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축하한다’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까다롭게 굴고 싶진 않지만 왠지 항상 이 문제가 거슬린다. 많이 거슬리는 건 아니다. 마치 어떤 옷을 입을 때 목덜미나 옆구리에 옷 라벨이 닿아 까끌거리는 것처럼, 이 문장을 말로 입 밖에 내거나 글로 쓸 때마다 아주 조금씩, 미묘하게 거슬리는 것이다. 쓸 일이 적지 않은 말인 데다가 대체할 다른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까지는 아니지만)로 쓰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주 잠깐씩 주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축하’라는 건 남의 좋은 일을 기뻐하는 것일 텐데, 우선 누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과연 좋은 일인가 하는 부분에서 살짝 걸리고 그다음엔 그가 태어난 날, 정확히는 그날과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상으로 같은 날이 돌아왔다는 점이 정말 나를 기쁘게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한 번 더 걸린다. 하지만 이내 그렇게까지 까탈스럽게 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말하거나 쓰게 되는 것이다. 자매품으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말이 있겠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 것 같다
얼마 전 내 개의 만 열아홉 살 생일 파티를 열었다. 내 개와 동갑인 조카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오래전 아직 개와 함께 살지 않던 시절, 개에 관한 일종의 백과사전 같은 책을 책장에서도 손이 가장 잘 닿는 자리에 두고 선망의 마음으로 수시로 꺼내 펼쳐 보았더랬다. 그 책에 의하면 내 개가 속한 종의 평균수명은 10년에서 14년 사이란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 개는 보통의 동족들보다 적어도 생애의 4분의 1 이상을 더 산 것이다. 개의 이마부터 엉덩이까지를 스윽스윽 쓰다듬으며 말한다. 어어, 풋코. 수고했어, 대단해.
3년 전 개의 나이가 열여섯 살이던 해에 처음으로 개의 생일 파티를 해보았다. 그전에도 생일이면 개가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들고 초를 켜긴 했다. 하지만 그해에는 어라 이거 봐라, 이쯤 되면 뭔가 기념해도 좋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 개를 각별히 예뻐해주는 친구들과 모여 기념 촬영도 하고 케이크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때 친구들에게 말하길 만약 내년에도 개가 생일을 맞게 된다면 조금 성대한 파티를 열어보겠다고 했다. 이듬해 생일엔 팬데믹이 세상을 덮쳐 파티 같은 건 열지 못했고, 놀랍게도 그다음 해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게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 해, 그러니까 올해도 또다시 개가 생일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아직 세상은 팬데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고 있었고, 방역수칙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나마 조심스럽게 파티를 열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개의 건강상태를 볼 때 아무래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친구들의 개들도 함께 와주었다. 개들이 영문도 모른 채 케이크를 맛있게 나눠 먹는 걸 보면서 묘한 기쁨을 느꼈다. 친구들의 반려동물의 생일이나 입양 기념일 같은 날에 또 파티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생일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건 그만큼 세상 살기가 고단하고 우리에겐 파티를 열 구실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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