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11일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시사IN〉 창간선포식을 개최했다.ⓒ시사IN 자료

‘전 직장’에서의 이야기다. 15년 전 이맘때. 나는 서울지검 앞에서 누군가의 검찰 조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누군가는 독자 여섯 명이었다.

당시 나는 7년 차 기자였다. 출판 편집자로 2년 반 일하고, 2001년 한 시사주간지에 입사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 탓인지 이후 신입 기자 공채가 없었다. 2006년 여름, 경영진의 지시로 삼성 관련 기사 3쪽이 인쇄소에서 사라졌다. 그 일로 회사 안에서 6개월 동안 싸웠고, 또 6개월 동안 파업했다. 기자 24명 가운데 17명이 징계를 당했다. 기자들을 지지하는 독자모임이 꾸려졌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기자들을 응원했다. 그런데 회사가 이 활동을 ‘업무방해’라며 운영진을 고소·고발했던 것. 독자모임과 연락 업무를 맡고 있던 나는, 검찰 조사가 끝나기를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기자들이 파업을 해도 주간지는 발간되었다. ‘누가 그 기사를 쓰는지 알리는’ 바이라인(by-line)이 사라진 채. 검찰 조사에서 한 독자가 이렇게 진술했단다.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전파해 인쇄 매체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이렇게 막무가내로 주간지를 발행한 적은 없을 겁니다.” 조사 내용을 타이핑하던 검찰 수사관이 순간 당황해 되물었단다. “뭐라고요? 구, 구, 구텐베르크요?” 방금 조사를 마친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전하며 깔깔 웃었다. 따라 웃었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시사IN〉의 창간 스토리는, 오랜 독자들은 알 만한 내용이다. ‘또 그 얘기냐’ 하는 분도 있겠다. 그런데도 말하는 건, 그 기억이 강렬해서다.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그날의 풍경을 떠올린다. “어떻게 창간한 매체인데….” 다시 마음을 다진다. 창간도 하기 전에 8000명의 독자가 구독을 약속했던 매체. 1만원, 2만원 소액 성금이 밀려들었다. 당시 노조 통장을 관리하던 유옥경 미술 기자는 입금 내역을 확인하다 울었다. 놀랍고, 고마워서. 다들 1년이면 망할 것이라고 했던 매체가 15년을 걸어왔다.

5월부터 편집국장 직을 맡게 되었다. 편집국 구성원이 선출한다. 국장 후보 청문회도 거친다. 일종의 공약 자료를 준비하면서 맨 앞에 ‘결국, 독자’라고 적었다. “독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시사IN〉을 읽는 걸 ‘좋은 경험’으로 느끼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회사에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들이 행복하다.’ 누군가 나에게 ‘고생 길 열렸네’라고 했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며 첫인사 드린다. 독자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기자명 차형석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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