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주 선수(왼쪽에서 두 번째)의 가세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점유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스포츠의 묘미 중 하나는 의외성이다. 예측을 벗어난 승부에서 만들어지는 희열이 있다.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는 그 짜릿함이 좀 더 극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2022시즌 K리그 1 초반 레이스에서 이런 의외성으로 눈길을 끄는 팀이 인천 유나이티드다. 9라운드 기준 K리그 1 순위표에서 당당히 2위(5승3무1패)에 올라 있다. 불과 2년 전 같은 기간 무승(2무7패)이었던 전적을 떠올리면 이번 시즌 변화는 극적이다. 리그 판도를 흔드는 반란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인천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였다. 거의 매 시즌, 초반보다 막판에 힘을 냈다. 시즌 대부분을 무기력하게 버티다가 가까스로 1부 리그에 잔류하는 식이었다. 막판에 살아남는 스토리도 관성이 되고 보니 ‘생존왕’이라거나 ‘가을의 전설’ 같은 수식어로 포장되곤 했다. 그러나 프로팀에 기대할 수 있는 ‘위닝 멘탈리티’를 갖춘 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인천은 어떻게 패배의식을 걷어낼 수 있었을까. 지난겨울 훈련장의 단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시즌 개막에 앞서 조성환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두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원팀·인성·소통·경쟁 등을 키워드로 팀 운영에 관한 대원칙을 설명한 뒤 “건강하고 강한 팀을 만들고 싶다”라는 진심을 전했다. 요약하면 경기장 안팎에서 ‘기본’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조성환 감독은 훈련장에서도 실전 같은 긴장감을 갖고 모든 힘을 쏟아낼 것을 주문한다. 느슨해지는 선수는 감독의 호통을 피할 수 없다. 훈련장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의식한다면 일상도 정비할 수밖에 없다. 김재성 코치는 “훈련장에서 긴장감이 생기니 선수들이 알아서 스스로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절제를 하거나 개인 훈련으로 보강하는 식이다”라고 설명한다.

팀 목표도 구체화했다. 단번에 이뤄지는 체질 개선보다 작은 성공을 여러 번 쌓는 쪽을 신뢰했다. 2020년 하반기, 잔류 가능성이 희박했던 인천에 ‘소방수’로 부임한 조성환 감독은 ‘생존’이라는 당면 과제를 극적으로 해결했다. 2021년에는 잔류 조기 확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선수들에게 몇 가지 숫자를 제시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능한 ‘4위권 진입’, 그리고 ‘60골 이상, 38실점 이하’였다. 경기당 1.5골 이상 득점하면서 실점률을 0점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였다. 9경기 10득점 6실점을 기록 중인데,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는” 숫자다.

순위 싸움을 유리하게 만드는 힘은 수비 조직에서 나온다. 인천은 전통적으로 라인을 내려 수비벽을 두껍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력의 열세에 대응하는 팀이었다. 조성환 감독은 백스리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대에 따라 백포로 전환할 수 있는 카드까지 갖고 있는데, 소유와 역습을 주도하는 조직력이 돋보인다. 수비진 구성도 흥미롭다. 불혹을 바라보는 김광석부터 강민수, 오반석, 오재석, 델브리지 등 주전 수비수 다수가 30대 중후반이다. 노쇠화에 따른 부담이 위험 요소로 지적되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로 불안과 기복을 잠재운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 중에도 원정경기를 따라가 후배들의 ‘멘탈 케어’를 지원하는 선수들이 있었다고 한다. 인천 관계자는 “어린 선수가 많았던 인천에 베테랑들이 합류하면서 위기를 넘어서는 힘이 생겼다.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훈련장이나 일상의 관리법에서도 본보기가 되는 선배들이 있으니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라고 전한다. 김광석의 부상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김동민이 좋은 예다.

 

무고사 선수의 ‘순도 높은 마무리’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연합뉴스

수비의 안정감 덕분에 공격에서도 욕심을 낼 수 있게 됐다. 조성환 감독의 축구는 공격과 수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속도감 있는 전환 플레이를 추구한다. 특히 역습 상황에서 볼 소유 시간을 늘려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겨울 영입한 여름과 이명주는 이런 구상을 실행하는 데 힘을 실어준 선수들이다. 활동량, 압박, 볼 컨트롤을 통한 소유에서 시너지를 내는 중원 조합이다. 조성환 감독은 “작년부터 점유율을 높이면서 상대를 괴롭히는 축구를 하고 싶었다. 이명주와 여름이 합류하면서 가능해졌다. 이명주는 패스 지원이 특히 좋은데, 패스 성공률이 96%인 경기(3R 강원전)도 있다”라고 설명한다. 민경현, 김보섭, 김도혁 등 측면 자원의 플레이가 그 범위를 넓히며 과감해진 것도 패스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공격 작업에 방점을 찍는 이는 무고사다. 9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팀 득점의 70%를 책임지고 있다. 무고사가 시도한 슈팅(27회) 중 23개가 골대 안으로 향하는 유효슈팅이었다. 팀 승리를 가져오는 결승골, 막판 터뜨린 극장골, 승부를 뒤집는 역전골 등 골에 담긴 사연도 다양하다. 감독은 무고사의 “순도 높은 마무리”를 신뢰하고 있다.

승점을 확보하고 승수를 쌓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팀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성공 경험을 반복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잔류 DNA’ 같은 자기 암시보다 ‘이기는 습관’을 통한 효능감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이제 “매 경기 이기러 들어간다”라는 선수들의 말이 어색하지 않다.

인천의 상승세를 마냥 추켜세우기엔 이르다. 38라운드까지 이어질 장기 레이스에서 초반 순위가 해피엔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조성환 감독도 “앞으로 반드시 한두 번은 위기가 올 것”이라며 앞서가는 환호를 경계한다. “위기가 왔을 때 넘어설 수 있는 팀이 되어야 한다. 한 번 패할 수는 있어도 연패에 빠지지 않도록 전환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강팀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천이 기적이나 마법을 꿈꾸기보다 “전략대로 맞아떨어지는” 즐거움을 아는 팀이 됐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인천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즌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인천이 일으키는 파장이 이번 시즌 K리그 1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기자명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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