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이 담긴 문서가 유출됐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라는 제목으로 ‘대외 주의’ 표시된 문서는 총 1170쪽으로, 작성 날짜는 2022년 4월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가 작성했다. 새 정부의 5년 밑그림인 국정과제 이행계획이 통째로 유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인수위는 3월18일 공식 출범 이후 50일간 국정과제를 준비했다. 국정과제 110개와 실천 과제 521개를 만들어 5월3일 발표했다. 이번에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110개 국정과제에 대한 개요 및 세부 내용, 연차별 이행계획과 같은 시간표,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입법 전략 등이 담겨 있다. 경제정책의 큰 틀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각종 공약의 실현 방안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가 최종본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의 얼개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사IN〉 취재 결과, 일부 정부 부처는 이미 이행계획서 내용대로 중장기 로드맵을 그리거나 실무진을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통해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와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짚어봤다.

지난 3월 ‘제25차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 시위를 진행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 ⓒ시사IN 신선영

①성평등·반(反)성폭력: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성평등’은 없었다. 〈시사IN〉이 입수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을 제외하면 성평등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여성가족부의 정책 총괄·조정기능을 강화하고 민·관이 협력해 성평등 문화를 정착하겠다고 내세웠다.

이번에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 눈에 띄는 건 강력한 처벌이다. 지난 1월6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페이스북에 ‘성범죄 처벌 강화·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한 줄 공약을 올렸다. 한 줄 공약이 국정과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성범죄’ 처벌 강화는 ‘흉악범죄’ 처벌 강화로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층간소음 흉기 난동, 스토킹 피해자 살인 등을 모두 흉악범죄로 규정하고, ‘흉악범죄로부터 국민을 확실하게 보호’하는 방안 중 하나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감독제’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 ‘최첨단 전자발찌 시스템’을 개발해, 7겹이던 강판 스트랩(끈) 내장재를 15겹으로 강화한다는 식이다(〈사진 1〉 참조).

국민의힘은 대선 기간에도 ‘젠더 폭력’ 대신 ‘범죄피해자 보호’라는 용어를 썼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여성본부 고문을 맡았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도적인 교육, 양성평등 의식만 강조해서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다(〈시사IN〉 제754호 ‘[이수정 인터뷰] 내가 국민의힘에 합류한 이유는…’ 기사 참조).”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중형 선고와 함께 ‘보호수용 조건부 가석방제(조건부 가석방제)’도 추진한다. 조건부 가석방제는 범죄자를 가석방할 때 바로 사회에 복귀시키지 않고 일정 기간 보호수용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나 국회가 보호수용 제도를 제정하려고 할 때마다 이중 처벌과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며 제동을 걸어왔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시범 운영한 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조건부 가석방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문건에 나와 있다. ‘보호관찰법’ 제32조를 근거로 가석방 대상자에게 거주 장소 제한 등 특별준수사항을 부과하고, 별도의 시설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시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무고죄 강화도 검토되었다.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하자, 무고죄 역고소가 남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무고죄 강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2023년 무고죄 법정형을 상향하는 법률 개정을 검토한다. 성범죄 관련 무고는 특수성을 고려해 특별조항 신설을 검토하겠다고만 언급되어 있다(〈사진 2〉 참조).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추가로 “영국은 허위신고는 6개월 이하의 즉결심판이나 벌금형으로 처벌하나, ‘정의실현방해죄’로서 다른 사람을 무고하여 체포되게 하는 경우는 최장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고 부연되어 있다.

②병사 월급: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은 20대 남성 유권자를 겨냥한 윤석열 당시 후보의 대표적인 한 줄 공약이다. 대선 캠페인 당시 ‘취임 즉시’ 병사 봉급을 월 200만원으로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5월3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2025년·병장 기준’이라는 단서가 붙으면서 공약 후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인수위는 “병장 월급을 2025년까지 150만원으로 올리고, 자산 형성 프로그램(장병 내일준비적금) 정부지원금을 월 55만원까지 인상해 ‘봉급 200만원’ 효과를 내겠다”라고 설명했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인수위는 ‘병사 월급 200만원’과 관련해 추가로 ‘단기복무 간부 장려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장려금은 단기복무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임관 직후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현재 장교는 600만원, 부사관은 500만원을 받는데 이를 장교 3100만원, 부사관 3000만원 수준까지 올려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사진 3〉 참조).

③장애인: 인수위가 활동하던 3월 말 ‘장애인 기본권’ 이슈가 전면에 떠올랐다. 3월25일부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돌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적극적으로 비난하면서부터다(〈시사IN〉 제760호 “이준석 대표님,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기사 참조). 전장연의 요구는 이동권을 포함해 탈시설, 평생교육법 등 장애인의 기본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1호 장애인 정책은 ‘개인예산제’ 도입이다. 개인예산제는 국가 예산을 복지기관이 아닌 장애인에게 직접 지급하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복지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개인예산제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개인예산제가 도입되면 기존 획일화된 서비스 체계에 장애인을 끼워서 맞추기보단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맞춤형 복지 지원을 할 수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 정책 예산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은 상황에서 개인예산제는 유명무실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당사자가 필요한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의 종류와 양, 그에 따른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개인예산제 도입추진단을 구성하고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검토했다. 문건에 따르면, 2025년 1단계 본 사업이 시작되면 장애인 활동지원 등의 서비스에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바우처’가 도입된다(〈사진 4〉 참조). 기영남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정책부장은 “(현금이 아닌) 바우처는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이 제한된다. 초기에는 바우처를 쓰는 사회서비스 영역부터 개인예산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개인예산제는 그 (사용) 제한을 없애는 게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정책과 관련해서는 2024년까지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 1개 이상 설치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검토했다(〈사진 5〉 참조). 문건에 따르면,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관련한 ‘교통약자법’은 올해 개정한다. 내년부터 시내버스는 대차·폐차 시 저상버스로 의무 교체하고,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도입도 확대한다. 2027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 70%를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적혀 있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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