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현철씨가 제58회 백상예술대상 남자 조연상을 받았다.ⓒ백상예술대상 갈무리

5월7일 아침,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드라마 〈D.P.〉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남자 조연상(TV 부문)을 받은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 영상이 눈에 띄었다. 누워서 무심코 보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배우는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아픈 이름들, 박길래·김용균·변희수·이경택·세월호 아이들 등을 호명했다. 수상소감이 어떤 위로처럼 들렸다(못 본 분들은 이 수상소감 영상을 보시길).

처음엔 몰랐다. 맨 앞에 거명한 ‘박길래 선생님’이 누구인지.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공해병 판정을 받은 이였다. 1979년 박씨는 서울 상봉동에 집을 마련했다. 연탄공장 인근이었다. 이사하고 3년 만에 기침과 가슴통증 같은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작은 양품점을 운영하던 그가 1986년에 광산 노동자들의 직업병으로 알려진 진폐증 판정을 받았다. 조영래·윤종현·김선수·박주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연탄공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1989년에 승소했다. 이후 환경운동에 앞장섰는데 2000년 4월에 57세로 숨졌다. ‘검은 폐’로 고생하면서도 환경운동의 씨를 뿌리고 간 박씨를, 사람들은 ‘검은 민들레’라고 불렀다. 고도성장기의 그늘이다. 조현철 배우가 그를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가 배우의 큰아버지이고, 부친은 유신 시절부터 환경운동에 앞장선 조중래 명지대 명예교수다. 3분7초의 짧은 영상이 감동적이었다.

며칠 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었다. 16분37초의 연설에서 ‘반지성주의’를 탓하기에 무슨 말인가 싶어 여러 번 다시 봤다. ‘자유’와 ‘성장’이라는 단어가 유독 반복된다. 취임사를 몇 차례 봐도 새 정부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이 정부에서 중용되는 검찰·기재부 출신 고위공직자들이 ‘자유’와 ‘성장’을 외치며 관가를 분주하게 오갈 모습만은 상상이 되었다. 게다가 고위공직자 직무감찰 등을 맡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검사 출신 인사가 임명되었다니!(이번 호에 실린 김은지 기자의 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싶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박길래씨가 떠올랐다. 대통령이 성장만을 강조할 때, 우리 사회에 검은 민들레가 다시 피어나지 않을까.

기자명 차형석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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