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았다. 제법 큰 수술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좋다. 많이 회복했고, 다음 주면 예전과 비교해 큰 차이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퇴원한 뒤 집에 누워 있으면서 이런저런 음악을 많이 들었다. 한데 희한했다. 몸이 아파서인지 가사가 들어간 곡을 듣기가 좀 어려웠다. 추측하건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데 노랫말이 자꾸 귀에 걸려서였을 것이다. 차선책으로 연주음악을 골라서 나만의 리스트를 만든 뒤 반복 감상했다. 그중 핵심만 추려 소개해본다.
I Fall in Love Too Easily / Niels-Henning Ørsted Pedersen & Sam Jones
이 곡이 실린 앨범 제목에 먼저 주목하기 바란다. 〈더블 베이스(Double Bass)〉이다. 재킷을 보면 베이스 연주자 두 사람만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보통 베이스를 ‘뒤에서 받쳐주는 악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편견이다. 만약 이 편견, 어떻게든 부수고 싶다면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이 음반 〈더블 베이스〉, 그중에서도 이 곡 ‘I Fall in Love Too Easily’를 들으면 된다.
‘의도적인’ 스테레오를 추구했다는 걸 알면 더 좋다. 곡을 플레이하면 베이스 연주가 한쪽 스피커에서만 들릴 것이다. 이 연주가 끝난 뒤 또 다른 베이스가 다른 한쪽의 스피커에서 릴레이를 펼치듯 계속된다. 전형적인 ‘콜 앤드 리스폰스(Call & Response)’ 형식이다. 두 베이스 연주를 중간에서 기타 연주가 조율한다. 따라서 기타는 곡이 끝날 때까지 스피커 양쪽에서 울려 퍼진다. 곡 제목 그대로다. 혹여 재즈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 곡과 사랑에 빠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Recomposed By Max Richter:Vivaldi, The Four Seasons / Max Richter
내 인생 음반이다. 타이틀에 적혀 있듯이 이 작품은 막스 리히터가 비발디의 사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작곡’한 결과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편곡한 게 아니다. ‘재작곡’한 거다. 위대한 막스 리히터에게 경배를.
총 18곡이다. 혹시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1번 트랙부터 3번 트랙까지만이라도 감상해보길 바란다. 이 곡 들으면서 울컥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가까스로 참곤 한다. 이유를 곱씹어본다. 살아서 음악 듣는 자의 기쁨이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장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내 대답은 다음과 같을 수밖에 없다. ‘듣고 얘기하시라.’
Spark of Life & Sudovian Dance(live) / Marcin Wasilewski Trio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는 통상 유럽 최정상 피아노 트리오로 평가받는다. 단, 문제가 하나 있다. 만약 당신이 이 3인조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면 대체 어떤 곡부터 들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는 거다. 당장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만 뒤져봐도 들을 수 있는 앨범이 일고여덟 개는 된다.
괜찮다. 잘 살펴보면 언제나 해결책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우선 이런 유의 재즈밴드가 베스트 컬렉션을 발표할 리는 없다. 따라서 최선은 라이브 음반이다. 그들이 2018년 발표한 라이브 앨범에 이 탁월한 3인조의 음악적인 정수가 다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이 곡, ‘Spark of Life & Sudovian Dance’를 강추한다. 서정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연주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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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역주행이 아니라 ‘역질주’라고 불러야 할 거 같다. 근거를 제시해본다. 이 곡이 발표된 해는 1985년 8월5일이었다. 한데 갑작스러운 열풍과 함께 다시 빌보드 싱글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