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이건 내가 〈뉴스민〉에 합류하게 된 이야기다. 29살 청년의 귀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보현씨를 알게 된 건 원고지 8장짜리 칼럼 때문이었다. 서울의 한 매체에서 일하던 기자가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으로 이직하게 된 사연이었다. 4월4일 올라온 짧은 글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지역에서 서울로,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흔한 업계에서, 김보현씨는 반대로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극구 만류했다. 서른을 앞둔 지난해 말 〈뉴스민〉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기자 생활을 할수록 고민이 쌓여갔다. 10년 뒤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기자라면 누구나 변화를 만들길 바라잖아요. 그러기에 서울은 기자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해요.” 특정 이슈에 기자 수백 명이 몰리고, 그 사이에서 속보·단독보도 경쟁을 해야 하는 언론 생태계에 대한 근본 의문이었다. 따라가야 하는 사건 사고와 트렌드는 매주 바뀌는데 피부에 와닿는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3년 차가 되었을 때 김씨는 ‘기자로서 본인의 현장이 어디여야 할지’ 다시 물었다.

어릴 적 이사를 자주 다닌 까닭에, 대학 시절부터 7년간 살던 대구가 김씨에게는 고향과 다름없었다. “어디에 목마른 사람처럼” 학보사 기자로 뛰어다닌 곳이고, 위태로울 때마다 그를 붙잡아준 관계들이 있는 곳이었다. “선거 때마다 드러나는 표심만 보면 대구가 ‘빨간 도시’로 불리지만, 막상 제 일상에서 그런 보수성을 체감하진 않았어요.” 적어도 또래 사이에서는 비슷한 고민이 많았다. 공부한 분야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 서울로 가지 않은 이들에게 남아 있는 패배감과 무력감 같은 것이었다. 김씨는 ‘서울’이 바라보는 대구의 이미지를 한 꺼풀 걷어내고 나면, 세분화되고 변화하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뉴스민〉은 그가 대학생 때부터 읽었던 언론이다.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그는 〈뉴스민〉 이직이 ‘다른 지역 일간지에서 보기 어려운 수준 높은 기사들’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대구 공공의료 현실, 이주민, 특수고용 노동자 등 방역 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들을 드러냈다. 대표를 포함해 7명이 전부인 독립언론의 수입원은 후원금이다.

김보현씨는 경북에서 전면 시행을 준비 중인 농민수당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농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지만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어서 당황했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지역 은행이 문을 닫는 상황도 주시하고 있다. 노년층은 모바일뱅킹을 거의 쓰지 않기에 시급한 문제다. ‘쓰고 싶은 주제’를 말하는 그의 입에서 “재밌다”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뉴스민〉의 저널리즘 원칙 중 하나는 ‘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이다. 이 문장이 김씨에겐 무척 인상 깊게 남았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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