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 이코노미

오바라 가즈히로 지음, 이정미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물건만 좋다고 잘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는 “이 재킷을 사지 마시오(Don’t buy this jacket)”라는 문구를 광고에 쓴 적이 있다. 일견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이 행보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다. 옷을 만들며 생기는 환경오염을 경고해 친환경 비즈니스를 홍보하는 것이다. 청개구리 같은 젊은이들은 소비로 화답했다. 기술 발전으로 결과물 차이가 줄어들면서, 물건의 질보다 기업 메시지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었다. 품질로 이름을 알린 물건은 유사품에 따라잡힌다. 소비자가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확고한 답을 준비하면 충성도 높은 고객을 오래 확보할 수 있다. 경영자뿐만 아니라 사회상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의 흥미도 끄는 책.

 

 

 

 

 

생명을 먹어요

우치다 미치코 글, 모로에 가즈미 그림, 김숙 옮김, 만만한책방 펴냄

“사카모토 씨는 오래전부터 이 일이 싫었습니다.”

이 짧은 만화책에는 소를 한 마리씩 일일이 도축하는 사카모토 씨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이 끝난 뒤 글쓴이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빼앗는 생명의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어부인 무라마츠 가즈야 씨는 이렇게 말을 덧댄다. “어린 방어를 잡은 시점부터 그 물고기는 우리에게 길러지도록 운명이 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소중하게 길러야지요. (…) 그리고 우리가 먹는 것으로 그 운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엾은 건 다 먹지 않고 남기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흔히 고기를 먹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생명을 먹고 있다.

 

 

 

 

 

미끄러지는 말들

백승주 지음, 타인의사유 펴냄

“내 입안의 혀들이 말한다. 그의 혀가 숨지 않기를, 더 큰 목소리를 내기를 기원한다고.”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건 〈한국일보〉 지면에서다. 저자가 쓴 칼럼 ‘혀의 연대기’를 읽고 한껏 흥분해 SNS 단체방 이곳저곳에 글을 ‘뿌렸다’. 이 책은 사회언어학자인 저자가 2020년부터 〈한국일보〉에 ‘언어의 서식지’라는 이름으로 연재하는 칼럼을 모아냈다. 〈한국일보〉 칼럼 외에도 다른 매체에 쓴 글·논문·에세이· 추도문을 함께 묶었다. 길지 않은 칼럼에서 통찰을 얻는 순간은 당연한 듯 지나치는 풍경을 비판적으로 포착하는 시선을 발견할 때다. 저자는 혐오와 차별의 말 ‘아래’ 숨죽이고 있던 ‘다른 말들’을 찾아낸다. 그러곤 서로에게 말 걸기 위해 기꺼이 엉켜들고 오염된 말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너의 권리를 주장해

국제앰네스티·앤절리나 졸리·제럴딘 반 뷰런 지음, 김고연주 옮김, 창비 펴냄

“어리더라도 여러분의 권리는 어른의 권리와 똑같은 위상을 지닙니다.”

책의 부제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인권 가이드’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 미성년자 인권을 규정한 국제법을 조목조목 짚는다. 여기에는 신체의 온전성, 사생활, 놀이 등 다양한 권리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책은 국제법 규정처럼 돌아가지 않는 현실도 함께 나열한다. 적지 않은 국가가 여성의 권리를 법으로 제약한다. 전 세계 아동 6명 중 1명은 극빈층에 속한다. 법에 등록되지 않은 ‘무국적’ 상태 아동은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 성매매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책의 각 장은 권리의 의미를 설명하고, 여기 부합하지 않는 현실을 폭로한 뒤, ‘행동하기’를 촉구하면서 끝난다.

 

 

 

 

 

이것도 산재예요?

노동건강연대 지음, 보리 펴냄

“우리는 일과 건강, 이 두 가지를 연결 짓는 연습이 필요해요.”

산업재해, 산재, 산재보상. 뉴스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이지만 친숙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건 어떤가? 여드름, 코로나19, 방광염, 어깨 통증, 불면증…. 직접 겪어봤거나 주변에 이런 질환을 앓는 사람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모두 산재로 생길 수 있는, 그리고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질환이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몸에 일한 흔적이 남고”, 우리는 대부분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아픈 노동자들을 돕고, 산재보상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며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건강연대가 ‘친절한 실용서’를 펴냈다. 가볍고,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손에 쥐면 어쩐지 든든한 느낌이 든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최양현·최영우 지음, 효형출판 펴냄

“포로감시원 3년, 그리고 포로 신분 2년.”

태평양전쟁 한복판에서 스무 살 청년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4남 3녀인 집안에서 누군가는 전쟁터로 나가야 했다. 고민하던 저자 최영우는 결국 포로감시원에 ‘지원’한다. 그는 낯선 이역만리 남방에서 포로감시원 생활을 하며 일기를 쓴다. 일기는 1941년부터 1947년까지 이어진다. 전쟁이 끝난 뒤 포로감시원에 ‘지원’했다는 이유로 최영우를 비롯한 조선 청년들은 B급 혹은 C급 전범이 된다.
그는 일기를 쓴 만 5년 동안 3년은 포로감시원으로, 2년은 포로 신분으로 살아간다. 뒤늦게 그의 일기를 발견한 외손자가 글을 정리해 책으로 묶어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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