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는 강아지 시절 형제자매와 함께 구조되었다. ⓒ정우열 제공

오레는 올해로 만 여덟 살, 9.5㎏, 여성, 배와 발 등 주요 포인트는 희고 나머지는 대체로 검은 개다. 암컷이라고 썼다가 여성이라고 고쳐 썼다. 강아지 시절 다섯 형제자매와 함께 종이 상자에 든 채 구조되었는데 임시 보호처에 머물다가 H와 S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이 개는 짖을 수가 없나요? 보호소 출신답게 겁 많고 얌전해서 지금도 간혹 이런 질문을 받지만 어디까지나 오해다.

H씨, 내가 넘어졌는데, 좀 와줘야 할 것 같아.

S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H는 직감했다. 방금 전까지 S와 오레와 함께 카페 야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 때문에 먼저 일어나 이제 막 약속 장소에 도착한 참이었다.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카페에 닿으려면 아직 한 블록쯤 남았는데 119 구급차가 보였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모르는 아저씨가 오레를 안고 서 있었다. S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보호자임을 밝히고 개를 건네받았다. 구급대원이 구급차 문을 열어주는데 이미 그 안에 S가 누워 있었다. 응, 왔어? 다행히 어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는 않았다. 보호자님 타세요. H가 멈칫하는 사이 구급대원이 다시 말했다. 개 데리고 타세요. 구급대원님도 개를 키우세요? 라고 묻지는 않았다. 미안해. S는 자꾸만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친 건 자신인데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혹시 머리를 다친 걸까? H는 생각했다.

H가 약속을 위해 먼저 떠난 후, S는 오레와 함께 한동안 더 카페 앞에 앉아 있었다. 날이 따뜻하고 화창했다. 다 먹은 컵과 쟁반을 반납하기 위해 오레를 철제 의자에 묶어두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우당탕, 미처 반납을 마치기도 전에 밖에서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오레를 묶은 의자가 넘어진 것이었다. 오레는 의자를 피해 달렸고, 의자는 사나운 소리를 내며 그런 오레를 쫓았다. 오레가 의자를 매단 채 4차선 도로로 내달렸다. S도 오레와 의자를 쫓아 달렸지만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오레야 멈춰! 저 개 좀 잡아주세요! 다시 일어나 달렸다. 의자가 구르며 차들을 부쉈다. 누군가 오레를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레를 안으려는데 오른팔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먼저 119에 전화를 걸고, 그다음 H에게 전화했다. H씨, 내가 넘어졌는데, 좀 와줘야 할 것 같아.

응급실에 개가 들어가도 되나요? 병원에 물은 건 H나 S가 아니라 구급대원이었다. 당연히 안 될 거 같은데… 들으면서 H는 생각했다. 병원 측에서도 다소 황당해하며 안 된다고 했다. 구급대원은 개를 키우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S는 이가 두 개 부러지고, 오른쪽 어깨가 부서졌다. 오레와 철제 의자는 주차 중이던 차 두 대와 주행 중이던 차 한 대를 부쉈는데, H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오레를 안고 있던 사람은 부서진 차 중 한 대의 차주였다. 그도 개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제 나한테는 오레와의 우정의 표시가 생겼어. 철심을 박은 오른쪽 어깨를 가리키며 S가 말했다. 상처를 보면서 오레를 평생 생각할 거야. H는 안심했다. 오레가 돈 많이 드는 사고를 쳐서 S가 오레를 미워하게 되는 건 아닐지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미안해. S가 또 말했다. 다친 건 자긴데 뭐가 자꾸 미안해? 내가 오레를 잘 보살피지 못해서 사고를 만들었으니까. 머리를 안 다쳤고, 결국은 회복할 수 있는 상처이고, 오레가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H는 말했다. 부서진 차 중에 외제차가 있었는지, 언젠가 오레에게 큰 병원비가 들 때를 대비해 만들어둔 통장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해보는 H였다.

기자명 정우열(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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