 수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일제히 제거된 사과만 또다시 남았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 올해로 11년 차인 A씨는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2020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의 대응에 비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다시 민주당에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물론 성폭력 사건은 정당을 가리지 않는다. 5월16일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가 지역 시도위원장과 당직자로부터 당한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했다.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은 검찰 재직 당시 성추행 전력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세 명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었던 조직이다. 당 지도부가 선거 때마다 ‘강도 높은 쇄신’을 언급했음에도 왜 바뀌지 않을까. 〈시사IN〉은 다양한 민주당 보좌진 및 당 관계자들을 접촉해 권력형 성폭력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무엇이라 진단하는지 물었다. 폐쇄성과 위계가 강한 국회에서 보좌진은 내부 고발이 어려운 신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고통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되물어야 한다고 말했다(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후 A부터 F까지 민주당 보좌관·비서관 등 직함을 따로 표기하지 않고 보좌진으로 통일했다).

A씨가 보기에 민주당에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당 사건이 가져온 혼란만큼이나 정당 차원에서 복기해야 할 질문이 많았다. 정치인과 보좌진 사이의 ‘위력’을 어떻게 규정할 건지, 동료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2차 가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건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어떻게 도울 건지 등 하나하나 쉽지 않은 질문이었고 때로 치열한 토론도 필요했다.

실제로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 윤리감찰단 등 당내 신고센터가 설치되고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성평등 교육이 의무화되었지만, ‘쇄신’의 방향은 딱 거기까지였다. A씨의 말이다. “(2021년) 4·7 보궐선거 이후에 모두가 사과했다. 모두가 사과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는 것 같다. 자기 성찰이 제거된 딱 n분의 1만큼의 사과였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사건 이후로도 당내에는 성폭력 사건과 2차 가해가 반복되었다. 양향자 의원은 지역사무소 보좌관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언론에 ‘성폭행이 없었다’고 인터뷰를 한 데 이어, 피해자를 회유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7월12일 제명 결정이 나자 이튿날 탈당계를 제출했다.

최근 김원이 의원실에서도 지역 보좌관의 성폭행에 대한 2차 가해 논란이 불거졌다. 성폭력 피해자는 의원실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박완주 의원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사회는 지도층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단호해야 한다”라고 썼다.

보좌진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원인으로 국회가 가진 폐쇄성을 우선적으로 지목했다. 임면 전권을 쥔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위계적이고 폐쇄적이다. 보좌진은 언제든 잘릴 수 있는 불안정 노동자인 셈이다. 2년 차 보좌진 B씨는 “민주당이 진심으로 반성했다면 보좌진을 대하는 태도부터 돌아봤어야 했다. 갑질하는 의원, 소리 지르는 의원, 집안일과 가족 행사에 보좌진을 당연하게 동원하는 의원들이 여전히 많다”라고 지적했다. 성폭력뿐만 아니라 갑질·폭언 등 다양한 폭력에 취약한 고위험군 노동환경이라는 지적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훨씬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방(의원실)으로 옮기려 해도 평판 조회가 심한 동네라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발설하기가 어렵다. 옆방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연루됐다는 걸 알면 의원님이 나를 자를 수 있다는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고소·고발은 본인의 커리어를 다 걸어야 하는 일이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그림자 역할’을 요구받던 보좌진들이 존재를 드러낸 건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논란 이후였다. 문제 발언이 보도된 이후 일부 보좌진은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았다. 제보자로 ‘찍혀서’다. 회의 내용을 왜 유출했느냐, 선거를 앞두고 신중했어야 한다는 공격도 이어졌다.

‘ㄸ’인지 ‘ㅉ’인지 민망한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법사위원 누구도 보좌진에 대한 2차 가해를 제지하지 않았다. 급기야 최강욱 의원이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을 비판하는 한 트위터 게시물을 공유하자, 5월4일 민주당 여성 보좌관 일동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냈다. ‘자신의 비위를 무마하기 위해 제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최강욱 의원님이 말씀하시던 정의입니까?’

5년 차 보좌진 C씨는 최강욱 의원의 ‘짤짤이’ 해명이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했다. “그런 말 자체가 본인의 위력을 나타낸 것이다. 회의 자리에 있던 보좌진들이 말(문제 제기)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장난이라고 덮은 게 아닌가.” 이 과정을 지켜보던 여성 보좌진 D씨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10년 이상 헌신하던 조직으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검수완박 필요성에 대해서는 상임위 구분 없이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냈던 의원들이 동료 의원의 성 비위 사건과 소속 보좌진들이 받는 공격에 대해선 이토록 나서지 않는가?”

성 비위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3선의 박완주 의원.ⓒ국회사진취재단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언행에 조심을 기하려는 의원들, 성차별적 발언에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제지하는 보좌진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이원욱 의원은 5월5일 최강욱 의원을 향해 “스스로 사과의 격을 무너뜨리고 있다”라고 비판했고, 권인숙·김상희·이탄희 의원 등은 박완주 의원 성추행 사건 이후 피해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당을 뒤흔든 ‘2차 가해’

그러나 민주당 다수 의원들에게 젠더 문제는 여전히 ‘위험부담’을 가진 주제다. 10년 차 보좌진 E씨는 민주당이 당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 이후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이 “안희정·박원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성격 규정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봤다. “안희정 사건은 불륜 내지는 치정 문제로, 박원순 사건은 매우 작은 사안이 침소봉대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스피커를 가지고 있어, 대선 내내 제대로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털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정치권의 온정주의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당내 성폭력 신고·상담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민주당을 뒤흔들었던 것은 성폭력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의 ‘2차 가해’인 경우가 많았다. 정치권 특성상 가해자가 사퇴하고 징계받아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정당 안팎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다른 어느 공간보다 피해자를 탓하는 음모론과 2차 가해를 끊어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의미다. A씨는 “민주당이 1차 가해 처리에서는 늘 깔끔했다. 하지만 2차 가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처리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대선 TV 토론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당시 2차 가해를 했던 이들이 민주당 선거캠프에서 일하고 있다’고 따져 묻기도 했다.

문제는 무엇이 2차 가해인지 합의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A씨는 “이러한 모호함 뒤에 숨지 않도록 당 윤리심판원 등에서 해당 행위가 2차 가해라는 경고 공문을 발송하고, 직권조사를 하는 등 실질적인 사건처리가 되도록 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B씨는 “당에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강성 지지자들의 2차 가해에 대해 ‘이건 문제다’ ‘잘못됐다’ 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진전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중심을 잡고 사안을 대하는 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F씨는 2018년 처음으로 국회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 상급 보좌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다. ‘왜 성 비위 문제가 반복되나’라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피해자들이 다니던 직장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당의 성폭력 문제가 잘 해결된 선례가 있어야 성 비위 문제가 근절될 수 있다.”

5월9일 최강욱 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그 역시 ‘미투’ 공론화 이후 당내에서 무수한 공격과 2차 가해에 시달렸다.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징계를 요구하는 과정 모두 개인의 몫이었다. 국회사무처는 2020년 1월 가해자에 대해 감봉 3개월 처분을 내렸다. 가해자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는 중이다. “이것이 비단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미투가 이뤄졌지만, 피해자의 아픔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되고 언론의 클릭 수 경쟁에 소비되었다. ‘어떤 행위가 있었느냐’ ‘어느 당에서 벌인 일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피해자들이 얼마나 일상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회 ‘1호 미투’를 후회하지 않지만 또 다른 동료에게 이 지난한 과정을 권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F씨는 말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성 비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성 보좌 인력들의 취업이 어려워지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비슷한 생각이 D씨에게도 있었다. “피해 입은 이들은 힘없고 나약한 여성 보좌진이 아니다. 국회 업무를 전담하며 의원실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이고 민주당이 키운 인재다. 민주당이 공천한 국회의원과 같이 성장하고 있는 동료다.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성찰을 하기 바란다.”

한편 민주당 내 성평등과 성폭력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에 대해 날 선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5월18일 박 위원장은 “사건 처리를 미루면 미룰수록 피해자의 고통은 커지고 민주당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질 것이다. 이제 악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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