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레드북스가 문을 닫는다. 5월이 끝나면 서울에서 또 하나의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사라진다. 2010년 김현우(51) 레드북스 대표는 책방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개업을 ‘저질렀다’. “대학가 앞에 있던 사회과학 서점들도 다 죽던 때였다. 서울 사대문 안에는 사회운동 단체가 많았다. 활동가들이 드나들고 교류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대문에 자리를 잡았다.” 개업하기까지 성균관대 앞 ‘풀무질’,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책방 주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개업 파티 때 케이크에 꽂은 초의 개수는 10개. ‘일단 10년은 버티자’라는 생각이었다.

책방을 운영하던 12년간 책방지기가 바뀔 때마다 책방의 풍경도, 책방을 찾는 손님도 조금씩 달라졌다. 김현우 대표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진보신당 활동가들이,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이 총무를 맡아 책방을 꾸리고 나서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자주 책방을 찾았다. 2018년부터는 평화활동가 숲이아·쏭·염이 운영을 맡아 ‘평화살롱’ 레드북스가 되었다. 책방지기 세 명은 레드북스를 평화운동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다.

김현우 대표가 숲이아·쏭·염에게 다시 책방을 넘겨받은 건 코로나19로 운영하기 힘들던 지난해 2월이다. 책방 건물이 재건축될 거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김 대표는 올해 초 건물주에게서 ‘재건축하니 5월 말까지 자리를 비우라’고 통보받은 뒤 폐업을 결심했다. 레드북스는 책방을 응원하는 후원회원을 둔 특별한 서점이었다. 후원금으로 월세를 충당했다. 회원들에게 폐업 소식을 알리자 안타깝고 아쉽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데 폐업을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지금 조건이라면 레드북스와 같은 책방을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김 대표는 생물종 다양성처럼 ‘문화종 다양성’ 측면에서 동네 책방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한 주제 아래 여러 책을 묶어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내러티브가 되고, 독자의 시야를 확보해준다. 온라인 서점에서 느끼기 어려운 부분 아니냐. 그런데 정부가 이걸 보존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김 대표가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지금도 열심히 가게를 꾸려가는 다른 책방들에 누가 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레드북스를 더 운영하는 건 그저 자신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고도 그는 말했다.

5월 말까지 책방을 비워야 한다. 반품하고 주변에 나누고도 남는 책은 폐기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아직도 책방에는 폐기되기엔 아쉬운, 임자를 만날 만한 좋은 책이 많다고 말했다. 5월21일까지 레드북스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독자를 기다리는 책’을 만날 수 있다. 5월21일에는 책방을 아끼던 이들과 함께하는 “굿바이 레드북스!” 송별 파티가 열린다. 12년 전 케이크 위에 초 10개를 꽂아두고 시작했던 레드북스는, 12개의 초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